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씨와 딸
오늘도 황씨 얘기다.
황씨는 오늘도 아침 일찍 일터로 간다. 하루 온종일 일만 하다가 먼지를 하얗게 뒤집어 쓰고 집으로 돌아간다. 내 짐작으로는 아마도 대강대강 몸을 씻고 그저 김치찌게에 밥 한사발, 그것도 고맙고 고마워서 감지덕지 먹고는 그자리에 고꾸라져 잠이 들 것이다.
그리고 그 이튿날도 여전히 탈탈거리며 일터로 나갈 것이고. 그런 다람쥐 챗바퀴 도는 듯한 생활이 아마도 그의 일생 동안, 변함없이 계속될 지도 모른다. 그만큼 주변머리 없고 고지식하고 답답한 사람이다.
술한잔 그럴듯하게 사먹어 보지도 못하고 남에게 사주지도 못하는 거야 형편이 그러니 그렇다치고 책 한권 신문 한장 하다못해 텔리비젼의 뉴스 하나 보는 적이 없단다.
그러니 인생이 어쩌니 시국이 어드렇게 흘러가니 하는 따위 얘기는 그이에겐 도무지 낯설은 먼나라 남의 얘기다. 당최 역사니 민족이니 민중이니 어떤 말로 어떤 식으로 그이와 얘기를 나눌 계제가 없다. 그이와 마주하면 깜깜절벽, 그저 밥 먹었수? 일 가요? 아이들 공부 잘 하지요? 세마디 얘기 말고 더 할 얘기가 없다. 그저 마누라 애새끼들 어떻게 먹이구 입히구 사나 그 궁리만 해대며 사는 것이 황씨 인생이다.
자기 같은 인생에게 막일(노가다)이라도 시켜주는 게 고맙고 고마운 것이고, 그러니 꾀부리지 않고 수굿이 열심히 일해야 된다는 것이 그의 인생 사는 방법이다.
요새 새로 경비일을 맡아 하면서도 여기저기 이구석 저구석 쉬지 않고 돌아다니고 찾아다니고 살펴보고 점검하고 보고하고·‧‧ 빛좋은 개살구식으로 경비완장만 팔뚝에 차고 있지 일거리는 더 많아졌다.
경비 전에 하던 잡부일은 잡부일대로 하고 나머지 허드렛일까지 몽땅 맡아 해대니 그놈의 몸뚱이가 견뎌낼까 걱정일 지경이다. 그런 지경인데도 그저 윗사람들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안시켜도 지가 알아서, 치사하고 비굴하게 보일 정도로 충성스럽고 열심이다.
사람이 워낙 성실하니까 이런저런 애정이 가긴 해도 민중의 삶이, 혹은 민중의 삶의 자세가 꼭 저렇게 순응적이기만 해야 되는가 생각하면 딱한 생각도 든다. 저런 식의 삶의 자세가 반민중적인 것은 아닌가 하고 화가 날 때도 있다.
그런 황씨가 이번 토요일 동네사람 몇몇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이름만 그럴듯한 경비반장된 기념으로 한턱 내는 것이려니, 그런 답답하고 대책없는 사람이 한턱 낼 줄도 아는 구나 한마디씩 지껄이면서 그의 집으로 몰려들 갔다.
그집 식구 넷하고 초대받아간 다섯하고 앉으니 운신할 수도 없는 좁은 방에 한 상 그득히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음식을 들면서 이상하게 그이는 들떠 있었다. 뭔 말인지 하고 싶어 안달하는 표정이니 눈치빠른 조씨가
“황씨 오늘 무슨 일이댜? 뭔 좋은 일이 있으셔?”
황씨가 수줍어 하면서 끙끙거리는 참에 그의 아내가 냉큼 나서서
“우리 숙이가 이번에 전교에서 수석을 했다구 특별장학금을 받았시요. 저이는 웬만한 일에는 기쁜지 슬픈지도 모르는 양반이지만 딸 아이가 일등했다니까 저렇게 좋아하누만유.”
숙이는 황씨가 늦장가 들어 첫번째로 낳은 큰딸 아이다. 지금 인천 모고등학교 삼학년 올라가는 숙이가 원래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동네가 다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전교에서 수석을 했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니 황씨가 기뻐할 만도 했다. 우리는 진심으로 축하했다. 그리고 솔직히 그런 딸을 둔 황씨가 부럽기도 했다. 식사가 끝날 무렵 박씨가 숙이에게 물었다.
“너는 이 시상에서 누굴 젤루 존경허냐?”
우리 모두 그 아이의 대답이 궁금했다. 그 아이가 큰 눈을 깜짝거리면서 시원하게 대답했다.
“아빠요!”
“그랴‧‧‧?”
“저는요 제일 훌륭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곰곰히 생각해 봤어요. 훌륭한 과학자도 있고 예술가도 있고 정치가도 있고 부자도 있겠지요. 그런 사람들도 존경받을만한 훌륭한 분들이겠지요. 그치만요 진짜루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이란 자기 자신을 얼마나 희생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어떻게 살았느냐 그런 걸루 결정되야 한다구 생각해요. 우리 아빠는요 남들이 뭐라건 우리 가족을 위해서 아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시구 양보하셨어요. 아빠가 좋아하는 술과 낚시 다니시는 것까지 다 포기하시구 오직 우리 가족들만 위해서 밤낮으루 수고하셨지요. 어떤 아빠들은 사회적으루 유명한 사람이 되구 돈많이 버는 사장님이 되야 자식들이 아빠를 존경하는 줄 아나본데 자식들은요, 가족을 책임지구 진심으로 애쓰시는 아빠를 진짜루 존경한다구요.”
사람 마음은 나남죽없이 다 같은 모양인지 거기 앉아 있던 우리 모두 콧등이 찡해오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대뜸 느낄 수 있었다.
오랫만에 기분 좋게들 취해 노래도 부르고 한참 떠들기도 하다가 우리는 황씨집을 나왔다. 오늘 같은 날은 한잔 더 해야 된다는 그이들에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헤어져 집으로 오다가 문득 하늘을 보았다. 희뿌연 도시의 하늘에 반쪽 달이 걸려 있다. 별이 몇개 깜박거리는 것도 보였다.
그러니 제기랄, 역사니 민족이니 민중이니 허구헌날 떠들면서도 자기 잘났다고 자기 인생만 사는 위인이 있는가 하면 자기는 하나도 없고 오로지 가족 하나라도 위해 온몸 바쳐 수고하는 인생들도 있으니... 숙이 말마따나 숙이 아버지 황씨같은 사람이 존경받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이 동네에 들어와 내 존재가 그냥 깨지고 터지고 넘어지는 것의 연속인데 오늘은 또 뭔 것으로 속상하냐 하면 난 아직도 가족 하나 제대로 돌보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 때문인데, 잡소리 집어치고 딱 짤라 한마디로 말하라면 역사니 민중이니 목사니 어쩌니 저쩌니 하는 것은 다 핑계에 변명일 뿐이다. 나란 위인은 나 하나밖에 모른다는 그 사실만이 분명하고 분명하니 마음은 괴롭고 내 자신의 게으름과 비겁함에 또 한번 울화가 치민다.
[민들레별곡 / 강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