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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민들레별곡

엿장수 송씨

by 천 지 인 2007. 1. 16.
 

 엿장수 송씨


  엿장수 송씨는 여간해서는 술이 안 취하는 사람이다. 머리맡에 술병을 놓고 자야 마음이 놓인다 할 만큼 술을 좋아하지만 그이가 술로 큰 실수를 한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런 그 양반이 오늘 아침부터 술에 취해 비칠거리기 시작하더니 점심 때쯤에는 기어코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첨에는 자기 집안에서 싸우기 시작했다. 마누란지 딸인지 이년 저년으로 시작된 큰소리가 나중에는 집어 던지고 부수고 아주 요절내는 소리가 들리기에 몇몇이 뛰어가 봤다.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 눈동자가 아주 뒤집혀버린 송씨가 부엌살림이고 가구고 텔리비젼이고 닥치는 대로 까부수고 있었다. 그걸 강제로 끌어내 간신히 주저 앉혀놨더니 한시간도 못되서 이번엔 초입의 순대국집에 처들어가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외상술을 달래니 순대국 아줌씨가 너무 취하셨으니 다음에 잡수라고 한 걸 엿장수 주제니 안주는 것이냐, 그럼 술장사나 해처먹는 네년 팔자는 뭔 대수냐 시비를 걸더니 탁자를 뒤집어 던지고 주방의 그릇들을 걷어차고 그랬다는 것이다. 화가 치민 아줌씨가 파출소에 신고를 해버렸고 송씨는 젊은 순경에게 잡혀 갔다. 그래 또 몇이 쭐래쭐래 파출소로 찾아 갔다. 사람 좋아 보이는 파출소장에게 한시간쯤 잔소릴 듣고 다시는 안그러겠다는 다짐을 하고 송씨는 풀려 났다.

  파출소 건너편 순두부집에 붙들고 들어가 뭔 일이냐, 무슨 사연이냐 물어도 송씨는 묵묵부답, 술이나 달라고 한다. 말려서 될 계제가 아니기에 소주 한병을 시켜 따라 주니 한숨을 내쉬고 들이쉬고 해가면서 그 한병을 다 비운다. 그러니 그놈의 무거운 분위기에 앉아 있는 우리들 마음도 좋을 리 없다. 성질 급한 주씨가 자기도 한잔 해야겠다며 술한병 더 시켜 마시기 시작하니 모두 한잔씩 나눠 마시게 되었다. 그래 한병 더 한병 더 한 것이 너덧병이 넘었을 즈음 송씨가 찔끔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사연을 늘어놨다.


  “내가 지금 계유생이니까 예순셋이여. 조실부모허구 오갈데가 읎서서 밥이라두 빌어처먹지 않을려구 군대에 들어갔지. 군대 말뚝 박구 하사 달구 시작했는데 원체 무식허구 주변이 읎서서 중사 진급도 안되는 거여. 하사루 십년 넘게 있으니께 먼저 진급한 동기놈덜 보기두 챙피허구, 장교덜두 자꾸 눈총을 주구, 아래 사병놈덜두 아예 내 말은 무시허구 들어 처먹어 주지두 않는 거여. 그래 옷벗구 말았지.

 사회에 나와 보니 배운 게 있나 기술이 있나‧‧‧ 그거 참, 아주 빨개벗겨 만주 벌판에 내동댕이처진 신세라 말이지. 며칠 굶어노니까 이건 또 그냥 모든 게 겁만 나고 자신두 없구‧‧‧ 찾아갈 데두 한군데두 읎구, 뒈져나 버릴려구 문산에서 터벅터벅 걸어오는디 길옆에서 굿판을 벌리고 있는 거여.

