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한씨
우리동네 만물상회 주인인 한사장 한씨는 고주망태, 심각성 알콜중독자다. 꼭두아침 여섯시면 벌써 술에 쩔어 있다. 눈은 이미 게슴츠레 반은 감겨 있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 있고 괜히 실실 웃으며 아무에게나 안녕하세요! 인사를 해댄다. 그런데도 거 참 -- 신기한 사람이다. 그렇게 아침 일찍 부터 잠자리 들 때 까지 마셔대면서도 자기 할 일은 칼같이 해낸다. 물건 파는 일서 부터 상수도 하수도 도급 맡아 고치는 거며 보일러 깔아주는 일이며 전기공사며 -- 못하는 일도 없지만 일단 맡은 일은 그렇게 확실할 수가 없다. 거기다 욕심 안 부리고 대폭할인 해서 공사비를 받으니 여기저기 이곳저곳 줄줄이 밀려있는 게 한사장 한씨의 일감이다.
술 많이 마시는 흠만 빼고는 사람 좋지, 일 야무지게 잘 하지, 째즈기타를 -- 프로들을 주눅 들게 만들만큼 잘 치지, 뽕 변강쇠류의 포르노성 비디오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지 -- 그 스토리를 바지까지 벗어 가며 열 올려 설명하면 -- 아이고! 얼마나 징그러운지 -- 그래 동네에선 인기 좋고 잘 나가시는 홀아비 아저씨 우리 한사장 한씨가 요즘 헤어나올 수 없는 슬픔에 잠겨 있다.
아예 가게 셔터문 내리고 전화선 빼 버리고 두문불출에 완전칩거에 들어 가셨다. 오가는 소문으로는 빌라나 연립주택을 짓는 중소규모 주택업자에게 물려 물건 값이고 인건비고 다 떼이고 파산 직전에 들어갔단다. 일주일 이주일 -- 그럭저럭 한달이 됐는데도 가게문은 굳게 닫혀 있고 한씨 코빼기도 볼 수 없으니 한씨 개인적인 일은 안됐다 쳐도 -- 이게 동네살림이 불편해서 모두들 한마디씩이다.
낫이고 괭이고 칼이고 -- 하다못해 형광등하나 전구하나 고장나고 꺠져도 한씨네 가게로 달려갔는데 거기 문닫고 나니 마을버스타고 왕복 삼사십분 거리를 갔다 와야 하는데 그게 얼마나 불편하냐말이다. 수도꼭지 하나 망가져도 한씨를 불러대고 텔리비젼이 찍찍소리를 내도 한씨를 부르고 보일러의 뜨거운 물이 안 나와도 만만한게 한씨를 부르는 거 였는데 -- 자기 일 처럼 꾀 안 부리고 염가봉사로 일 잘해주던 한씨가 저러고 있으니 그게 어디 남의 일이냐 말이다.
인하대 봄축제에 한다리 껴서 주점 열어 경제적 고통을 조금 덜어 보자고 일일주점을 개업한 후배들이 꼭 한번 왕림해서 돈 좀 쓰고 가라며 초청을 했기에 거길 갔다가 밤 이슥해 귀가하는 참이었다. 한씨 가게 앞을 지나다 무심코 문쪽을 바라보니 셔터가 올려져 있고 불이 켜져 있었다. 유리문 밖으로 한씨 특유의 기타소리와 노래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어디로 가아느냐 -- "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 가니 퀭한 눈의 한씨가 쏘주 한병을 앞에 놓고 청승맞게 노랠 부르고 앉아 있다.
“ -- 죽었는지 알구 장사지낼 준비 하느라구 여기저기 알리고 다녔는데 -- 아직 안죽었네-- ”
“강씨 어서와!”
멀건히 서 있다가 대책없이 앉는 내게 한씨가 소주 한잔을 따랐다. 비우고 되따라주니 그걸 단숨에 마시더니 잔을 손에 든 채
“-- 제기랄! 한세상 살아가는 게 왜 이렇게 귀찮은거야! 귀찮아 귀찮아!”
고개를 좌우로 절래절래 흔들면서 잔을 탁 내려놓고 다시 한잔을 따라 준다. 참견할 계제도 아니기에 구구로 잠자코 있을 수 밖에 없었다.
