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있을 때 한없이 줘야 할 것 - 사랑!
살아 가면서 참으로 무서운 것은 고독이고 외로움이다. 사람과 사람이 떨어져 혼자 있을때 그 절대 고독속에 내팽개쳐진 신세가 되면 정말 몸서리쳐지게 무섭다. 그러면서도 또한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것도 무섭기는 마찬가지다.
이웃도 없고 인적도 없는 강원도 산골짜기 비슷한 이곳에 들어와 비닐하우스 한동 짓고 그 안에 작은방 한개를 들이고 앉아 있는게 한달이 다됐다. 이곳은 여섯시만 되면 칠흑어둠이다. 들어오는 초입에 내가 달아 놓은 가로등 불빛마져 끄고 나면 그야말로 깜깜 절벽이다.
바람결에 가끔 흔들리는 나무숲 소리와 풀섶 부대끼는 소리말고는 적막강산이다. 텔리비젼도 신문도 잡지도 딱 끊었다. 그런 속에 홀로 앉아 있으면 어떤 때는 너무 외로워 찔끔거리며 울기도 한다.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사람 만나는 즐거움으로 살아왔던 내가 아내도 자식도 친구들도 이웃도 하나 없이 이렇게 혼자되니 그 절절한 외로움은 정말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또한 이 깜깜한 밤에 이 산골짜기에 혼자 있다는게 무섭기도하다. 산짐승이나 공동묘지 처녀귀신이 무서운게 아니고 살아 있는 사람이 무섭다. 대낮에도 버젓이 총을 들고 산판을 누비면서 날짐승 사냥질을 해대는 인간들이 꽤 많은데 그런 위인들 중에는 개며 오리며 토종닭 등을 잡아가려고 한밤중에 나타났다가 들키기라도하면 사람을 상하게 하려고 덤비기도 한단다. 캄캄한 밤에 개짖는 소리가 자지러지게 들리면 섬뜩해 지기도 한다.
이곳에 오면서 집에서 기르던 못난이와 재롱이, 이쁜이와 극성이 그리고 나면서부터 한발을 쓰지 못하는 삼발이(발을 세개밖에 쓰지 못한다) 다섯마리 잡종개를 데리고 왔다. 도심지에 개를 풀어 놀 수 없으니 노상 작은 개집에 갇혀 지내던 이놈들 다섯마리 잡종들은 이곳에 실려와 풀어 노니 제세상 만났다고 논밭이며 들판이며 산이며 뛰고 뒹굴고 싸우고 -- 정말 신바람 난 시절을 만났다고 천방지축에 난리법석이다.
못난이와 극성이 삼발이는 요크샤테리아 피가 좀 섞인 -- 그래봤자 -- 잡종개고, 이쁜이와 재롱이는 족보도 모르는 삽살개 계통의 잡종 강아지다. 지난해 길지 ‘민들레별곡’에 쓴 못난이와 재롱이 바로 그 개들의 아들딸들이다. 애비 못난이는 어떤 못된 인간이 훔쳐 가고 에미 재롱이는 역시 어떤 못된 인간이 약을 먹여 죽였다.
이 다섯마리의 개와 강아지들이 산이고 들이고 뛰어 다니다가도 낮선 사람만 나타나면 다섯놈이 떼거지로 달려 들어 짖어 대는데 -- 그 덩치에(세놈은 중강아지 정도고, 두놈은 조(주)막만 하다) 그래도 이빨을 악물고 으르렁 거리니 그 꼴이 가관이다. 이웃 윤씨 영감이나 복순이 애비가 노상 찾아와 맨날 보는 사람인데도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고 봐주는 날이 없다. 백번 보면 백번 으르렁 거리고 죽기 살기로 짖어 댄다. 이웃지간에 너무 그러니 미안도하고 어떤 때는 그 짖는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 야단도 치고 몽둥이로 협박도하고 또 정말 짜증이 날 때는 걷어 차기도했다. 밤에는 하우스안에 들어와 책더미 위고 사료포대 위고 야전침대 위고 지들 맘대로 널브러져 자빠져 잔다.
그 다섯놈중에 대장은 단연 못난이다. 지 에비를 꼭 빼닮은 이 못난이는 축 쳐지고 노상 졸린듯한 눈에다 멍청해 뵈는 입에다 들창코를 해갖고도 걷는 폼이나 앉아 있는 폼이나 짖는 폼이나 자세가 딱 바르고 으젖하다. 극성이처럼 대책없이 악발이 짓도 안하고 삼발이처럼 오도방정도 안떤다. 말 수 없고 사려 깊은 근사한 사내놈 같다. 나머지 네마리 개들을 끌고 다니면서 작은 강아지들이 쳐지면 돌아서서 올 때 까지 기다리고 먹을 걸 줘도 다른 개들한테 양보해가며 먹는다. 그러니 아내나 내게 사랑을 듬뿍 받는다.
