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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讀書三到

사람이 뭔데

by 천 지 인 2007. 6. 19.
 

 

1. 함박꽃


.... ‘직인(職人)’이란 일본 책에서 마음에 든 글을 옮겨봅니다.


일거리에 귀하고 천한 건 없으나 삶의 모습에는 귀천이 있다.


일이란 금맥이 아니고 인맥이다. 인맥 속에서 금맥을 찾아라. 금맥 속에서 인맥을 찾진 마라.


머리가 둔한 개구쟁일 억지로 고치려하니까 세상이 시끄럽다. 머리가 둔한 놈한텐 알맞은 일거리를 찾아 주는 게 부모의 책임이다. 사실은 머리가 조금은 둔한 편이 좋다. 애교도 있고, 세상을 제법 즐겁게 살아가더라.


“얼음이 녹아서 □ 이 된다”는 문제가 있다. 답은 수(水). 봄(春)자 쓴 놈도 있다. “얼음이 녹아서 봄이 된다.” 멋진데 그래도 그건 X.  물 水 봄 春 다 맞은 답인데, 인생이란 답이 많고 많은데, 딱 한 가지 답을 요구하는 교육과 세상에 소름이 끼친다."


명성(名聲)이나 돈은 걸어 간 뒤이 따라 오는 것이다. 명성과 돈 좇아가는 놈 많아졌다.

....


2. 호흡 맞추기


.... 동정(動靜)이란 말 있지요. 사람의 몸가짐이란 말인데, 동은 동물, 정은 식물이란 뜻도 된답니다. 삶에서 動과 靜은 조활 이뤄야 하는데 이 세상이 동에 치중한 나머지 속도, 초음속까지 나왔습니다. 난동, 맹동, 소동, 폭동이 판을 칩니다. 균형이 깨지다 산산조각이 난 거지요....

 

3. 도연명


.... 술을 퍽 좋아해서 마셨다 하면 취할 때까지 마셨대요. 취하면 잤대요. 집에 술이 있을땐 친굴 불러 함께 마시다 취해서 졸음이 오면, “여보게. 난 잘라네. 돌아가게.” 했고, 친구 집에서 취하도록 마시면 곧장 돌아와 잤답니다. 거나하게 취해서 쓸데없는 소리 끝도 한도 없이 지껄이며 밍그적거리지 않았대요. 주정도 실수도 안 했고 술에 빠져 중독도 되지 않았대요. 술은 어떻게 마시고 어떻게 감당하는가가 그 사람의 인품하고 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 도연명의 글에 자주 나오고 가장 큰 무게를 지닌 글귀가 ‘고궁지절(固窮之節)’인데 그의 정신생활의 지주랍니다. 節은 절개, 지조, 신조, 이상을 합친 거고, 固窮은 곤궁을 끝끝내 지킨다는 뜻이래요. 곤궁한 걸 당연하게 알고 견디며, 쓸쓸함과 외로움도 끝끝내 지킨다는 뜻도 된답니다. 견딘다는 건 저항력을 키우는 거죠. 곤궁을 지킨다는 건 자신의 신조와 이상을 지키는 일인데, 그가 ‘固窮’이란 말을 자주 쓴 걸 보면 그의 삶이 얼마나 힘겨웠고 마음이 흔들려날 알 수 있을 듯합니다. 때론 고궁을 신조로 삼은 것이 잘못이었다 했어요. 도연명 같은 분도 신조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날 말해 주는 것 같아요. 자신을 지키는 일이 참 어렵구나 싶어요....


蒼蒼谷中樹  夏冬常如玆

年年見霜雪  誰謂不知時 (도연명)

푸르고 푸른 골짜기에 서 있는 나무는겨울 여름 없이 언제나 한결같이 푸르다.

그 푸르름은 해마다 서리와 눈을 부리치고 이겨냈기에 간직할 수 있는 것이다.

푸르름이란 시대를 초월해서 이루어 지는 게 아니다. 시대를 뼈저리게 느꼈기에 끝끝내 간직할 수 있다.

해마다 눈과 서리를 뒤집어쓰는데 누가 감히 시대를 모른다고 노닥거리느냐.


4. 발바닥으로 삽시다


.... 인생이란 선택이 아니고 인연이구나 싶어요. 나무에서 떨어진 씨가 그대로 박혀 있어야 싹터 자랍니다. 굴러다니면 말라 버립니다.

몸과 마음이 어긋날 때가 있는데 그건 욕심(마음) 탓 같아요. 몸은 욕심 내지 않아요. 마음을 따라 가면 몸이 지치지만 몸을 따라 가면 마음도 편해집니다. 마음대로 살지 말고 몸대로 살아갑시다. 마음이란 것 허황된 때가 제법 많아요. 믿을 게 못 됩니다. 몸은 함부로 나대지 않지요....

 

 

[저자 : 전우익]

아호는 무명씨를 뜻하는 '언눔',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일꾼'을 뜻하는 '피정(皮丁)'.  

1925년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중동중학을 졸업한 뒤 경성제국대학을 중퇴.

1947년 좌익 계열의 민청에서 반(反)제국주의 청년운동을 하다, 6·25전쟁 후 사회안전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룸.

이후 연좌제와 보호관찰 처분을 받아 자유롭지 못한 신분이 되자 낙향하여 한평생을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2004년 12월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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