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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민들레별곡

계양산 계곡

by 천 지 인 2007. 2. 5.
 


계양산 뒤쪽


  인천 도심 변두리에 계양산이 있다. 계양산 뒤쪽 계곡에서는 가재가 잡힌다는 소문도 있다. 산비탈 가득 참나무, 물푸레나무, 피나무, 소나무  등으로 그야말로 원시림을 이루고 있다. 계곡 아래로는 찔레덤불숲과 억새풀섶이 무성하다.

  금년에는 산에라도 정성껏 오르자! 그렇게 작심을 하고 일주일에 두어번 계양산을 오른다. 갈 때는 계산동 쪽에서부터 천천히 산 옆자락을 끼고 중턱쯤까지 오르다가 그냥 박촌 농장마을 쪽으로 곧추 내려간다.

  정상까지 오르는 ‘등정’이 아니라 산과 호흡을 같이 해보려는 ‘중턱산행’이니 바쁠 것도 없고 이 악다물고 점령하겠다는 오기를 부릴 것도 없다. 그저 터덜터덜 오르다가 나무숲과 눈녹아 흐르는 물과 억새숲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럭저럭 내려오면 그만인 것이다.

  박촌 농장마을에서 남의 집 소를 관리해주는 목부 김씨는 나이 서른 아홉의 젊은이(?)다. 공부도 꽤 한 사람 같고 인물 됨됨이도 괜찮은 편인 그는 계양산 아래서의 목부생활을 즐기는 것 같다.

  “공기부터가 달라요.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를 달리다가 이곳 초입에 들어오면 코끝이 담박에 씨원해져요. 시내서는 공기가 더운데 여긴 차다는 걸 금방 느낄 수 있지요. 물도 달라요. 난 수돗물은 단 한방울도 못마시겠드라구요. 여기 지하수를 마셔 보세요. 시원하고 달착지근한 게 기가 막혀요.”

  김씨는 돌보는 소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봄에는 노는 땅 묵은 땅을 일궈 호박을 심는다. 소똥을 차곡차곡 재워 놨다가 그걸 봄에 경운기에 싣고는 큼지막하게 파논 구덩이에 듬뿍듬뿍 아낌없이 집어 넣는다. 그리고 호박 묘목을 옮겨다 심어놓으면 그 호박들이 얼마나 힘차게 자라는지. 그래 주렁주렁 달린 호박과 무성하게 자란 잎사귀를 매일 따서 여름 가을 두 철에 솔치 않은 돈도 만진단다. 작년에 호박을 심었다는 비탈밭에 나를 데리고 가 구경을 시키길래 흙살을 만져 보았더니 흙은 소똥과 퇴비를 듬뿍 먹어 한겨울인데도 따스한 기운이 역력해 보였다.

  “여기 정말 가재가 나와요?”

  “물론 우리 어릴적 다랭이논 손질할 때처럼 뭉태기로 나오지는 않구요. 정성들여 잡으면 열대여섯 마리는 잡을 수 있을 거예요.”

  두번 만나 친구가 된 그가 장화를 벗고 운동화로 바꿔 신으면서 자기가 보여줄 데가 있으니 한번 가보자고 한다. 우리는 농장 위쪽, 개 훈련 시키는 무슨 훈련센터 울타리를 끼고 돌아 계곡 안으로 더 들어갔다.

  찔레 덤불과 억새풀섶이 더욱 무성해지니 발걸음 옮겨 놓기도 쉽지 않았다. 이름모를 나무들을 제치고 수풀을 헤치고 계곡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고 또 내려가고 너덧번 그러면서 도착한 곳은 그야말로 강원도 오지의 산골풍경 그대로였다.

  온갖 나무들이 어우러져 하늘을 뒤덮으며 나무숲을 만들고 계곡 양켠에는 아주 작고 줄기가 가는 나무들이 손가락 하나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빼꼭히 차 있었다.

  “한여름에는요 여기를 아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홀라당 벗구 목욕두 한다구요. 내두 가끔와서 다 벗어 제끼구 목깐을 허는데 얼음물 뒤집어 쓰는 것처럼 씨원하지요.”

