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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민들레별곡

김씨의 해외여행

by 천 지 인 2007. 3. 16.
 

    김씨의 해외여행


  개인택시 운전자인 김씨는 나와 친구다. 그이의 아내는 통닭 호프집을 하고 있다. 이 두양반이 작년말부터 들떠 있다.

  김씨와 친한 개인택시 기사들 몇몇이 친목계를 만들어 한달에 한번씩 모여 보신탕도 먹고 붕어잡이 천렵도가고 어떤 때는 마누라들도 동반해 단란주점도가고 집안의 경조사에 참석해 일도 거들고 -- 그러다가 국제화 세계화시대를 맞이하야 동남아여행을 떠나자! 그래 밝아오는 96년 정월 명절은 동남아땅 태국에서 친목계원들 전부, 그것도 부부동반으로 보내기로 했으니 얼마나 설래고 기대가 크고 신바람이 나시겄는가.

  중국집 길림성 반 주인(처남과 공동투자해서 운영하고 있으니 이분지일 주인 노릇밖에 못하고 있다) 박찬이와 풍년떡집 주인인 강성기(이름이 성기가 뭐냐?) 그리고 김씨 -- 셋이 노상 우리집에 찾아와 술 한잔씩 나누며 한바탕 떠들고 가곤 하는데 김씨가 태국여행을 떠나는 며칠전 부터는 그저 떠드느니 온통 태국 얘기 뿐이다.

  주머니에 돈만 있으면 겁없이 쓰고 부터 보는 박찬이는 한때 커다란 가든을 하면서 진짜 사장님 소리도 듣고 큰돈도 벌은 적이 있었는데 결혼도 안했겠다 건사할 가족도 없겠다 있는건 그야말로 돈밖에 없으니 주머니에 돈 쑤셔 넣고 동남아며 유럽이며 한바퀴 돌면서 신나게 놀고 원없이 돈쓰고 -- 그래본 경력의 소유자다. 강성기는 리비아 대수로공사 공사판에 지질시험소 연구원으로 몇년 근무하면서 회교권나라 몇개국과 스위스 스웨덴 덴마크까지 두루두루 둘러본 알짜배기 경험자다.

  그러니 다른나라 얘기 나왔다하면 순 맹탕에 애시당초 무경험자인 나와 김씨는 주눅이 들고 젊은 두놈만 살판났다고 떠들어 댄다. 여권이니 비자니서부터 비행기를 타면 어쩌구 저쩌구 기내에서 양주를 시켜서 몇개 마시고 한잠 자면 도착하는데 어쩌구 저쩌구 거기 술은 어떠니 여기서 아예 팩으로된 쏘주를 몇박스 가져가고 -- 그놈의 술 얘기로 두시간 이상 브리핑(?)을 하는데 이건 순 쏘주 마시러 태국까지 가라는 얘기다.

  그러더니 ---결국은 -- 으슥한 뒷골목의 포르노 얘기로 넘어 간다. 가이드에게 이렇게 저렇게 꼬셔서 이러이러한 데를 알려 달래서 -- 여자들은 따돌리고 -- 호텔에 처박아 두던가 시장에서 쇼핑을 하게 하고 --. 다른 얘기는 건성으로 듣고 있던 김씨는 포르노 얘기가 나오니까 눈을 부릅뜨고  몸뚱이를 바짝 기울이고 술이 떨어지면 잽싸게 술을 사 나르고 -- 의심나면 되묻고 종이에 적고 -- 아예 혈안이다. 치사해라! 그리고 여자들은 역시 불쌍하다. 저런 늑대 같은 사내들과 -- 그래도 “해외여행”을 한다는 그 부푼 꿈에 소녀처럼 설래가며 기대하고 있으니.   