“ -- 내가 여섯살 때 아부지허구 딱 둘이서 피난을 나왔는데 열두살 때 아부지가 남의집 뱃사람으루 배타구 나가셨다가 배 뒤집혀서 돌아가시구 말았지. 간신히 국민핵교 졸업허구 그놈의 섬에서 나와 여기 인천으루 왔어. 츰에 배 맨기는 사람 밑에 들어 갔는데 -- 다행히 참 좋은 사람을 만났지. 밥 맥여주구 잠만 재워주는 조건으루 잔심부름허구 청소허구 -- 그러는 일루 시작했는데 내가 어릴적 부터 기술쪽으루는 눈썰미가 있구 손재주가 있었나봐. 한번 알켜 주면 그런대루 곧잘 해내니까 주인양반이 이놈은 제대루 기술을 가르쳐야되겠다구 생각했나봐. 그래 첨서 부터 끝까지 배 맨기는 기술을 가르쳐줬지. 한 사오년 그렇게 배우구 나니까 그때가 열여섯살인가 그랬는데 더 배울 게 읎더란 말이지. 그 때 배 맨기는 기술이래봐야 낫이나 꽈끼 (날이 가로로 서 있는, 나무를 깍고 다듬는 연장)로 나무를 깍고 맞춰서 일본놈들이나 양놈들 쓰다 버린 낡은 엔진을 뚜드려 맞춰 달아 노면 최고로 쳐주던 시절이었거든. 그래 주인이 얼마 쥐어주는 돈을 받아 넣고 남대문쪽으로 나갔지. 그 당시엔 청계천쪽은 나이롱 겉은 의복 맨기는 거만 발달하구 있을때고 남대문쪽은 낡은 기계들 뜯어서 수리해 팔구 그러는 거루 한참 재미를 볼 때 였거던. 그래 거기서 한 십년 굴렀나? 다시 인천으루 내려와 하인천 부둣가에 배 엔진 수리허구 맞춰 주구 그러는 사업을 시작했지. 돈을 갈퀴루 긁었어. 돈이 돈겉지 않았어. 그때 마누라를 만났는데 --사람이 돈이 좀 모이면 이게 눈에 뵈는게 읎어진단말야. 돈 앞엔 사람들이 굽신거리구 아첨이나 늘어놓구 그러니까 -- 간뗑이만 붓고 지 분수두 몰른다 이거야. 그 여자는 서울 어떤 대학을 삼년까지만 댄기다 만 여자였는데 사람이 어떤지는 아예 안보구 대학댄긴 여자라니까 그냥 덜컥 결혼 부터 하구 본 거야. 내 속으루는 자신두 있구 오기두 있었거든.대학 아냐 대학 핼아비라두 나와봤자 내가 꿀릴 거 읎다구 -- 만만허구 우습게 봤다 이거지. 나이 스믈일곱에 사장님소리 듣겠다 대학물 먹은 여자 얻었겠다 사업은 잘 나가겠다-- 겁나는 게 읎었어. 그런데 말야 공부가 읎으면 결국은 지게 되는거야. 군사혁명후루 근대화다 뭐다 하면서 일본놈들 기계들이 쏟아져 들어 오구 거기서 청구권자금인가 뭔가루 중고배들을 들여 오는데 -- 난 세월이 그렇게 변할 줄은 까맣게 몰랐구 새기계들이 들어오면 이걸 어떻게 요리해야 되는지 당최 알 수가 읎더라 이거야. 일본말이구 영어구 까막눈이니 뭘 어떻게 하라는건지 -- 옛날 시절만 좋았다구 그 타령만 해대는 사이에 훌떡 몇년 세월이 흘렀구 -- 넥타이에 양복 뺴 입은 갓 대학 나온 새까만 후배놈들이 설쳐대기 시작하니 -- 속이 뒤집히구 배알만 꼴리지 어떻게 싸워볼 기운이 싹 빠져 버리구-- 그래 밀리구 밀리다 다 털어 먹구 말았지. 그 때 큰 딸년 나서 국민핵교 오학년이었는데 이놈의 여편네가 돈이 있었을 때는 그런대로 참아 주더니 다 망허구 나니까 -- 껀껀히 트집질이더라구. 미련하네, 푼수 떠네, 주변읎네 -- 그러더니 종당에는 무식하다 거기까지 가는거야. 내 죽기보다 싫은 소리가 무식허단 소리였는데 -- 그때 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어. 