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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시네마천국

화려한 휴가

by 천 지 인 2007. 7. 30.
 

  1.화려한 휴가

 

30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딸아이와 나는 함께 울었다. 아이는 5번을 울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불쌍해서 슬퍼서 그리고 잔인해서 울었단다.

  나도 울었다. 영화를 보면서 1980년대의 분노가 꿈틀 거리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온다. 21세기 현재, 학살의 주역들은 사죄 한마디 없이 호가호식하고 있다. 전두환의 고향에서는 멀쩡한 공원의 이름을 “일해공원”으로 바꾸는 몰역사성이 자행된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후안무치한 현실이 부끄러워 눈물이 난다.

 

 

 

  1980년 5월 광주의 사람들은 생존을 위한 무기로 총을 들었다. 광주 이후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본질에 대해서 치열하게 해석하려 노력하며, 사회 변혁을 위해 이념의 무기를 찾았다.

  그리고 27년이 지난 지금 현재 광주는 망월동 국립묘역에 박제되고, TV에 중계되는 기념식으로 화석화 되었다. 항쟁은 기성정치권에 편입된 386의 입에서 앵무새처럼 반복된다. 이러한 현실에 대하여 불편하고 부끄러운 심정으로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쿨쩍 거렸다.


  살이 터지고 피가 튀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울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리고 진실을 외면하고 매도하는 현실에서 피를 토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1980년대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슬픔과 노여움을 안고 살았다.

  영화는 도청 장악 이후 거리 청소를 하는 시민들, 교통정리 하는 시민군 등의 장면을 보여 준다. 영화의 주역은 택시기사와 간호사, 고등학생, 뒷골목 양아치 등 우리 사회의 甲男乙女이다. 항쟁의 과정에서 사회지도층과 지식인은 보이지 않는다. 사장과 신부, 선생님 등이 영화에서 역할은 하되 그들은 조연일 뿐이다.

 

 

 


  영화는 결코 이념지향성을 추구하거나 광주항쟁의 전후에 대하여 역사적 정황을 치밀하게 재현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영화의 이런 한계 때문에 부담없이 아이와 함께 공감하며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아이는 광주를 모른다. 역사책에서 얼핏 한두줄 읽었을 뿐이다. 그런 아이에게 항쟁하는 광주의 의미, 당시의 시대적 정황과 역사적 해석 등을 영화에 무리하게 담아보았자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동 시대를 살아왔던 성인들조차 느끼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휴가’에 아쉬움은 남는다. 윤상원 열사 같은 인물의 치열함이 이 영화에는 없으며, ‘산티에고에 비가 내린다’처럼 군부 쿠데타로 살해당하는 살바도르 아옌데 같은 인물의 투철한 역사의식을 표현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역사와 집단보다 개인이 앞서는 요즘의 현실을 뒤돌아보는 최소한의 계기는 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 군부에 의해 광주에서 자행되었던 ‘화려한 휴가’는 완료되지 않은 현재진행형이다. 자본에 의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자행되는 이랜드 사태와 같은 인권유린의 실태, 2007년의 이러한 현실을 재인식하고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 천 지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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