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투쟁이다!
밤 이슥한 때 대머리 조씨 마누라 박아줌씨가 찾아왔다. 그 아줌씨 한테 한번 걸리면 진이 다 빠진다는 소문이 짜하니 아내는 지레 겁을 먹는 눈치다. 들어오라고 하건 말건 -밀고 들어와 퍼질러 앉고서는 쏟아 붓기 시작한다.
“글씨, 그놈의 인간이 내 생일인 데두 꼭두새벽꺼징 싸질러 댕기다가 아랫도리 후질근해싸 가지구 들어왔대니깐요. 시상에 그럴 수는 읎는 거라구요. 지놈의 인간이 사람탈을 썼다믄 내가 지놈헌티 워떻게 해줬다는 걸 쥐좆맨큼은 알아줘야 헌다 이거여! 허구헌날 순대국집 기집년헌티 넋이 빠져 시시덕거리구 싶어 찾아 댕기구, 사거리식당 싸가지 읎는 불여시 겉은 년헌티 마른침 질질 흘려가며 기웃대는 거 내 다 알구 있다 이거여!”
그렇게 시작된 푸념에 신세타령에 욕지거리가 두어 시간을 넘겼는데도 그 넘치는 힘과 풀리지 않는 분노로 봐서는 아직도 두어시간은 실히 더 넘길 모양이다. 과연 소문대로다.
“그 드런놈이 열시살 머슴새끼 겉은 고치도 고치라구 달구 댕기믄서 지혼자 깔짝거리다가 지혼자 색쓰다 찍싸구 내려오는 주제에 바람은 뭔 염병개코겉은 바람이냐 이거여. 지집이구 사내새끼건 간에 그 짓거리 섭하게 해노면 망신중에 개망신인줄두 몰르구 병신이 육갑한다구 치마 둘른 지집년만 보문 암내난 괭이(고양이 새끼)모양 지랄염병이니. 아이고, 이년의 드럽구 드런 팔자야! 아이고오...”
눈치 코치는 가진 적 없는 거다. 예의 염치도 뒷간에 맡겨 논 모양이다. 어린 딸년 앞이라 씨팔 좆팔만 안해줘도 고맙겠건만 우리 부부 소원은 싸그리 무시하고 말끝마다 그 소리요 한술 더 떠 자기 부부 잠자리 얘기는 왜 줄줄이 사탕이냐 말이다.
속이 좀 상하는 판인데 문이 벌컥 열리고 술이 취한 조씨가 들어왔다. 그리고는 욕이란 욕은 (아마도) 모조리 동원해서 죽기 살기로 싸우기 시작한다. 기가 막히고 콧구멍이 막힌다. 남의 집이고 열두시 다 된 시간인데 남의 생각 남의 눈치를 어쩜 저렇게 무시할 수가 있나.
첨에는 순 욕으로 싸우더니 조금 지나니까 조씨가 지 마누라 눈탱이를 한대 쥐어 박았다. 아이쿠! 아줌씨는 비명을 지르면서 눈탱이 맞은데를 움켜쥐고 뒹굴었다. 그러더니 눈에 쌍심지를 켜고 벌떡 일어나 조씨의 오른팔을 물고는 흔들어댔다. 하나님 맙시사! 놀란 아내는 비명을 지르면서 저쪽 구석으로 피하는데 어랍쇼! 이것 좀 보게? 팔을 물어 뜯기던 조씨가 “아이구구! 여보, 여보!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께!” 죽는 시늉을 하며 그 한마디 하니까 아줌씨는 단박에 조씨 팔에서 입을 떼고는 “증말 안 그럴꺼지?” 기껏 해대고는 아팠어? 묻는다.
아이고! 그때의 그 구역질 나는 애교라니.
그리고 나서 해대는 수작들이 “당신이 나를 싸랑해주지 않으믄 내가 외롭잖여” 아줌씨.
“그려두 가끔 바람쐬러 나가는 것은 막지덜 말어” 조씨.
“나갈 땐 나가드라두 그 빨간 넥타이는 매지덜 말어. 내가 치밀어 오른다니께” 아줌씨.
“알았써. 당신두 화장두 좀 허구 이쁘게 그려봐.” 조씨.
그렇게 수작들을 주고 받더니 조씨가 ‘나 가요!’ 한마디 던지고는 다정하게 가버렸다. 그저 황당할 뿐이다.
조씨는 몇해 전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남자 아이들만 셋을 데리고 마누라도 없이 옮겨왔다. 반년쯤 비실대며 실업자 노릇을 하더니 십정동인가 있다는 작은 공장에 취직을 했다. 나이는 사십줄이 넘었어도 사람이 워낙 눈썰미 좋고 손재주가 괜찮아서 일년쯤 지나 프레스 조장까지 되었다.
그 후 생활은 좀 안정이 됐지만 사십줄 홀아비의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데다가 삼시 세끼 밥해 먹이고 설거지까지 해대는 지 애비 심정은 눈꼽만큼도 몰라주는 자식새끼들이 괘씸해서 핑계김에 집적거려 만난 여인이 지금 박씨 아줌씨다. 대책없기로야 조선팔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조씨 마누라 박아줌씨도 눈물 없이는 듣지 못할 순정의 사연은 있다.
전라도 장흥땅에서 코딱지만한 농사라고 짓다가 삼십후반에 믿고 의지하던 남편이 덜컥 죽자 아줌씨는 자식새끼들하고 먹고 살 요량이 없어 무조건 인천으로 이사를 했다. 아들 딸 웬수겉은 새끼들 사남매를 키우느라(아줌씨 표현으로는 아래 그거만 빼고는) 안해본 거 없이 다 해가며 자식새끼들을 키웠건만 그 억척을 떨고 손가락질 다 받아가며 키워논 새끼들이 며느리 얻고 남편 얻더니 홀어머닌 아주 우습게 보고 자기들만 자기들이라고 해대는 꼬라지가 드럽고 허무해 ‘공장이라도 다니며 새출발을 해보자’ 그래 나간 곳이 하필 조씨가 나가는 그 공장이었고 거기서 집적대던 조씨를 만났던 것이다.
만나 일 저지고나니 남자가 외려(오히려) 나이가 다섯살이나 아래니 늙은 마누라가 새파랗게(?) 젊은 신랑을 데리고 살라니 젊은년들(?)얼씬도 못하게 막아내는 일부터가 곧 죽을 노릇이라는 것이었다.
사랑이란 죽을듯 싸우면서도 깨지고 씹히고 터지고 하면서도 결국은 하나를 이루는 것이니 지금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한 젊은이들이여, 싸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열심히 싸워 종당에는 한 몸을 이룰지니라. 성경에는 이런 말씸이 있다. ‘신비하도다. 이 비밀이여!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 둘이 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이 비밀이.(에베소,5:31)’
[민들레별곡 / 강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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