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이상한 나라, 한국의 지식사회 中
-지식인이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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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노르웨이 국립 오슬로대 교수 |
“자본주의 사회 범주에서 이야기하자면 지식인이라기보다는 지식 노동자죠. 자본과 국가에 필요한 전문 지식을 자본과 국가에 고용되어서 제공해주는 특수 노동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자본과 국가 존재의 당연성을 대중한테 설명하고, 이 질서가 유익한 질서이고 합리적 질서라는 담론을 사회에 유포시킴으로써 기본 질서를 합리화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지요.
미국 민주주의의 경우 펜타곤의 군사적 모험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아무런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요. 정확한 의미에서는 민주주의라 부를 수 없습니다. 노엄 촘스키 말대로라면 민주당, 공화당도 ‘대자본당'입니다. 야당이 없어요. 두 여당 사이에 전쟁이 있는 거지요. 민주사회라 부르기에 수많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지식인이나 정치학 가르치는 교수들 중 열에 여덟아홉은 민주사회라고 부릅니다. 노엄 촘스키나 하워드 진 같은 사람은 극소수예요.
반대로 지식인을 진보적 의미에서 보면, 이 사회의 생산 구조, 소유 구조에 대해 문제 제기하고, 이 사회의 구조가 이 사회의 생산력 발전 수준에 알맞게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또 인성을 황폐화시키는 지금과 같은 사회 정치적인 구조를 어떻게 좀더 환경, 인간 친화적으로 바꿀 수 있는가, 폐단을 극복해서 앞으로 나갈 수 있는가를 탐색하는 사람들을 지식인이라고 봐야죠. (이런 지식인은) 한국이든, 미국이든 다수가 될 수가 없죠.”
-대선 정국이라서 그런지 권력과 지식인 관계, 권력을 좇는 지식인들의 행태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표적 문인들이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제가 이문열·황석영의 작품 많이 번역했어요. 저로서는 가까운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황석영 작가의 소설 ‘무기의 그늘’은 제국주의 전쟁의 실체를 예술적인 수단으로 보여줌으로써 비판적 사실주의의 백미를 우리한테 보여준, 문학사에서는 기념비적 작품이죠.
문제는 뭐냐면 70, 80, 90년대를 지나 중도우파가 등장하면서 그분들이 싸웠던 독재는 없어지고, 지금 새로운 독재 권력이 생겼습니다. 그게 자본의 독재죠. 중도우파가 하수인으로 섬기고 있는 재벌의 독재입니다. 기업에 예속되어 있고 노예화되어 있는 사회로 지금 접어든 것인데, 70~80년대에 등단하시고, 여태까지 문단을 주도해오신 분들은 이 변화를 거의 느끼지 못한 것 같아요. 여전히 이 사회는 민주화 단계에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중도우파의 영향력을 벗어나야 황석영 선생님도 사회에 유의미한 발언을 하실 수 있는데, 지금 황석영 선생의 견해는 그렇지 못하시는 게 아닌가, 매우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지난번 황석영 선생이 저를 아주 놀라게 만든 것은 손학규를 지지하면 어떨까라는 뉘앙스를 풍기신 겁니다.
뭐랄까 노무현이라는 자본의 하수인 대신에 훨씬 더 자본에 친화적인, 또 하나의 하수인을 받들자는 이야기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전향한 경험 있는, 자본에 백기투항한 사람을 우리가 진보로 삼아야 한다는 말씀이신데, 그만큼 지금 사회의 급선무가 무엇인지 황석영 선생이 파악 못하신다고 봐야 합니다. 이 분들의 영향력이 문단에서 대단히 강하기 때문에 문단의 급진화,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모든 불리한 계층, 피해 계층의 투쟁을 막는, 지식의 힘으로 작동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시민운동과 지식인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시민사회 대표적 지식인들도 정치 권력과 이래저래 연관을 맺고 있는데요.
“한국 시민사회의 큰 문제는 극단적으로 위계 서열화되어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참여연대나 경실련 특히 경실련을 주도하는 층은 명망가층이고요. 말 그대로 상당한 권위와 권력을 갖고 있지요. 그런데 밑으로 갈수록 환경이 열악해요. 참여연대 밑에 분들이 간사급 활동가들이 노조 만들고 싶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명망가들이나 지식권력 소유자들은 시민운동을 발판삼아 보수 정계에 영입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시민운동 단체들이 정부에 이용되고 한국의 지배자들에게 이용되고, 하류층의 급진화를 막아주는 완충지대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하게 되는 부분이 있는 거죠. 특정 시민 단체의 고급 활동가가 정부에 영입될 경우, 그 단체로서는 정부에 대해 해야 할말, 현정부를 범죄정부라고 할 수 있어야죠. 그런데 그렇게 말하기는 힘듭니다.”
