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통행세
아파트를 드나드는 배달원에게 사용료 명목으로 통행세를 받는 아파트가 2년전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다. 대전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배달원이 승강기를 이용할 때 전기료가 든다며 매달 15,000원씩 통행세를 징수했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우유나 신문 배달원의 한 달 수입은 기껏 70만원 수준이다. 만약 이들에게 4개 단지 이상에서 통행세를 받는다면 전체수입의 1/10에 해당하는 큰돈을 징수당하는 셈이다. 그들은 한 푼도 아쉬운 처지이지만 생업을 위해 아파트 측의 요구를 거절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서울 잠실지역의 아파트가 비슷한 사례로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요즘 신규 아파트에는 각 동별로 출입통제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다. 이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출입카드가 필요한데 카드보증금으로 5 ~ 20만원과 월사용료 5만원을 배달원들에게 부담시킨다는 것이다. 물론 관리사무소도 명분은 있다. 외부인의 무분별한 출입을 통제하여 범죄를 예방하자는 것이며, 사용료는 카드에 대한 것이 아니라 승강기 사용료라고 해명한다. 신문이나 우유배달원은 승강기를 매일 이용하므로 당연히 전기료를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다.
공동주택에서 관리비란 시설의 사용, 유지, 보수 등을 위해 입주자 등에게 부과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입주민들 개개인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한도 내에서 관리비로 비용을 다 부담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주민들 편의를 위해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별도로 비용을 부담시켜 관리비를 절감하겠다? 문전까지 상품을 배달하는 것은 입주자들의 필요에 의한 서비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승강기 사용료를 징수하는 것은 입주민들에 대한 ‘눈치보기행정’이며, 약자에 대한 ‘일방주의행정’에 다름 아니다.
만약 원가문제로 이들이 문전배달 서비스를 하지 않고 우편물처럼 1층 로비에서 배달을 종료한다면 그 불편은 고스란히 입주자들의 몫이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인 배달원들의 처지에서는 이렇게 서비스의 질을 저하시키기도 어려우며, 그렇다고 이것을 상품단가에 반영하여 소비자에게 전가시키기도 어렵다. 재미있는 것은 사용료를 받는 아파트의 시세가 148.7㎡(45평형)이 약 12억원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발상의 안이함과 배려의 부족이 안타까울 뿐이다. 만약 배달원들에 대한 사용료 징수가 옳다면 입주민들도 철저한 원가분석에 입각해 차등부과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입주민들에게 승강기 전기료를 부과할 경우 층별 차등화와 세대구성원 숫자, 월평균 방문객 숫자 등에 따른 부과지침을 세밀하게 구분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차등부과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당 단가를 일률적으로 각 세대에 적용하는 것이며, 세대별 부과요금은 이런 다양한 경우의 수가 모두 함축되어 표준화된 것이다.
관리주체는 입주민의 편의를 위해 관리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로 인해 제3자나 사회적 약자가 불편부당한 처분을 받아서는 안 된다. 관리비 절감 그 자체로 모든 정책이 합리화될 수는 없다. 절감을 위한 정책도 보편성과 합리성을 지녀야 하며, 그래야만이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입주자들은 하루에도 온갖 종류의 다양한 민원을 제기한다. 이러한 각종 민원에 대해 중심을 잡고 교통정리를 해야 하는 것이 바로 관리주체의 역할인 것이다.
[한국아파트신문 - 2009.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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