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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민들레별곡

민들레가 이쁘다고?

by 천 지 인 2007. 2. 13.
 

민들레가 이쁘다고 ?


그렇잖아도 평소에 민중들하고의 생활, 민중동네 얘기는 재미있다고 우기는 김모에게 마뜩지 않은 감정이 있었다.

제기랄, 실제로는 얼마나 짜증나고 분통터지고 힘든지나 알어? 솔직히 난 이 동네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다구 !

그래도 민중소설에 사회과학 책에 성서까지 인용해가며 유식한 체 해대기에 너 잘났으니 잘해보셔! 저는 저 나는 나 하며 지내오던 사이었다. 한 인간의 삶이란 민중이건 아니건 재미있다, 아니다... 그런 희화적이고 학습적으로만 볼 대상이 아닌 것이다. 산다는 게 정말 얼마나 힘들고 애처로운가.

나남죽 없이 가난하고 직업 또한 번듯하지 못한 형편에서 살 부대끼며 살다보면 정말 신경질 나고, 울화통이 터지고, 넌덜머리나는... 지긋지긋한 짓거리들을 수도 없이 겪게 되는 것인데, 같이 살면서 같은 처지에서 겪는 사람하고 떨어져서 이른바 관념적으로 보는 사람들하고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닌데 요즘 뻔질나게 찾아 오는 김모 장모는 민중을 정치세력화 해야 된다고 거품을 뿜는다.

“그런데? 그래서 자네들이 한번 출마해보시겠다? 간단히 그 얘기 아냐 ?”

“여기 사람들하고 자주 접촉하게만 해줘요. 나머지는 저희가 알아서 할테니까!”

“자네들이 여기 사람들하고 사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고 그렇게 쉽게 얘기하는 것 같은데... 이런 사람들은 같이 살지 않으면 안 믿는 경향이 있어... 자기들끼리 아무리 싸우고 물어 뜯고 하다가도 이튿날이면 그냥 또 전처럼 지내지만, 갑자기 나타나서 뭘 어쩌겠다고 하면 시비부터 붙는다니까...”

“별 걱정두 다 하슈, 민중들이 그러는 거조차 재미있는 거 아니겄수?”

재미라는 말에 배알이 확 뒤틀렸지만 하도 집요하게 매달리기에 틈틈히 들리라고 일러줬다.


동네 성님들(나이 육십이어도 그냥 성님이고 어떤 때는 칠십 다 됐어도 막 성님이라고 부르니...)하고 저녁 무렵에 이른바 똥개울가 옆에서 생닭 한마리 추렴해서 사다가 막걸리 파티를 열었다. 하루 종일 낡은 판넬(반네루)과 오비끼(기둥목) 못 빼는 내 일을 도와줬기에 막걸리는 내가 샀다. 나무 조각들을 주어다가 불을 지피고 닭을 굽고 있는데 장아무개와 김아무개가 찾아왔다.

고기가 다 구워지기도 전에 한점씩 들고 뜯어대면서 몇 통의 막걸리를 비우니 딱 기분 좋게 취했는데 김가 장가 위인들이 자기들이 2차를 사겠다고 호기들을 부리면서 막걸리 몇 통을 더 날라 왔다. 그 인간들 속셈도 모르는 우리 성님들은 그 막걸리 몇 통에 아주 꺼뻑 죽어 연신 고맙다고 굽실대기까지 해가며 술잔을 받는다. 그러니 내 심사가 좋을 리 없다.

기분 좋게 취한 상태에서 얼큰한 정도를 지나 좀 과하다 싶을 지경에 주태백이 주가가 일이 끝나 돌아오다 그 자리에 냉큼 뛰어 들었다. 주가놈 술 취하면 위아래 남녀불문하고 싸우자고만 대거리 하는 놈이니 힘없는 성님들은 긴장들을 해갖고 쭈빗거리기 시작하는데, 주가는 이미 전주가 있었는지 개발쇠발 나발을 불어대기 시작한다. 씨발, 좆두,... 말끝마다 그놈의 쌍욕을 꿰차고 떠들어 대니 외부 손님 하나라도 끼면 잘난체 유세하는 정반장 정씨가 점잖게 한마디 타이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보게 여그 외부에서 오신 선상님 덜두 기신데... 고렇게 쌍스럽게 막말을 해대믄 우리동네 사람델 체면이 워치게 되겠는가... 사람이...”

주태백이 주가는 김모 장모쪽은 눈길도 안주고 정씨에게 침까지 튀겨가며

“아따 반장 아니랄까봐 드럽게 유세떨구 있네, 고러큼 잘났으면 통반장 다 해먹지 그려!”

그러니 성깔로는 주가에게 결코 지지않는 정씨가 얼굴이 시뻘개져서

“요런 순 호로새끼... 어른이 타이르면 수굿허구 들을 것이지 뭘 잘났다구 고개 발딱 쳐들구 뎀비는 거여!”

