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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시네마천국

엘레지 - 네가 바로 그것이다

by 천 지 인 2009. 3. 25.
 

엘레지(Elegy)!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슬픈 연가인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숱한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한다. 때로는 짧고 때론 긴 만남, 별일 없듯 헤어지기도 하지만 아픔에 고통스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다지 아프지 않게 스치듯 지나치고 만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소유의 문제가 아님을 누구나 인식한다. 사람 사이는 관계(Relationship)의 문제다. 소유의 문제는 가지느냐 버리느냐는 욕망의 문제로 다가온다. 그러나 관계의 문제는 상호간의 집착을 버려야 하는 존중과 배려의 문제이다.

그렇지만 사람은 사랑하면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상대에 대해 묻고 따지고 의심하는 집착, 이러한 집착은 상대에 대한 간절함일 수도 있지만 믿음의 부족이기도하다. 결국 집착이 심해지면 두 사람의 관계는 승화되지 못하고 왜곡된 채 비틀리고 만다.

반면에 상대에 대한 방치와 무관심도 사랑은 아니다. 사랑이 깊을수록 상대에 대한 관심과 탐닉은 증폭되기 마련이며, 그렇기에 방치가 아니라 적극적 표현으로 드러내야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런 의미에서 콘수엘라가 영화에서 “내가 어떻게 할 것인지가 아니라 나랑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 데이빗에게 던진 질문은 본질적이다.

 

 

 

 

오래전 결혼 실패 후 독신으로 살아가는 저명한 문학교수 데이빗은 자신의 수업을 듣는 학생을 포함하여 많은 여자들과 자유롭게 관계를 맺는다. 그런데 대학원생 콘수엘라를 만나며 그의 자유로운 감정은 구속당하기 시작하고, 만남을 지속할수록 데이빗은 점점 콘수엘라에게 빠져들며 그녀에게 집착하게 된다.

두 사람의 연령차는 30살, 감정이 깊어질수록 데이빗은 둘의 미래에 대한 자신이 없어진다. 그러니 그녀의 졸업 파티에 초대된 그는 파티장 주변을 맴돌다 자신에 대한 강박을 이기지 못하고 참석하지 않는다. 그리고 콘수엘라와의 이별과 2년 후 재회.

헤어짐은 상대에 대한 간절함을 키우며, 빈 구석의 여백은 더욱 확대되어 그 공허함을 극대화 시킨다. 누구나 겪었을 이별의 고통 - 벤 킹슬리는 그의 표정과 눈빛으로 간절함과 공허함을 절실하게 표현하였다. 

 

 

 


흔히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통상적 표현일 뿐이다. 실제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관습과 다양한 조건의 장벽이 숱하게 존재한다. 그렇다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장벽을 넘은 사랑은 모두 위대한가? 아니면 사회적 통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금지된 사랑은 없다. 단지 스스로 금지할 뿐이다. 그렇다면 모든 금지는 정당한 것인가? 아니면 금지를 뛰어넘는 모든 행위가 아름다운 것인가? ‘네가 바로 그것이다(Tat tvam asi)’라는 우파니샤드의 문제의식이 아니더라도 나와 당신은 안에서 발견해야 한다. 해답은 누구도 찾아 줄 수 없으며, 자신들 스스로 결말지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사랑은 마냥 황홀한 로맨스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지면 질주해야 한다. 연극인 손숙은 ‘그 사랑이 끝내 진저리쳐지도록 고통스럽게 끝나더라도 두려움 없는 열정적이고 그 자체로 완벽하게 사랑을 하라’고 주문하지 않던가? 

사랑은 때론 험하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고통의 과정을 동반하기도 한다. 그러나 회피하지 않은 채 힘들고 아픈 과정을 함께 하며 상대에게 데이빗처럼 “나 여기 있어 (I'm here)"라고 얘기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일 것이다.


- 천 지 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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