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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인 - 더불어

[스크랩]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운가

by 천 지 인 2007. 7. 21.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운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하루 여덟 시간을 제 자리에 멈춰선 채
화장실조차 갈 수 없었던 그들도 꽃보다 아름다운가.
하루에도 산더미 같은 물건을 팔아치우면서도 막상 제 것으로는
단 하루도 지닐 수 없었던 그들도 꽃보다 아름다운가.


온종일을 서서 일하다 퉁퉁 부은 다리로 어기적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도 꽃보다 아름다운가.

아픈 새끼를 집에 두고 와서도 “고객님, 어서 오십시오”
"사만 팔천 사백 이십 원 나왔습니다. 적립카드 있으십니까?”
“비밀번호 눌러주시겠습니까?”“고객님, 봉투 필요하십니까?”
“고객님, 안녕히 가십시오. 고맙습니다”
컨베어 벨트를 타고 오는 부품처럼 밀려드는 손님들을 향해
하루 수천 번도 더 웃어야하는 그들도 꽃보다 아름다운가.


고객님의 부름이라면 득달같이 달려가지만
집에선 새끼도 서방도 만사가 귀찮기만 한 그들도 꽃보다 아름다운가.

그렇게 일하고 한 달 80만원을 받았던 그들도 꽃보다 아름다운가.
1년 계약이 6개월로 6개월이 3개월로 3개월이 0개월로
그런 계약서를 쓰면서도 붙어있기만을 바랬던 그들도 꽃보다 아름다운가.


 

주저앉고 싶어도 앉을 수 없었고 울고 싶어도 울 수 없고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고 소리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던
단 한 번도 그럴 수 없었던 그들도 꽃보다 아름다운가.

▲  이정원 기자


그러나 지금 그들은 꽃보다 아름답다.
너펄거리는 반바지를 입고 딸딸이를 끌고 매장 바닥을 휩쓸고 다니는
그들은 어떤 꽃보다 아름답다.


 

매장 바닥에 김칫국물을 흘려가며 빙 둘러 앉아 도시락을 먹는 그들은
이제야 비로소 꽃보다 아름답다.
거짓웃음 대신 난생처음 투쟁가요를 부르고 팔뚝질을 해대는
그들은 세상 어떤 꽃보다 화려하다.

▲  이정원 기자


성경엔 노조가 없다는 자본가에게 성경엔 비정규직도 없다고
자본의 허위와 오만을 통렬하게 까발리며 싸우는 그들은
어떤 꽃보다도 값지다.


 

한 달 160만원과 80만원. 정규직과 비정규직.
말로는 '하나'임을 떠들지만 사실은 '둘'이었던 정규직의 알량한 위선을 넘어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구호가 얼마만한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온몸으로 증언하는 그들은 어떤 꽃보다 귀하다.

▲  이정원 기자


이 싸움은 단지 이랜드 홈에버의 싸움이 아니다.
비정규직 철폐를 외쳐왔던, 비정규직과의 연대를 부르짖어왔던
우리들의 의지와 양심을 시험하는 싸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비정규직이라는 이 사회의 '불편한 진실'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게 될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싸움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그들에게 향하는 우리의 마음 하나하나, 발길 하나하나가 힘든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힘과 용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