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산다는 것은
우리동네 덕이엄마를 보면 (아마) 누구든지 넉넉해질 것이다.
몸매부터가 그렇다. 167센티쯤 될까? 거기에(역시 아마도) 80킬로쯤 몸무게가 나갈 것이다. 그 큰 궁둥이를 요란하게 흔들고 지나가면 지축이 흔들린다.
말소린 또 얼마나 큰가, 우리 어릴적 증기기관차 화통소리 같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두 눈을 부릅뜨고 침을 튀겨 가며 떠들 때는 아이구 무시워라! 그리고는 툭하면 열을 내고 성질을 부린다. 남자고 여자고, 늙은이고 젊은이고 없다. 동장이거나 구청장이거나 시장이거나(역시 또 아마) 대통령 앞이래도 끄덕않고 핏대 올려가며 할 말은 다 할 것이다.
그래 우리동내에서는 그녀 별명이 ‘황핏대’다. 성이 황씨고 워낙 드런 성질이라 못난 사내 몇명이 모여 그렇게 부르기로 정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덕이엄마에게 있어서 유일한 관심은 오직 포장마차 장사 잘되서 18평 아파트 하나 사는 일 뿐이다.
덕이엄마에 비해 한없이 왜소하고 빈약한 남편 최씨는 술 한잔값 타낼려다 노상 얻어터지거나 집을 쫒겨나기 일쑤다. 얻어먹는 거 미안한지는 알아서 가끔 술한잔 마시고는 지 마누라한테 시비를 건다. 누가봐도 씨알도 안 먹힐 대거리지만 우선 취한 김에 강짜부터 놓고 보는 것이다.
“그래 너 잘났다! 그래두 이년아... 나두 일년에 한번은 대접 삼아라두 한잔 사봐야 체면이 슬거아녀!”
“체면 좋아하네! 그렇게 미안허믄 아진 적 안처먹으면 될 거 아녀!”
“‧‧‧내 인생에 술이락두 안처먹으믄 뭔 맛에 산다냐?”
“네 인생이 워때서? 마누라가 셰빠지게 벌어다 입히구 멕이구 허는 상팔자 아니냐? ‧‧‧ 오뉴월 개팔자도 너만은 못할거다.”
“누구는 개팔자 되구 싶어 됐냐, 네년이 돈 움켜쥐구 한 푼두 안내노니 날건달된 거 아녀?!”
“화상 육갑허구 있네. 고양이헌테 생선을 맡기지너겉은 날도둑놈헌티 돈을 맽겨? 허구헌날 술이나 처먹구 길거리 아무데구 쓰러져 뒹구는 꼬라지나 보라구? 일 읎다 일 읎어!”
그러다가는 결국 최씨가 먼저 두어대 쥐어박는데 두대 정도까지는 우리의 황여사가 맞아준다. 맞아주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상대도 안해준다. 그러면 최씨는 약이 바싹 올라 손으로 안되면 발로‧‧‧ 그래 발길질 한번 더 하려는 찰라, 아이고! 황핏대의 두꺼비 등짝 같은 손이 가슴팍에 한대, 볼따귀에 한대 번쩍‧‧‧ 그러면 그걸로 상황 끝이다. 얼마나 아프실까!
처음 이사온 얼마간은 둘이 싸우고 나면 어떻게든 화해를 시켜 그럭저럭 어울려 살아보게 하려고 애도 썼지만 지금은 그래봤자 하루도 그 전쟁 끝날 기미도 없길래 거의 팽개쳐두다시피 내버려둔다.
그러다가 며칠전 황핏대네 포장마차에 우연히 들르게 되었다. 평소엔 오건말건 지 할일만 수긋이 해대면서 뭘 주문하면 심술 사나운 도사견 닭 쫒아내듯 탕탕 댕그렁 왕그렁 싸가지 없는 여편네 무례한 짓거린 몽땅 해대기만 하고 별로 반겨주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그날은 힘이 쭉 빠지고 풀이 다 죽은 꼬락서니를 하고, “어서 오세유, 앉으세유” 수인사까지 하면서 맞아준다. 시키는 안주를 준비하면서 그 큰 몸뚱이로 한숨을 내쉬고 들이쉬니 우리는 서로 두눈을 깜빡거리며 저놈의 사연이 뭔 사연인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술 두어잔 돌아가고 눈치만 살피던 조씨가 드디어 도저히 참지 못하고 물었다.
