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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민들레별곡

영종도 겨울바다

by 천 지 인 2007. 1. 29.
 

영종도 겨울바다


연말연시 때는 틀림없이 여기저기 오라는 데도 많고 갈 데도 많을 거다. 그러면 우리끼리 오붓하게 모일 기회도 없을 것인즉 아예 말 나온 김에 모여 버리자. 그래 우리는 이번 토요일 오후 세시에 영종도에 모였다.

뱃터에서 횟거리도 좀 사고 마실 것도 준비하여 모임장소로 몰려 들었다. 자리 잡은 곳은 바로 바다 옆이었다. 날씨는 꾸물거리고 파도는 거칠게 일렁이고, 바람도 사납게 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들 모이니 기분들이 좋은가 보다.

아줌씨들이 먹을 걸 준비하느라 한창인데 조씨가 느닷없이 나서서 자기가 사회를 본단다. 그러니 다들 지겨워하면서도 구구로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그놈의 끔찍하고 황당한 사회자 유세를 이십분씩이나 듣고 금년 한해 살아오면서 어려웠던 일들, 새해의 희망사항들을 한마디씩 하래니 성질 급한 정씨 성님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아줌씨들은 죽도록 일만 하라고 놔두고는 사내들끼리 지멋대로 그렇게 시작이다.

“금년엔 뭔 사고가 고렇게 많았댜? 비행기 사고, 배 사고, 기차 사고, 줄줄이더니 종당엔 다리까지 무너지구 사고 한번 났다 하면 이건 수십명씩 죽어나가니... 그래 어른은 어른이래서 그렇다구치구 금이야 옥이야 키워논 자식새끼 죽여버린 부모맴(마음)이 워떻겄냐 말여! 그리구 웬놈의 날씨는 고렇게 더웠구 뭔놈의 가뭄은 고렇게 끔찍했댜! 내년에두 금년 겉으면 워디 불안허구 심란스러워서 지대루 살겄냐  말여.”

회무침을 나르던 최씨부인이 냉큼 끼어든다.

“고게 다 청와대 안에 있던 불상을 치워뿌렸기 때문이래요!”

박씨가 뜸벅뜸벅

“그거이 아니라구... 텔레비에 나왔잖여!”

최씨부인은 아예 자리에 끼어 앉는다.

“누가 알으요? 치워놨다가 말이 많으니까 살짝 갖다놨는지?”

최씨가 자기 마누라에게 화를 벌컥 낸다.

“무식허게 당신은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소리라구 허지덜 말어! 부처님이 원제 청와대 차고 앉아 장기집권 허시겠댜? 부처님 가르침으루 살 시절에는 부처님 가르침으루 사는 것이구 예수님 가르침으루 살어야 헐 시절에는 또 그대루 살어야 되는 거여!”

다른 사람이 있건 없건 아무 데서나 아무 때나 툭하면 성질내는 지 남편 땜에 속상한 최씨부인이 이죽거린다.

“고게 무신 도사님 말씀이랴? 부평에서 도사 나셨네!”


“나가 목수밥 먹은 지 이십년 됐는디 옛날에는 그저 후딱후딱 빨리빨리 해치워야 내 입에 풀칠이래두 헐 수 있었다 이거지, 공사판 벌려노면 윗놈덜이 공사비 반쯤 짤라 이놈저놈 여기저기 뭉텅뭉텅 나눠 처먹구 나머지 갖구 공사를 하려니까 시간 따먹기에 품값 따먹기루 되버렸는디 그 지경에 꼼꼼허게 착실허게 헐 짓 다 해가면서 일 벌린다믄 당장 쫓겨나거나 거덜나기 십상이었지. 사실 그 시절에는 고렇게 대강대강 해치워 버려두 크고 높은 건물덜이 별반 없던 시절이니께 그런대루 버텨왔었는디 요새는 지었다 하면 고층건물이구 어마어마허게 커 노니께 옛날츠럼 고렇게 대강대강 허투루 했다가는 당장 요절이 난다 이거여. 워디 건물만인감? 배구 비행기구 기차구 이잔 사람딜이 왕창 왕창 옮겨 나구 댕기는 시절이라 옛날츠럼 대강대강 해놨다 사고나면 떼죽음을 하게 된다 이런 말씸인디, 세계화 국제화가 뭐여? 전문적으루 고 뭐다냐 자기 맡은 거에는 일등이 되야 된다 고거 아녀? 일등 전문가가 날림에 눈속임을 워떻게 할 것이구 남이 뭐랜다구 대강대강 허투루 헐 수 있겠냐 말여 이잔 웃놈덜이 뭐라건 내 맡은 일은 내 책임지구 틀림없이 해놀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된다 이거드라구.”

