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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민들레별곡

화장실 부루스

by 천 지 인 2007. 1. 12.
 

화장실 부루스



여섯가구가 악다구리 끓듯 모여 사는 우리 열두가구집 화장실은 60년식 전통 뒷간 그대로다. 탄칸 다섯개로 막아 구분만 해놨지 시설이고 뭐고 아진작 없고 그냥 누면 떨어지고 갈기면 어디론가 다 새서 빠져나가는 천연시설이다. 그러니 이 찜통더위에 그런 뒷간에 쭈그리고 앉아 단 오분만이라도 있어봐라. 아이고 거기다 웬 놈의 쥐새끼들과 구더기들은 그리도 성한가.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집 아줌씨들은 끄떡도 않는다. 냄새가 진동하거나 말거나, 쥐새끼들이 발부리 앞에까지 다가오거나 말거나... 비명 한번 안 지르고 얼굴 한번 찡그리는 법이 없다. 천하태평으로 일보시는 무심한 지경으로 나오신다.


살인적 무더위가 계속되는 요즘에... 덥다고 무조건 찬 것만 찾아 대다가 기어코 배탈이 나고 말았다. 그 기막히는 화장실을 몇번 들락거렸는데도 뱃속은 여전히 비상상황이라... 냄새가 천지진동해도 쥐새끼들 땜에 구역질이 나도 뱃속의 똥기운은 몽땅 빼버리자고 독한 맘 먹고 끙끙대며 용을 쓰며 버티고 앉아있었다.

그러고 있는 판에 아줌씨들 둘이 키득거리며 옆칸 화장실로 왕림을 하셨다. 소리도 우렁차게 일을 보시면서 한 아줌씨가 (젊은) 아줌씨에게 트집이다.

“이 잡것아, 어젯밤 느거들 지랄옘병 떠는 바람에 한잠두 못잤어야. 가만 있어두 숨이 턱턱 맥히구 비지땀이 질질 흐르는 판에 뭔 육갑지랄이다냐?”

“아따! 성님은 늙은 게 주착이라고 냄이사 뭔짓을 하든지 웬 관심이다요?”

대강 무슨 얘기들을 하고 있는지 뻔한데... 변소 안엔 자기들 둘뿐인줄 알고 저렇게 막나가는 판에 내가 헛기침이라도 하고 용쓰는 소리래도 내봐라... 나나 즈이들이나 얼마나 민망할 거며 밖에서 마주치더라도 던적스럽지 않겠는가.

그러니 괜히 불안해지고 신경 쓰이는 것은 내쪽이다. 숨소리도 하나 크게 못내고, 저려오는 다리 한번 움직였다가 기척이라도 들리면 어떡하나... 이 악다물고 버티고 있을려니 그게 바로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냐.

땀은 비오듯 콧등, 입술, 가슴, 겨드랑이로 흘러내리고 쥐새끼들은 유난을 더 떨며 앞뒤좌우 설쳐대며 돌아다니고 왕파리 한놈은 점잖게 날라와 콧등에 척 걸터 앉아 꼼지락거리는데 야속하고 주착스런 아줌씨들은 3장 2절, 4장 5절 줄줄이 이어가는 중이다.


“야 이것아 몸땡이 늙었다고 고것도 늙었다냐?” (더 노골적으로, 야하게 표현했지만 내 체면에 그걸 우떻게?)

“아따 그럼 성님두 한탕 뛰시지 그러셨소!”

“고게 내 혼자 하고 잡다고 되는 거야? 잔업허구 왔다구 밥처먹군 그냥 골아떨어졌는디.”

“어이구 워쩔거나! 여자덜은 고거 생각날 때 확 풀어줘야지 안 그러믄 열받치구 속병만 생긴다구 그러든데 성님은 날과부루 밤샜으니 화답증만 남았겠소?”

“그나저나 느그덜은 옆방 앞방 사람덜은 생각두 않구 틈만 나면 쌕쌕거리구 지랄염병이나 냄 챙피허지두 않냐?”

“우리가 지금 남 챙피한 거 따지게 됐소? 심있을 때 그것두 실컷 해야지 성님처럼 고거 다 늙고 닳아 빠지고 나선 맬짱 헛거요... 아니헐 말루 요새 고짓말구 더 재미있는 게 있간디?”