“황여사가 오늘은 왜 다 죽는 시늉이유?”
“시늉이 아니라‧‧‧ 증말 죽갔시요.”
황여사는 파를 다듬으면서 굼뜨게 대꾸하더니 뜬금없이 한탄이다.
“어이구, 그 빌어먹을 위인이 겨우겨우 살겠다 싶게 해노니‧‧‧”
우리들 모두 술잔을 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고개 뭔 말씸이다요?”
“아 글씨 덕이아빠가 매칠(며칠) 밥두 안먹구 비실대기에 병원에 안가봤소, 그랬드니 글씨··· 간땡이가 다 굳어지구 위장엔 온통 염증까지 생겼다구 안해요··· 두말도 않구 오래 못살거니까 처먹구 싶은 거 실컷 처먹구, 댕기구 싶은 데는 맘대로 대니다가··· 그기 죽을 날만 기다리라 그 얘기 아니갔시요.”
그러면서 정말 닭똥같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린다. 그 참, 아무리 대책없이 쌈질만 일삼아온 최씨지만 막상 그 말을 들으니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할지 ··· 그래도 다들 괜찮을 거다, 잘못 진단이 나올 수도 있지 않느냐, 다른 데서 진찰을 다시 받아봐야 한다··· 위로랍시고 한마디씩 거들기는 했어도 그 드세고 억센 황여사의 닭똥같은 눈물을 보니 이미 글르긴 글러버렸나 보다 하고 가슴들이 먹먹해져 왔다.
“나가 덕이아빠가 아저씨들헌티 약주 한잔 사야 체면스겄다구 허구헌날 노랠 불러도 대척두 안한 것은‧‧‧ 내 이놈의 포장마차 시작허믄서 작심헌 게 있었기 때문이유. 우리 덕이 위루 기집애 하나가 더 있었는디 그년 다섯살 때 서울 저기 봉천동에서 살다가 죽이구 말었수, 워찌 죽은 지 알어요? 거기 저 고향에서 올라와갖구 그기 방 읃었는디‧‧‧ 애새끼가 셋이나 된다구 맨날 구박입디다. 떠들면 떠든다구 타박이구 밤에 늦게 불 켜논다구 전기세 많이 나온다구 타박이구 변소깐에 자주 가믄 똥 많이 싼다구 타박이구‧‧‧ 그래두 워디 오갈 데가 읎으니 견딜 때꺼징 견뎌보자며 버텼는디‧‧‧ 나중에 방세 서너달 밀려노니 대책 읎시 쫓겨났시다, 그게 양력으루 2월인디‧‧‧ 그기 봉천동 아래 남의집 처마 아래서 날밤새다 그년 폐렴걸려 죽이고 말았소, 내 그때 쎼(혀)를 깨물었소‧‧‧ 무신 일이 있어두 내 아파트 한칸 마련허겠다구 그년 파묻구 약속했시다. 그러니 내 야박허구 모진 년이라 소릴 들어두 돈 한푼 못쓰구 움켜 쥘 수 밖에 없었구‧‧‧ 그야말루 이웃간에 떡 한조각 나눠먹지 못했구, 덕이아빠 친구덜헌티 약주 한잔 대접치 못한 거유‧‧‧”
그러니 황여사나, 우리들 모두나 다 같은 인생살이 살아가는 신세들이고 지금 사는 꼬라지들에‧‧‧ 그렇게 막되먹고 쌍스런 것 또한 악에 받쳐 악만 남은 인생들의 같은 모습이니 술도 한잔씩 먹었겠다, 슬픈 사연도 들었겠다 ‧‧‧ 원래 주둥이만 살아 좀 주착이 없어 그렇지 마음 여린 걸로 보면 조선팔도 일등선수인 조씨가 쿨쩍거리기 시작하더니 정씨성님이 꺽꺽 그러고, 박씨도 체면상 안울 수 없으니 끅끅거리다가‧‧‧ 역시 (사실은) 울보인 나도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포장마차에 손님이 오건 말건 지나가던 사람들이 뭔 줄초상이 났나 넘석하건 말건 아마 요 몇년 사이에 눈물 한번 원없이 쏟았다.