석고보드 일 맡아 하는 정씨성님이 끼어든다.

“아따 고 얘기두 틀린 얘기는 아니겄지. 최씨 얘기 들으면 대강대강 후딱후딱 일한다구 소문난 내를 두구 허는 말 같어서 기분이 나쁜데.... 아니 그럼 고렇게 정성스럽게 틀림없이 일을 해노면 고만한 노임은 계산해줘야 될 거 아니냐 이거여. 노임은 옛날 고대루구 일만 잘하라구 헌다면 솔직히 얘기혀서 밑져두 이만저만 밑지는 게 아닌디. 최씨는 무슨 재주루 손해 안보구 품값이나마 챙긴단가?“

최씨부인이 다시 물고 늘어진다.

“그라믄 부처님은 날림으루 살던 시절에 부처님이구 예수님은 당신 말대루 고 뭐냐? 전문가 시절에 예수님이니께 예수님은 더 높구 부처님은 더 얕은 걸세! 부처님께 천벌은 받아놨네.”

최씨가 열이 받치나 보다.

“이런 화상허구... 이 등신아! 나남 죽없이 하루 밥 세끼두 먹질 못해 쩔쩔매던 시절엔 고렇게 서루서루 뜯어먹으믄서라두 살아가는 것이여 -- 그땐 이런거 저런거 살피구 엿볼 여유두 없었다 이거여. 밥 한그릇만 실컷 얻어 먹어두 감지덕진데  부처님이믄 워떻구 예수님이믄 워뗘? 고땐 고렇게 해서라두 먹구 살게만 해주믄 고게 다 하느님이셨다구.그라구 정씨성님두 노임타령하는 거 잘못은 아니지만 성님 자신이 여지껏 해오던 요랑으루 대강대강 일하믄서 몸값이나 냄겨먹을랴구 허든 것에서 빨리 벗어나야 된다 이거요. 내 기술을 알아줘야 노임두 더 달라구 싸울 수 있다 이겁니다.”

“그게 지금 안되니까 허는 말이여! 내가 아까 배를 타고 여기 건너올 때 배에 탄 안전요원인가 그 젊은이에게 물어봤어. 한달 봉급이 을마나? 사십만원 쪼금 넘는다는 거여. 그러니 그 청년이 이 배가 내 배다, 이 회사가 내 회사다, 여기 배에 탄 손님이 내 손님이구 내 책임이다. 고렇게 사명감을 갖구 책임감을 갖구 일허겠냐 이거여. 내가 금년에 배 사고난 위도 근처가 고향이라 배에 대해서는 대강 아는디 그래 월급을 쥐꼬리맨허게 주면서 사장이라는 작자가 자기 사원 얼굴두 한번 못봤다는디 그래두 안전만 책임지란다구 그기 말루만 해서 되냐 이거여!”

좀 밀리는 최씨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공무원이구 정치가구 그것들이 다 죽일 인간덜이여!”

정씨는 마시던 술잔을 내려놓는다.