 죽는 건 잠깐 뒤루 미루구 우선 밥부터 얻어 먹자, 그래서 굿판에 끼어들어 밥 좀 달라구 했지. 왜 굿판음식은 굿이 끝나면 그냥 버리잖어. 무당년이 이거 저거 모아 주기에 정말 배터지게 실컷 먹었는디‧‧‧ 걸신들려 허겁지겁 처먹는 내 모양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무당년이 낼 보구 자길 따라디니지 않겄냐구 묻는 거여. 따라다니며 뭘 하느냐니까 박수를 하라는 거여. 그래 그 무당년 따라다니며 박수가 됐지. 무당질두 대무당이 아니믄 갠신히 입에 풀칠만 하는 정도라 집두 절두 읎시 전국 사방을 싸돌아 다니다가 여기루 굴러 들어오게 됐는디‧‧‧

 정부에서 무당질 못허게 막구, 용헌 무당두 아니니께 노상 가난 신세 못면하니 결국은 이년이 내가 떨어져나가 줬으믄 허는 눈치더란 말이지. 그래 그럴 거 읎시 같이 살자, 엿장수라두 혀서 멕여 살리겠다 그래 그거하구 같이 살게된 거여. 무당이 무당질 안하면 맨날 신병(神病)이 끊이지 않으니 그놈의 신열에 골골대는 소릴 들으면 그것두 안됐다 싶어 그럼 난 엿장수하구 네년은 무당노릇 계속해라‧‧‧

 그 세월이 삼십년이여. 그 사이에 자식이랍시고 낳아 논 게 지금 그년 하난데 그게 또 못난 부모 닮아 미련곰퉁이에 지랄염병 짓거리만 골라 해대다가 떠돌이 거지루 돌아다니던 지금 그놈 만나 그것두 사는 거라구 배 맞대구 사는 거여.

 이 웬수겉은 년놈덜이 허구헌날 꼼짝두 안하구 놀구 처먹으믄서 엿장수 무당노릇신세 못면허는 지 부모 쥐꼬리만헌 살림만 야금야금 파처먹구 있는거여. 그게 하루이틀이구 일년 이년이래믄 내 얼마든지 이해하구 참아내겄지만 이십년 세월을 하루겉이 그렇게 알궈 처먹구 앞으로두 그럴 것이란 말이지. 무당노릇해서 한푼두 못번다는 것은 자네덜두 다 알구 있을 것이구‧‧‧ 내 무신 일이 있어두 아침 여섯시믄 일어나서 리어카 끌구 나가는디‧‧‧ 이잔 고물장수두 차끌구 외교(로비)하며 해야 큰 덩어릴 먹구 그러는 시대라 하루종일 탈탈거리며 댄겨 봐야 만원벌이 갠신히 할 수 있다구. 리어카 끌구 아파트구 공장이구 하루종일 댄기면 눈앞이 노랗구 다리가 후둘거려 술 한잔 안마시면 고냥 길거리에 쓰러져 뒈질 것만 같은디‧‧‧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면‧‧‧ 너무 억울하고 기가막혀‧‧‧ 그냥 인상(생)으루 태어나서 내겉이 한심허게 살 수두 있겄나‧‧‧ 생각하면 그냥 어디 모르는데 가서 칵 죽어나 버리구 싶은디‧‧‧ 마누라 허구 그것두 자식이라구 그 미친년겉은 딸년 생각하믄 그럴 수두 읎구‧‧‧ 그러니 살긴 살아야 허는디 앞으루 무슨 재주루 사나, 무슨 힘으루 사나 생각하믄‧‧‧ 심(힘)들어 너무 심(힘)들어! 내 나이에 뭘 어째본다는게 주착중에 상주착이지만 엿장수루 도무지 살 요량이 읎서서 매(몇)칠전에 백마교 아래 목공소에 내를 써달라구 어거지를 써서 들어갔지. 그 주인놈이 사람이 읎으니까 내겉은 인간이라두 쓰겄다구 혀서 들어갔는디 사흘 지나서 도저히 안되겄다구 나가 달라는 거여. 도무지 쓸래야 쓸 수가 읎다는 거지.”


  봄 하늘은 어쩌면 저다지도 화창하냐?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은 또 저렇게 활기차고 씩씩하고. 자동차들은 씽씽 내달리고 고층건물은 쑥쑥 올라가고.

  그런데 이 한쪽엔 엿장수 송씨가 있다.

 

 [민들레별곡 / 강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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