-올해는 민주화 2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학계에서는 87년체제에 대해 많은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민주화 20주년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민주화라는 기만적 주술부터 풀어 놨으면 좋겠습니다. 민주화된 적 없잖아요. 민주화라는 게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기만 중에 가장 나쁜 기만 아닌가 싶습니다. 제도적 정당 경쟁이 도입된 건 사실이고, 군사 집단 물러나서 숨겨져 있는 자본 독재 체제로 접어든 것은 사실입니다만, 민주화는 자기 기만에 불과한 것이죠.
우리는 경제 부문에서는 기초적 민주주의도 없습니다. 유럽 대다수 기업의 운영위원회를 보면, 노동자들이 대표 3분의 1을 차지하거든요. 한국 사회에서 경영 참여가 있습니까. 가장 절박하고 가장 필요한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아요.
한국 대학에 민주주의가 있습니까. 두발 규제 있는 학교에서는 민주주의 ‘민’자도 맞지 않아요. 우리가 ‘민주주의 없는 민주화’예요. 한국 지식인들이 이 사실에 눈을 떠가지고, 진실된 의미의 민주화 투쟁 다시 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진실된 의미의 민주화 투쟁은 거대 기업의 사회 지배에 대한 투쟁이기도 하고, 일자리 민주주의,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투쟁이기도 하고, 양심수 석방을 위한 투쟁이기도 하고, 비정규 노동의 정규화·조직화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투쟁에 지식인이 앞서야 하고, 그걸 못하면 부끄러워야 하는데 우리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게 유교에서는 아주 큰 덕목인데, 그게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지식인들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1970년에 전태일의 분신 자살이 있지 않았습니까. 이 사건이 한국 사회 수많은 지식인들을 일깨워줬습니다. 한국 노동 운동을 일깨운 데 있어서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수많은 지식이들이 말 그대로 진정한 의미의 지식인이 되는 어떤 결정적 전환점이 된 거죠.
지금도 해마다 수많은 전태일들이 분신 자살하기도 하고 투쟁하다가 죽기도 합니다. 한국 감옥들이 양심수로 아직 붐비고 있어요. 여호와의증인이 많지만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제외하고도, 업무방해죄니 집시법 위반이니,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이니 같은, 노동자들의 약간의 자기 방어 행위도 가혹하게 폭력으로 간주되는 겁니다. 김성환 삼성일반노조위원장처럼 비판이 명예훼손이 된, 재벌이 만든 양심수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 감옥이 양심수로 붐비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한국 교수들 중에 양심수 석방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양심수를 계속 생산하는 사회가 도대체 어떤 사회인가라는 것에 대해 고심해야 하지 않습니까.”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대선 구도를 ‘중도 우파의 종말’ ‘신자유주의 심판’이라고 규정하셨는데요.
“중도 우파(노무현 정권)의 종말이라고 봐야지요. 노무현 정권의 가장 독한 정책은 이라크 파병이었어요. 미국의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군사 모험에 한국의 중도우파가 이용될 정도밖에 안된다면 이걸 중도우파, 중도라고 부를 만한 근거가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제기할 수 있어요.
극우와 중도우파를 구별하는 여러 기준 중 하나는 대외 정책에 있어서 대미 태도인데, 바뀌어가는 세계 질서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이라도 잡을 수 있는가는 중도우파의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균형 잡기는커녕 숭미주의를 극대화시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파병해서 사람(오종수 중위)까지 죽었잖아요. 파병이 인간의 희생을 가져왔다면 이건 범죄죠. 김선일씨 때도 범죄라고 규정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범죄를 저지른 뒤에는 중도우파에서 중도 두 글자를 빼버려야 합니다. 그냥 우파인데, 문제는 이들이 한나라당과는 경쟁이 안되는 우파라는 거예요.
유시민씨의 경우, 처음 전투병 파병 대신에 비전투 요원의 파병을 주장했다가 청와대 분위기가 파병 쪽으로 기우니까 ‘파병의 불가피성’을 역설했잖아요.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에서 국제연대활동을 했던 이 사람은, ‘보스’인 노대통령이 제국주의 전쟁에 참여하겠다고 하니 갑자기 꼬리를 내려 거기에다 무비판적으로 따랐고, 결국 그렇게 해서 장관도 되었잖아요. 이게 권력에 들어간 지식인의 대표적 모습이라면 한국 지식인이 망한 것은 사실인 듯합니다.”
[경향신문 / 2007년 6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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