“고것두 고런 것만은 아녀. 경찰관 허는 집안사람 얘긴디. 그 사람이 경찰노릇 이십몇년 했어. 이십사평 아파트 갠신히 구해서 그거 원부금 넣구 관리비 내구 그러면 요새는 그게 이십만원 든댜. 아이덜 대학 안보낼 수 있나? 그래 과외 시키구 학원 보내구 그러는 데 또 이십만원. 제일 작은 차를 몰구 댄기는디 그게 삼사십만원은 든댜.그럼 그것만혀두 월급 다 나가는거여. 그러면 뭘루 먹구 사냐? 뻔할 뻔자 아니겄어? 경찰이구 공무원이구 정치가구 해먹는 기 물론 나쁘지만서두 아파트를 져두 왜 모조리 그렇게 크게 짓구 꼭 대학을 가야 사람대접 받구 돈벌구 큰차를 타야 유지행세를 하구...사회가 고렇게 돼 먹었는데 어떻게 혼자만 꺠끗히 때 안묻히고 살 수 있겄냐 이거여.“    

조씨가 톡 나서서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래요?그럼 그렇게 잘못됐다면 정치가고 지도자고 그런 인간들이 고쳐야지 그게 무슨 백성들 잘못이래요?그런 거 제대루 하라구 비싼 세금내서 왕창왕창 월급 주는 거 아냐요?”

“그라니까---삼사십년을 그런식으로 여직꺼징 왔는데 지금 와서 사람만 나쁘다구 내치구 받아치구 그러면 언놈 하나라두 배겨낼 재주가 있겠냐 이거여.내 일본에 연수갔을 떄 보니까 일본엔 장관집이구 검판사집이구 공무원들 집이구 다 코딱지만하구 차들두 다 분수껏 타구 다니드라 이거여.그라니까 그 사람들이 부정을 저질르구 그럴 이유가 읎드라 이거여.”

“그러니까 지금이라두 고쳐볼랴구 저 난리 아니겄시요.”

“맨날 국제화니 세게화니 떠들구들 있는디 난 도데체 그놈의 말이 뭔 말인지 통 몰르겄다구 --

“새루 짓는 것만 새마음으루 잘 진다믄 그게 해결이 나남? 다리만 고치구 그걸 거 아니라구. 좀 힘들구 어렵드라두 옛날에 잘못된 거라믄 모조리 고쳐놔야 새마음도 먹게 된다 이거여! 국제화구 세계화구 내는 도대체 뭔 말인지 알 수가 없다니께. 그러면 내겉은 사람은 세월에 떠밀려 허접쓰레기츠럼 멀건히 그거 되가는 꼴 쳐다만 보다가 뒈질 일만 남았는디... 나라 어른이라는 사람덜이 그래두 되는 거여? 예의적으루두 그래선 안되구 또 우리겉은 사람이래두 제껴놓구 그렇게 허겠다면 워디 그래보라 이거여. 내 말은 같이 가자 이거여! 시절이 서둘루니께 사람맘두 급허긴 허겄지만 아무리 그려두 밑에서 안받쳐 주면 소용없다 이거지.”

어려운 얘기나 심각한 얘기는 딱 질색인 조씨가 서둘러 잔을 든다.

“통일되면 다 돼! 다 된다구! 자자 한잔씩들 허구 부처님은 먼저 오신 양반이니께 옛날놈들 뜯어 고치구 예수씨는 젊은 놈들 정신이나 차리게 해달라구 기원하는 의미에서 짝!”

그러니 첨서부터 지 혼자 잔뜩 폼잡고 쓸데없는 위세를 떨다가 지 풀에 지가 못견디는 꼴이다.

“세계화두 맞구 국제화두 맞다, 통일두 맞다 이거여! 결론적으루 얘기하면 돈벌어 맘 편하게 살아보자 이거여! 그라구 실컷 마시구 즐기자 이거여!”

도무지 동문서답에 오락가락한 결론을 지멋대로 내리고 나서는 결국 다 집어치구 놀기나 하자며 설쳐대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은 얘기도 못했는데 그 모양이다. 가라오케에서 육자배기에 시끌벅적한 지루박인가 뭔가가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몇몇은 벌써 궁둥이들을 들썩이며 튀어나갈 기세다.

 

[민들레별곡 / 강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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