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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시네마천국

우아한 세계

by 천 지 인 2007. 4. 6.
 

 

 

 

1. 우아하지 않은 현실


  현실은 결코 우아하지 않다. 이것은 서민들뿐 아니라 상류층에도 해당하는 말일게다. 우리의 눈으로 상류층을 보았을 때 우아해 보일 뿐이다. 상류층이 우아하지 않다고 하여 서민들 삶이 인간적이거나 정겹다는 얘기도 아니다. 다만 없이 사는 사람들이 꺼낼 수 있는 카드는 인간 그 자체 밖에 없을 뿐이다.

  전원이 목가적이지 않은 것처럼 현실 또한 우아하지 않다. 생활느와르라는 생소한 단어로 굳이 분류하려는 어설픔이 나를 웃긴다. 예전에 강모 법무부장관이 국회에서 “코메디”라고 하며 웃지 않았던가? 요즘의 코메디 “같기도”를 보며 우리의 현실이 슬퍼진다. 정치는 희극이 되고, 희극은 웃음 속에 슬픔을 자아낸다.

  대학가의 신입생 환영회는 군대나 조폭의 신고식을 방불케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만연된 형님문화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생활에 침투하여 밥그릇 수에 입각한 위계질서와 경직된 언어, 과잉된 허리꺾기가 예의범절로 둔갑한 것이다. 가해하는 선배나 당하는 후배 모두는 신고식을 통해 조직은 결코 우아하지 않음을 경험할 것이다.

  생활은 고단하다. 그러나 드라마의 일상은 귀족이건 평민이건 조폭이건 가리지 않고 어찌 그리도 우아한가? 드라마의 가공된 우아함에 세뇌되어 개인의 꿈은 천편일률화 되었지만 누구도 의식하지 못한다. 미디어의 과잉이 이제는 개개인의 미래에 대한 설계도 동일하게 복제하고 있는 것이다.


2. 운명의 비가역성


  영화는 현실이다. 중견간부(= 조폭 중간보스)로서 자신(= 강인구)의 직장(= 폭력조직)에서 성과를 올리려 아등바등 거린다. 그러나 무엇 하나 부하직원(= 똘마니)들은 속시원 하게 처리하지 못한다. 마무리는 항상 상사(=중간보스)의 몫이다. 기껏 마무리 해 놓은 프로젝트(= 건설사 사장 납치해 강제계약으로 이권 뺏기)에 손하나 까딱 하지 않고 낙하산 타고 내려온 2인자(= 넘버 2), 회장(= 보스)의 친인척(=보스의 동생)이라는 든든함만 믿고 이익의 배분을 요구한다.

  조직은 능력과 성과에 의해서 승진하기 보다는 낙하산이 가로 막고서 도전세력은 거세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거세를 위해서는 이이제이(以夷制夷)와 모략 - 타 조직과 야합을 통해 제거하려 한다. 그러나 운 좋게 살아난 자는 타 조직과의 야합에 분노하지만 그것은 1인자(=보스)에 대한 역린(逆鱗)이다.

  역린의 운명은 꼬이게 마련이다. 한번 꼬인 운명은 비가역성으로 그 결론이 희극일지 비극일지는 누구도 모른다. 열 받아서 던진 돌은 돌아오지 않는다. 다만 홧김에 던진 돌맹이가 엉뚱한 사람의 머리를 때려 비극이 될지 아니면 우연히 악한의 뒷통수를 갈겨 영웅이 될지는 모르는 것이다.


3. 현실의 부정합


  대부분의 사람들은 30대 중반을 넘어서 아이가 자라고, 어느덧 학교에 다니는 40대가 되면 현실의 변화보다는 ‘그대로’를 원한다. 그래서 기성세대라고 하지 않던가. 명분은 가족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약함의 이면에는 정직하게 가족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현실안주에 대한 핑계다. 경험하지 않은 신세계 보다는 지금이 편하니까.

  가족의 강요에 못 이겨 새로운 출발을 시도하는 중견간부(= 강인구)에게 보스를 넘어서라는 것은 두려움이다. 복종이 체질화 되었을 때 누구나 강인구처럼 보스는 넘지 못할 산 - 경외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그렇지만 운명의 비가역성은 강인구의 의도와는 반대로 돌고 돌아서 업종변경의 새출발이 아니라 그 바닥에서의 위치 조정으로 귀결된다.

  재조정된 위치는 그의 희망대로 그림 같은 집을 얻게 한다. 어느 조직에서건 1인자로 대변되는 성공신화는 그에게 형식적 우아함을 선사한다. 그러나 형식적 우아함이 조폭이건 일반인이건 그들에게 내용적 우아함까지 덤으로 제공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바로 이상과 현실의 괴리이며, 내용과 형식의 부정합이다.

 

 

 


4. 그러나 우아해지고 싶다


  처자식을 캐나다로 유학 보내고 기러기가 된 조폭. 가족이 그리워 눈물 콧물 범벅이 되는 조폭. 이것 또한 일반인에게는 꿈같은 희망이다. 생활에 쫒기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기러기 아빠의 오열은 사치일 뿐이다. 여기까지 오면 생활느와르라는 억지분류가 말장난 수준을 넘어서 개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강인구와 나는 다를 바가 없다. 지갑 속에 보관하고 있는 로또 몇 장과 가족사진 몇 장은 40대 가장의 키워드다. 사랑하는 가족의 우아한 삶을 위하여 오늘도 대박을 꿈꾸는 강인구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수시로 물이 끊기는 낡은 아파트에서 ‘그림 같은 집’을 소망하는 영화 속의 강인구와 우리는 일치된 꿈을 지녔다. 대박을 꿈꾸며 송도로 돌진한 오피스텔 청약자들은 또 다른 강인구의 분신이다. 그러나 행운을 통한 우아함이란 그렇게 만만하게 주어지 않는다. 그것은 진리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영화 ‘우아한 세계’에 대해서 생활느와르라는 생경한 분류보다는 블랙코메디라는 접근이 오히려 설득력 있다. 나의 일상을 감싸고 있는 많은 질서들이 조폭과 다름없는 데 강인구와 나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 ‘우아한 세계’는 결코 우아하지 않게 ‘우리시대 - 대한민국 - 40대 가장’의 고뇌를 조폭으로 희화화하여 우아하지 않은 삶을 스크린에 옮겼다. 슬프지도 않고 웃기지도 않게!

 

[천 지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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