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의 향기/시네마천국

낮술의 미학

by 천 지 인 2009. 3. 3.
 

낮술의 美學


한번쯤 낮술에 취해보지 않은 청춘이 있으려나. 낮술을 마셔본 사람은 안다. 낮술이 골 때리면서도 맛있다는 것을! 그것도 지독하게. 그 맛의 핵심은 일탈에 의한 해방감일 것이다. 남들 분주하게 일하는 시간에 일탈자끼리 둘러 앉아 마시는 낮술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다. 하지만 낮 시간이라 하더라도 밀폐된 공간에서 인공조명 밝혀 놓고 마시는 것은 낮술이 아니다. 진정한 낮술은 벌건 대낮 야외에서 마셔야 한다.  

터질듯 열정이 사무치던 시절, 겨울바다를 찾아서 가슴속 깊은 곳의 끓어오르는 열기를 식혀보지 않은 젊음도 있으려나. 차가운 겨울바람에 맞서며 스산한 바닷가를 걷다 소주병을 들이켜 본 기억이 누구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안주는 영화에서처럼 컵라면이 아니어도 좋다. 쥐포나 문어다리 한쪽이면 충분하다. 아니 그마저도 없으면 어떤가? 소주 그 자체를 위안삼아 깡소주로 마셔도 되는 것을!

 

 

 

영화 「낮술」은 이러한 경험의 보편성에서 출발한다. 누구나 지니고 있을 일탈에 대한 기억을 “여행, 이성, 술”이라는 3요소로 버무려 영화를 빚어낸 것이다. 그렇지만 영화 속 5일간의 로드무비는 아름답거나 낭만적이지 않다. 실연의 아픔을 달래고자 시작했던 낮선 곳으로의 여행은 사람에 대한 실망, 반복되는 악연, 그러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미련 등이 혼재되어 진행된다.

전개되는 이야기는 영화적 상상력에 기반한 허구가 아니다. ‘덤 앤 더머’ 같은 코믹 로드무비도 아니며, ‘귀여운 여인’처럼 비현실적인 연애담도 아니고,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와 같이 지독한 알콜릭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보편적 경험 - 여행에 대한, 이성에 대한, 술에 대한 이야기가 그래서 낮설지 않게 다가온다.

기대만큼 낭만적이지 않았던 여행, 이성에게 베인 아픈 기억, 술로 인해 토악질하며 망가졌던 경험 등등...  누구나 지녔으되 무용담처럼 떠벌릴 수 없는 인생의 편린들! 나를 포함해 나의 주변에서 보았던 익숙한 경험들을 감독은 관객들이 불편하지 않게 풀어 놓았다.

 

 

 

‘술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주당이 아니어도 좋다. 낮술은 일상에서의 탈출이다. 탈출을 위해 특별히 공간이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단지 일탈을 위한 용기로 낮술을 하면 된다.

여기에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무장한 치기어린 행동이 함께하면 더 좋다. 대낮에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좋다. 주위에 개의치 않고 질펀하게 주저앉아 마셔도 좋다. 그렇게 대낮에 몇 놈이 작당하여 마시며 자신만의 해방구를 구축하는 것,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낮술의 美學이다.


..........

우리의 삶은 항상 금지선 앞에서 멈칫거리고

때로는 그 선을 넘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것,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라.

그 선이 오늘 나의 후회와 바꿀 만큼 그리 대단한 것이었는지.

낮술에는 바로 그 선을 넘는 짜릿함이 있어 첫잔을 입에 대는 순간,

입술에서부터 ‘싸아’ 하니 온몸으로 흩어져간다.

..........


박상천의 詩 ‘낮술 한잔을 권하다’ 中


- 천 지 인 - 

 

'문화의 향기 > 시네마천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똥파리, 욕설의 편안함  (0) 2009.04.21
엘레지 - 네가 바로 그것이다  (0) 2009.03.25
워낭소리  (0) 2009.02.19
화려한 휴가  (0) 2007.07.30
우아한 세계  (0) 2007.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