새로 판 연못에 큰오리 일곱마리를 사다 넣었는데 내가 급한 일이 있어 농장을 비우면 못난이가 다른 개들을 거느리고 연못 주위에 포진하고 앉아 낯선 사람들과 다른 개들의 접근을 철저히 막는다. 그러니 얼마나 이쁘고 대견하냐. 한밤중 못견디게 외롭고 고독할 때 그것들의 재롱이 나를 얼마나 위로해 주었는지 모르고 또 머리끝이 쭈뼛할 만큼 섬뜩 무서울 때 그것들이 맹렬하게 짖어 주면 그것 또한 -- 그게 내 편이라고 --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못난이가 글쎄 요 며칠간 밤이 되면 그냥 무턱대고 짖어대는 것이다. 나가 보면 달을 보고도 짖고 어두운 나무숲을 보고도 짖고 자기 짖는 소리가 메아리쳐 되돌아오는 소릴 들으면서도 짖는다. 하루 온밤을 그렇게 쉬지 않고 짖고 또 그 다음날도 그런다. 닷새째를 그렇게 난리를 쳐대니 드디어 내가 화가 났다. 이놈의 개새끼 아주 요절을 내겠다고 쫓아가니 이게 산으로도 도망가고 들로도 도망가고 그러면서도 계속 짖어댄다.
약이 오를대로 올라 버린 나는 날이 밝아 눈치를 보며 찾아오는 그놈을 몽둥이를 들고 얼씬도 못하게 해버리니 -- 닷새쯤 지나자 이놈이 농장 근처만 빙빙 돌면서 풀이 다 죽고 아주 바보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나는 화가 안풀려 집으로 들어오라고 허락하지를 않았다.
새벽에 백마장 집에 나무를 실으러 트럭을 끌고 갔다가 아내와 돌아와보니 우루르 마중 나와야할 개들이 한마리도 보이질 않는다. 불러대고 찾고 한참 법석을 떨고도 안 나타던 개들이 저넉 나절쯤 나타났는데 입에 침을 질질 흘리고 항문으로는 피똥이 범벅으로 묻어 있고 오다간 쓰러지고 낑낑대며 기어 오다간 또 쓰러지고 -- 기겁을 한 아내와 내가 달려가 개들을 살펴 보니 이것들이 뭘 잘못 먹고 죽기 직전에 들어선 게 분명했다.
정신이 반쯤 나간 아내가 비눗물을 만들어 강제로 먹이고 어떻게 할 방법을 모르는 난 당황해서 그저 이리 뛰고 저리 뛰기만 하고 -- 그랬지만 못난이가 덜컥 쓰러지고 곧 이어 이쁜이도 재롱이도 쓰러졌다. 나중에 살펴보니 삼발이는 이미 어디선가 죽어 집까지 오지도 못했다.
못난이가 쓰러지자 그저 흐르느니 눈물뿐이다. 닷새간 그냥 죽일듯 미워했던 못되고 못난 -- 그 기억만 떠올라 마음이 미어지고 또 미어진다. 밥도 제 때 안 먹이고 진심으로 다정하게 머리 한번 만져주지 않았던 그런저런 악하고 죄많은 내모습이 가슴을 찢어지게 했다. 못나게 나는 방으로 들어와 하나님께 빌었다. 저놈들을 한번 살려 주시면 정말 더없는 사랑으로 같이 살아가겠습니다. 아
내는 다 죽은 개들을 부여안고 말없이 울고 앉았다가 이제 체념하려고 하는 그 때, 아내의 품에 안겨있던 못난이가 울컥울컥 몇번 그러더니 왁하고 배안의 것을 토해 냈고 그러더니 희미하게 눈을 뜨면서 아내를 올려다 보더란다. 아내가 비명을 지르면서 나를 불렀고 우리는 다시 비눗물을 못난이와 다른 개들에게 계속 떠 먹였다.
조금 후 이쁜이와 재롱이가 속에 것을 토해내고 못난이도 다시 조금 더 토해냈다. 휀히타에 불을 지피고 이불을 깔고 몸을 덮히고 -- 새벽녘에 삼발이 빼고 모두 살아났다. 재롱이만 아직 비실거리며 제 건강을 못찾았고 다른 놈들은 거의 원 상태로 돌아왔다.
한밤중에 화장실만 가도 따라와 옆에 지켜 섰고 나들이를 해도 수백미터까지 따라 왔다가 못내 아쉬워 돌아서고 돌아오면 까무라칠듯 반가워 쫓아 나오던 그것들이 사라진 한밤중의 이곳은 정말 어땠을까 -- 그러다가 나는 문득 아내를 생각해봤다. 일평생을 그렇게 속을 썩이고 못되게 굴고 들볶고 -- 그런데도 가슴에 피멍이 들면서도 평생을 못난이처럼 오직 못된 남편에게 사랑만 주었던 아내 -- 그런 아내가 저렇게 덜컥 쓰러져 세상을 떠난다면 난 정말 남은 내 인생을 살아 갈 수 있을까.
어제 저녁 길지의 ‘최 0 0’기자와 이번에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연수원 들어갈 때까지 길지에서 아르바이트기자 노릇을 하고 있는 ‘이 0 0’이 찾아왔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한밤을 지새다가 아침에 돌아갔다. 하우스 아래 밭뚝에 앉아 그들이 몰고 가는 차가 산모퉁이를 돌아설 때 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겨울의 햇살이 따사롭게 내 어깨위로 쏟아진다.
금방 떠난 그들이 벌써 그립고 보고프다. 먹다 남은 쏘주를 큰 잔에 따라 마시다가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살아 있는 동안에 많은 사람들과 내 주위의 모든 존재들에게 끝이 없는 사랑을 주며 살아가야지.
[민들레별곡 / 강진호]
* '민들레별곡' 단행본에 수록되지 않은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