마누라가 긁어대서 술 마시기 시작했다는 것은 사실은 핑계였구 내 신세가 하두 처량허구 분통이 터져서 사람 미치구 환장허겠드구만. 잠두 안자가며 그렇게 열심히 기술을 배웠는데 -- 그게 내 인생의 전부였는데 말야 그게 어느 한순간에 아무짝에두 쓸모 읎는 물거품이 돼 버렸단말야. 내 앞날에 무슨 희망이 있겠어 -- 전파사라두 열어보자구 맘 먹었지만 돈이 있나 돈 줄 맨길어줄 연줄이 있나 -- 마누라와 허구헌날 싸우기만 하다가 -- 어느날 부둣가에 나가 술에 취해서 돌아와 보니 딸년을 데리구 집을 나가버렸드구만. 밀려 밀려 이곳에 들어와 공사판 돌아다니며 간신히 간신히 이 가게 하나 맨길었는데 -- 여기서 심 좀 필려구 하니까 또 이 모양된거야. 그 사장이라는 작자가 날 부구 사람이 진실허구 기술이 끝내주구 그러면서 심심치 않게 술두 사주구 그러더니 츰에는 전기공사 하나만 맡어라 -- 그거 끝내 노니까 보일러공사 맡어라, 수도설비 맡어라 -- 좀 수상쩍어 망서렸더니 돈걱정은 말라는거야. 영 안되면 집으루 몇채 주겠다는거야. 그러더니 나중에는 돈까지 좀 융통해 달라는거야 -- 내가 그런 큰 돈이 어딨겠어 -- 그래 여기저기 아는 사람들한테 내 신용 담보루허구 돈을 빌려다줬지 -- 그랬는데 부도 내고 날라버린거야 -- 제기랄! 강씨, 내가 왜 판판히 깨지구 망하는지 알구있어? 무식해서 그런 거야! 세월이 변하구 있구 시대가 바뀌구 있는것을 조금두 눈치채지 못허는 무식한 내가 무슨 수루 성공헐 수 있겠는가. 요즘 겉이 중소기업이 수천수만개씩 쓰러지구 부도가 나는 데 -- 그걸 난 도데체가 뭐가 뭔지 알지를 못한다니까. 요새 겉은 세상에 연립이나 빌라는 사기는 쉬어두 팔 때는 팔 수가 읎어서 빌라나 연립은 절대루 분양이 안된다는 사실두 몰르구 있었다구 -- 세상이 뭐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렇게 까막눈인데 -- 구구루 덜 처먹구 가는똥 싸는 것으루 만족헐 것이지 -- 제기랄!”
우리는 수퍼에서 두병 소주를 더 사다가 나눠 마셨다. 너무 늧은 거 같아 일어서려다
“그래 그 후 아주머니 소식은 들었어요?”
뜬금없이 물어봤다. 기타를 다시 옆구리에 끼면서 그가 허허롭게 웃으며 천정을 올려다 보았다.
“그년두 나와 헤어져 무진 고생을 했나봐 -- 어디서 뭘 허는지는 다 알구 있었지 -- 집칸이나 장만허구 딸년헌테 몇푼 쥐어줄 거만 모으면 과거 안따지구 무조건 붙들어다 앉혀 놓구 따듯한 밥이나 얻어 먹으려 했었는데 --”
그는 인생은 나그네 길을 다시 불렀다. 밤하늘에 별들은 졸고 있고 -- 그런데도 소래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한참 물오른 나무숲을 흔들고 있다. 첨단사회 정보화사회로 질주한다는 이 시대에 -- 제기랄! 그것을 허겁지겁 따라 가려다 자빠져 -- 인생은 나그네길!을 부를 사람은 그 얼마고 그나마 따라 가려고 흉내 내는 것조차 귀찮아 -- 드럽게 귀찮아! 하면서 쏘주잔이나 기울일 사람은 또 그 얼마일까.
[민들레별곡 / 강진호]
* '민들레별곡' 단행본에 수록되지 않은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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