  그런 사이비교육을 받으면서 날이 가고 달은 바뀌어 드디어 새해는 오고야 말았다. 그리고 대망의 출발날 우리는 똥개울옆 작은다리 초입에 김씨의 장도를 축하해 주려고 모였다. 김씨와 그의 부인이 나타났다. 아이고! 산더미만한 가방 한개를 김씨가 질질 끌고 작은 가방(그 가방도 우리들이 크다고 하는 그런 가방 보다 훨씬 큰 것이다) 두개를 양쪽 어깨에 걸고 마누라씨도 가방 두개에 핸드빽에 --.

  “그게 다 뭐요?”

  “거긴 여름이라니까 여름옷 내꺼 다섯개하구 마누라꺼 열개허구 여기 나올 때 입을 겨울옷 두개씩에다 속옷 양말 구두 두개씩에다 운동화허구 슬리퍼허구 쏘주 열다섯병허구 담배 --.”

  “태국에다 살림 차리는 거요?”

  덜어라, 가면 다 필요하다, 요즘 세상에 이런 촌시런 해외여행을 누가 하냐, 국제적 망신이니 작은 가방 하나만 들고 떠나라 -- 이른 아침에 그 난리를 피다가 비행장에 모일시간 다 됐으니 빨리 가야 된다 -- 그래 우리의 김씨는 그 어마어마한 장비를 자기의 개인택시에 처싣고 공항으로 떠났다.

  여명의 아침 밝아 오는 새해에 다른 사람들은 자가용 끌고 가족들과 애인들과 스키장으로 콘도로 신나게 놀러 다니는 이 싯점에 나는 농장일에 눈코뜰새 없이 바빠 거기일에만 매달려 흙투성이가 되어 있고 박찬이는 명절 휴일에도 철가방 들고 아파트 계단을 쎄빠지게 오르내리며 짜장면 짬뽕을 배달해야하고 강성기는 명절아침에도 때없이 떡해달라고 온 손님 때문에 떡기계를 돌려야하고 -- 아아 우리의 새해는 이렇게 멋대가리 없는 데 방콕의 거리를 누비고 있을 김사또(김씨 부인이 하는 호프집 이름이 사또집이다)만 째지는 기분이겠구나.

  김사또의 돌아오는 날짜도 모르고 농장에만 처박혀 있는데 전화가 왔다. 강성기다.

  “성님 사또성님 왔어요! 성님헌테 준다구 라이타허구 시바스리갈 한병 사왔는데 -- 저녁 때 올 수 있어요?“

  트럭을 몰고 달려갔더니 떡집에들 모여 있다. 5박6일만에 돌아온 사또김씨의 얼굴이 반쪽이다.

  “에이 그 썅놈의 짐 땜에 을마나 고생을 했는지 -- 그놈에 걸 끌구 댄기느라구 여행이구 뭐구 팍 잡쳐버렸대니까.”

  라이터 한개씩을 나눠주는데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여자가 야하게 누워 있는 사진이 붙어 있는 싸구려 제품이었다. 그걸 주면서 지 혼자 낄낄대더니 라이터 표면에다 다른 라이터로 불을 켜 갖다 대니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여자의 비키니는 다 사라지고 홀랑 벗은 몸뚱이가 나타난다. 우리는 낄낄거리면서 그 시험을 몇번씩 되풀이했고 오가는 사람까지 붙잡아다 그것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는 우루르 골목의 쏘주집으로 몰려가 김사또가 가져온 시바스리갈을 당장 까고 그것도 모자라 쏘주를 더 시켰다. 게거품을 뿜어대며 정신없이 여행담을 쏟아내는 사또김씨의 옆에 앉아서 나는 어쩐지 나 혼자만 동떨어진 삶을 살아간다는 소외감을 느끼면서도 이렇게 자위해 봤다.

  방안에 홀로 앉아 있어도 온세상을 꿰뚫어 보는 노자를 배우고 있는 나니까.     

  그래봤자 -- 아아 -- 나도 하다못해 태국이라도 가보고 싶다!

 

[민들레별곡 / 강진호]

 

* '민들레별곡' 단행본에 수록되지 않은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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