주가는 동네가 떠나가라는 듯 목청을 돋군다.

“개좆두... 지나 나나 노가다 잡부해 처먹는 주제에 위아래가 어디 있어?  고렇게 잘났음 반장질 해처먹지 말구 동장이나 구청장쯤 진작 해버려야!”

그러니 기가 막힌 정씨는 파르르 해져 획 돌아서서 집쪽으로 가버렸다.

술취하면 주가놈 못지않은 임씨가 느닷없이 일어서서 눈을 부라리고 삿대질을 해댄다.

“야, 주태백이 이눔아! 넌 부모두 어른두 읎냐? 찢어진 입으루 아무 말이나 고렇게 씨부려두 된다 이거여?”

“얼레 육갑! 그 나이 처먹두룩 집 한칸에 마누라두 읎시 살믄서 어른 노릇은 육실허게 좋아허네! 이 인간아 내가 당신 아들이여, 사위여? 왜 이눔 저눔 하는 거여?”

그러면서 큰소리로 쉴 새 없이 욕지거리들을 쏟아 부면서 앉았다 일어섰다 주먹을 흔들어 대고 발을 굴러가며 계속 싸움질이다. 그런데도 옆으로 오가는 동네 아줌씨들은 흘끗 한번 쳐다보고는 그냥 지나쳐 버린다.


허긴 저지랄로 쌈질하는 게 어디 한두번인가. 관심도 없다. 임씨도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드러워서 피하지 하며 돌아가니 주가놈은 씩씩! 욱욱! 지 성질 못이겨 발광하다가 지펴논 불을 발로 툭툭 차면서 김모 장모에게 뜬금없이 말을 건넨다.

“저그 우리동네 모처럼 오신 손님덜 앞에서 남 창피한 짓을 했습니다. 용서하시시요.”

그 말에 김모가 구구로 가만 있었으면 됐을 것을 기껏 한마디 한다는 게

“별 말씀을 ... 저는 민중들의 일상생활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주가가 획 고개를 돌려 김모를 노려본다.

“음마?! 민중이 뭐 어드랬다구요?”

“아니 그게 아니구.. 민중들의 거친 삶이라는 건 다 이 사회구조의 모순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그러니까...”

“이런 좆먼헌 새끼가 워디서 굴러들어와 사기치는 거여! 홍어구 망둥이구 막 뛰는 선거철이니 너겉이 좆맨헌 새끼두 막걸리 몇통 내놓구 표 좀 얻겠다구 까부는 모양인디 맴(마음)에두 읎는 사탕발림으루 아양이나 떨문 표 몰아줄 거라구 착각하셨다믄... 니기미... 이거나 처먹으라 이거여!”

주가는 오른쪽 팔뚝을 김모쪽으로 확 뻗었다. 스타일 구겨버린 김모가 민망스럽게 고개를 외면하길래 좀 안됬다 싶어 내가 나서보기로 했다.

“주씨, 좀 조용히 할 수 없어?”

“성님은 왜 나서요?”

“안 나서게 좀 해 줘, 이 염병헐 인간아!”

“나가 은자(언제) 성님덜 보구 시비 걸었소? 요런 쥐 좃맨헌 놈덜이 똥폼잡고 앉찔러 신소리를 해대는게 눈꼴시려서 미친눔 지랄떤 거지.”

슬그머니 불 위에 얹어놀 장작더미 속에서 꽤 큰 각목을 집어드니 주가는 곧 뒈질듯 엄살이다.

“성님 인자... 내 입닥치구 조용히 있을라요.”

작년 여름에도 노인들에게 오늘처럼 행패를 부리기에 복날에 개패듯 불문곡직하고 몽둥이 들어 실컷 두들겨 팬 적이 있었는데 그 후로 주가는 내게는 설설 눈치만 보지 함부로 달려들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래 그럭저럭 그 정도로 끝이나 자리를 털고 일어서려는 판에 김모가 톡 나서며

“역시 민중들의 동네는 재미있단 말야!”

주가는 다시 돌아서서 그를 쳐다 봤고 나도 돌아섰다. 잠시 순간이었는데 꽤 긴박한 순간이었다. 주가가 움켜진 손을 펴더니 천천히 주저 앉아 활활 타는 오비끼 토막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김모 얼굴을 향해 그 불토막을 집어 던졌다. 김모가 순간적으로 얼굴을 돌렸고 불토막은 그의 옆얼굴을 스쳐 지나면서 작은 불꽃을 쏟아냈다. 

“형님!” 

김모가  비명을 질렀다.

“...나 가요!”

그는 뒤로 돌아보지 않고 똥개울을 단숨에 가로 질러 큰 길쪽으로 줄행랑을 쳤다. 그 모양을 바라보다 우리들은 낄낄 웃어댔다.


[민들레별곡 / 강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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