  그 계곡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 보니 같은 인천 하늘인데도 거기서 보는 하늘은 더 맑고 깨끗해 보였다. 계곡을 타고 올라오는 바람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숲의 솨아솨아 하는 소리, 그리고 깍깍 산까치와 구구대는 산비들기 소리까지 어우러지니 비경 절경이 어디 딴 데 있겠는가.


  광역시로 개편되면서 서울보다 면적이 더 넓어진 거대도시 인천, 그런 인천이 환경불량 상태는 한때 전국 최하위였고 주택문제, 도로교통문제, 문화문제, 교육문제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아귀맞게 돌아가는 게 없었다. 오죽하면 세금착복 사건이 인천에서 제일 먼저 터지고 건축비리가 난무하고 토착토호 세력들의 부정 비리가 그렇게 기승을 부리겠는가. 인천에서 산다는 게 창피하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한때 급속히 늘어난 적도 있었다.

  계양산을 개발한답시고 기껏 내놓은 계획이란 게 썰매장, 사격장, 갖가지 오락장에 먹고 마시는 음식점들뿐이기에 인천의 모든 단체, 이름 꽤나 알려진 사람들이 힘을 모아 그 돼먹지 않은 계획들을 일단 철회시켰다. 그런데도 간간히 물밑으로 도는 얘기들은 언젠가는 기필코 돈벌이 되는 개발계획을 관철시켜 한몫 보겠다는 음모들은 사라지지 않은 모양이다. 서울의 관악산이 저렇게 무너져 내리고 북한산도 필경 거덜날 지경으로 내몰리겠고‧‧‧ 사실은 이곳 계양산도 그저 맘 편히 안심하고 있을 상황은 아닐 것이다.

  김씨에게 물어봤다.

  “도시 복판에 사는 게 편하지 않아요? 시장도 가깝고 하다못해 비디오 하나 빌리려고 해도 거기가 편할테고‧‧‧.”

  “내두 도시생활 꽤 했지요. 근데 이건 사람이 사는 게 아니드라구요. 눈 빨갛게 뒤집구 경쟁이다 뭐다 죽기 살기루 으르렁거리니 말에요‧‧‧ 나도 한 때는 장사도 하면서 너죽고 나죽자 식으루 장사샘두 부려봤는데‧‧‧ 그래 여기 들어오구 나서 맘이 아주 싹 변했어요. 그냥 너그러워지구 편하구 산다는게 신기하구 또 소중하구‧‧‧ 아마 산이구 뭐구 다 깔아 뭉게 온통 집짓구 도로 내구 상가 맨길구··· 그러다간 결국은 사람 종자끼리 치고받구 죽기살기루 으르렁거리다가 종당에는 인간종자 다 없어지구 말지유. 여기서 얼마쯤 벌면 미련없이 시골루 내려갈 겁니다.”

  그와 헤어져 산자락을 타고 내려 오다가 산비탈에 서서 계양산 위를 올려다보니 산은 어쩌면 그렇게 의젓하고 우뚝하기만 한지, 또한 아래쪽 옆쪽을 보니 나무숲은 어쩌면 그렇게 싱그럽고 물소리 바람소리는 어쩌면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푸근하고 행복하게 하는지‧‧‧.


[민들레별곡 / 강진호]

 

(1) 위의 글은 1995년에 쓰여졌습니다.

(2) 2007년 현재 계양산에 골프장을 만들려는 재벌기업과 인천시의 막무가내식의 개발야욕과 지방행정에 대해 항의하고, 계양산을 골프장으로부터 지켜내고자 인천지역의 1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한 '계양산 골프장 저지 인천시민대책위(이하 대책위)'가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3) 또한 27홀 골프장의 중심부(18홀)인 목상동 솔밭의 10m 높이의 소나무에 올라 신정은(환경운동가)씨의 56일간 고공농성에 이어 2006년 12월 21일부터 현재까지 윤인중(목사)께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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