“‧‧‧ 그러니 옛말에 죽두룩 고생만 허든 놈은 좀 살만해지믄 영락 읎시 뒤진다구‧‧‧ 그 인간이 그 좋아하는 술 한잔두 안 사주믄서 악착을 떨구 허구헌날 구박만 해댔으니‧‧‧ 내 이제야 밝히는 건데 삼천만원 모아놓구 요 앞 태양빌라 하나 살려구 다 준비했는디‧‧‧ 그 인간이 그런 드럽구 몹쓸병에 걸려 죽을 날만 기다린다니‧‧‧ 아이고오 아이고오! 하늘두 무심허시구 부처님두 양심이 읎스시지‧‧‧”
우리는 아마 두어시간 손들을 맞잡고 나중에는 어깨들을 그러안고 울고 또 울고 울고 또 울었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 네처지 내처지가 다 똑같고 네놈내놈의 팔자도 같고 지금 당하는 형편이나 말못하고 끙끙 앓는 속사정도 같고‧‧‧ 사장이네 선생이네 똥폼 잡아봤자네놈이나 내놈이나 똥개울 옆에서 거지발싸개 겉은 집구석 셋방살이 주제도 같은데‧‧‧ 왜 우리들 처지가 서럽지 않고 우리들 운명이 화나지 않고 높은 놈들 해대는 꼬라지에 분통이 터지지 않겠는가. 최가놈 인생이 우리네 인생인 바에 고생고생만 하다 이제 태양빌라 18평짜리라도 장만할만 허니 뒤진다는데 그게 어찌 서럽고 서럽지 않겠는가. 우리는 그날 포장마차에서도 울고 다시 최가한테 몰려가서 거기서 또 울었다.
그리고 오늘 딱 일주일이 지났는데 최씨 인간집에서 곧 염병난리 떨듯 황핏대 소리소리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이거 최가가 아주 간 게 아닌가 우리 모두 허겁지겁 몰려 갔다. 글쎄, 그렇게 갔더니‧‧‧
“야, 이 개겉은 인간아, 그래 아무것도 아니라구 진단 나왔다구 그래 고새를 못참구 또 퍼마셔대구‧‧‧ 그래 약 사처먹고 몸뚱이나 건강해지라구 그 돈 줬드니 그걸루 다 퍼마시구, 그것도 모잘라서 그 여시겉은 년헌티까지‧‧‧ 그렇게 처발러?”
바로 일주일 전에 다 죽어간다구 청승을 떨던 최가는 쌩쌩해져 더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
“이년아, 네가 나 불쌍허다구 이젠 먹을 거 실컷 먹구 맨날 술 마셔두 된다구 했잖여?”
“어이구 어이구‧‧‧ 차라리 암진단 나와 칵 뒤지기나 해라!”
사연인 즉슨 서너개 병원을 더 돌면서 정밀 검사를 받았는데 가는 곳마다 염증이니 암이니 간경화는 간데없고 오히려 너무 건강한게 탈이라는 진단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서럽고 서럽게 울어댄 우리들은 너무 황당해 지들 싸우느라 우리에겐 관심도 안주는 최가와 황핏대에게 한바탕 욕설만 퍼부어댔다.
그러니 누구 말마따나 최가 죽기를 바랐나? 싸우면 어떻고 소리치면 어떠나, 가난하면 어떠냐 고달프면 어떠냐‧‧‧ 우리에겐 분명 내일의 희망도 넘쳐 있으니 똥개울 옆에서라도 힘차게 살자꾸나. 죽기는 왜 죽나.
그나저나 최가놈은 신바람이 나겠구나.
* [아진적 = 아예 진즉]
[민들레별곡 / 강진호]
* 단행본에는 제목이 '황핏대, 울다가 웃었다'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원제의 느낌이 더 좋아서 수정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