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IMF 이후 ‘글로벌 스탠다드’가 우리나라를 휩쓸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눈물 흘리는 다수의 퇴출자가 존재했다. 연공서열과 평생직장의 개념은 고용의 유연화, 아웃소싱, 성과급 등을 중심으로 노동환경이 '유연'하게 개편된지 오래이며, 이제는 공무원 사회에도 개방형 인사제도를 필두로 다양한 업무평가제도와 퇴출제도가 도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고용의 유연화는 더 나아가 최근 ‘천재경영’의 유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출한 소수가 평범한 다수를 먹여 살린다는 '소수 중심의 인재론'을 토대로 기업들은 ‘인재전쟁(talent war)’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경영의 흐름이 대세 또는 진리로 여겨지면서 10여년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일본식 경영’의 화두 - 연공서열, 평생직장 등의 가치를 이야기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지만 ‘글로벌 스탠다드’로 인식되는 최근의 흐름은 과연 의심의 여지없는 진리인가?
2.
자본주의의 심장 미국에서 ‘제프리 페퍼’ 교수는 전혀 다른 주장을 펼친다. 그는 해고와 비용절감이 경영자의 능력으로 평가되는 요즘의 경영관행에 대해서 “대체 어떤 근거로 그걸 믿고 있느냐”고 반문한다. 오히려 "조직구성원들의 창의성을 살리고, 몰입하도록 유도하는 직장을 만들려면 고용의 안정성이 필수적이다"라고 역설한다.
그는 성공하는 기업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성공 열쇠를 ‘인간중심전략(Human-centered strategy)'이라고 정의한다. 살맛나는 직장, 신바람 나는 일터를 만드는 것이 비결이라는 얘기다.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중성자탄‘이라는 별명을 얻은 ’잭 웰치‘에 대해서는 “단지 언론플레이에 능한 대리인을 갖고 있는 인물”로 혹평한다.
3.
제프리 페퍼에 의하면 "기업의 문제는 혁신과 제품 서비스의 질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관건은 어떻게 사람을 경영하고 유지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기업이 훌륭하게 살아남으려면 제품과 서비스를 일상적으로 재창조 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일상적으로 이 일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람이며, 사람의 창의적인 잠재력을 이끌어 내는 조직내 인프라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사람을 뒷받침하는 조직내 인프라는 ‘시스템’이다. 즉 평범한 사람들이 비범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비결은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능력 있는 개인과 영웅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움직이는 시스템과 관행의 중요성을 그는 역설한다.
그가 말하는 ‘관행’이란 직원들을 훈련시키는 데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들이 훈련에서 배운 기술(skill)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삼가야 할’ 관행도 있다.
직원들의 창의력을 구속하는 관행 - ‘창의적이되 실패해서는 안 된다’ ‘창의적이되 예산을 맞춰라’ ‘창의적이되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해라’ 등등 창의를 요구하면서 실제로는 제약하고 구속하는 관행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4.
사람의 문제에서 CEO나 중간관리자도 예외는 아니다. 그들도 잘못된 관행에서 벗어나야 하며, 창의적인 새로운 관행을 중심으로 시스템에 편입되어야 한다. 직원들을 창의적인 시스템 중심으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CEO나 중간관리자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첫째 덕목이다.
둘째로 ‘자기가 모를 때 꾸미지(make it up) 않아야 한다.’ 모르면 일어나서 당당하게 ‘모른다’ 혹은 ‘확실하지 않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CEO나 중간관리자의 가슴에는 항상 ‘사람 중심의 핵심 가치체계’가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 중심의 가치에서도 용인되지 않는 것이 있다. 조직의 핵심적인 가치를 위반하거나 고객과 동료직원에 대해서 적절치 못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로서 이러한 사람은 시스템에서 제외 대상으로 꼽는다.
5.
제프리 페퍼의 주장은 IMF 이후 우리 사회 전반에 퍼진 ‘글로벌 스탠다드’와는 차이가 있다. 사람의 문제를 비용으로 인식하던 흐름에 그는 제동을 건다. 그는 역동적이고 창의적으로 조직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으로서 사람을 바라 본다.
그것도 비범한 소수가 다수를 먹여 살린다는 ‘천재경영론’과는 다르다. 평범한 다수가 올바른 조직문화 속에서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것 - 바로 이것이 지속적이고 훌륭한 조직을 만들어내는 기본 원리라는 것이다.
[ 천 지 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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