“염병잡것! 육실허다 뒈질 놈의 이 더위에 시두 때두 읎이 가랭이 찍찍 벌리구 고짓만 바치다간 피골이 상접해 해골만 남는 벱이여.”

“어이구 걱정두 팔자! 우리 자기나 내나 아적두 펄펄 남는 심이 있는디 뭔 쓸디없는 염려시라요?”

“좋기두 허겄다. 쌩생헌 고무말뚝 차구 댕겨서...”

“성님두 고렇기 징징 대지만 말구...”

“왜? 빌려달라믄 한번 빌려주겄남?”

낄낄 키득키득 까르르...


내 온몸은 사우나탕에 앉아 있는 것보다 몇 배 더 아주 땀으로 절여논 거 같고, 왕파리 똥파리는 날아갔다가 다시 날라와 앉았고, 빌어먹을 놈의 왕쥐는 더러운 눈을 깜짝거리며 발부리 앞에서 어정거리고... 쥐하고 뱀이라면 질색하는 나는 금방이라도 토악질이 나오려고 하는데 이 푼수 아줌씨들은 그냥 퍼질러 앉은 듯 레파토리 연속이다.

체면이고 나발이고 잠깐 음담패설 좀 엿들었다고 엉큼한 놈이라고 쑤군대든지 뭐라든지 이제는 더이상 참을 수 없다. 여기가 무슨 다방야, 노래방이야? 우선 헛기침을 두어번해서 사람있다고 기척을 하고 바지를 추스린 후에 점잖게 문을 열고 다시 헛기침을 두어번 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천연스럽게 걸어가는 거다.

그렇게 머리는 굴렸건만 그게 당최 머리속에서만 맴돌지 몸뚱이는 영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럴 참에 (아마도) 왕쥐가 그쪽으로 갔나 보다. 젊은 아줌씨가 굼뜨게 중얼댄다.

 

“어이구 저 염병헐 놈의 쥐새끼는 허구헌날 똥깐에서만 맴돌지 워디 딴 데두 못간다니께. 이 더우에 똥깐이 뭐 시원한 게 있다구.”

그 지경에 큰 아줌씨가 뜬금없이

“야, 그 주사파라는기 의사덜이 갖구 댄기는 거여?”

물으니 작은 아줌씨 대답이

“주사기 파는 사람덜이 빨갱이라구 안헙디까”

“그기 무슨 주사긴데...”

“내가 워치게 알겄소.”

“주사구 지랄이구 이 복날 개잡듯 사람 잡아대는 더우에 그놈의 얘긴 왜 노상 테레비에 나온다냐? 그나 저나 이렇게 가물어서 아랫지방 사람덜은 워치게 산다냐?”

“아따 우리 시아부지는 가뭄 땜시 금년 농사 페롱했다구 넋이 다 안 빠졌소? 큰일났소. 우리 원석아빠 월급갖구 금년에는 두집 살림해야 겄으니...”

“말두 말어! 우리 시동상두 바닷물이 뜨거워져서 고기 한마리두 못잡는댜... 괴기덜이 딴 데루 다 도망갔댜. 같이 괴기 잡는 사람덜 월급두 못준다구 돈 좀 부치래는디...”

“그기두 그기지만... 우리 원석아빠네 공장에서두 어제 더우 땜시 한사람 죽어 나갔대여... 원석아빠는 웬만한 더우엔 끄떡두 안하는 사람인디 금년 더우엔 견디기 힘든가 봅디다.”

“이런 판에 텔레비에서 해대는 소리덜은 뭔 육실헐! 속 씨원한 소리는 하나두 읎으니...”

“수돗물 받아놓고 홀라당 벗어 제끼구 한바탕 물바가지나 쏟아 부어야 쓰겄네...”

“맞다 맞어! 물한통 받아 놓구 뼛속이 얼얼하도록 쫙쫙 껸져 보자야.”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들이 벌컥벌컥 열리고 아줌씨들이 나갔다.

하나님 맙시사!

 

[민들레별곡 / 1995년 / 강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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