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소령 내음
이성부
이 넓은 고개에서는 저절로 퍼질러 앉아
막걸리 한 사발 부침개 한 장 사먹고
남쪽 아래 골짜기 내려다본다
그 사람 내음이 뭉클 올라온다
가슴 뜨거운 젊음을 이끌었던
그 사람의 내음
쫓기며 부대끼며 외로웠던 사람이
이 등성이를 넘나들어 빗점골
죽음과 맞닥뜨려 쓰러져서
그가 입맞추던 그 풀내음이 올라온다
덕평봉 형제봉 세석고원
벽소령 고개까지
온통 그 사람의 내음 철쭉으로 벙글어
견디고 이울다가
내 이토록 숨막힌 사랑 땅에 떨어짐이
사람은 누구나 다 사라지지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나씩 떨어지지만
무엇을 그리워하여 쓰러지는 일 아름답구나!
그 사람 가던 길 내음 맡으며
나 또한 가는 길 힘이 붙는다.
막걸리 한 사발에 부침개 한 장이면 족하다.
퍼질러 앉아 그렇게 마시며 내려다보는 골짜기에서 그 사람의 내음이 올라온다.
내음은 절로 올라오는 것이 아니다.
뜨거운 그이의 열정이 만든 상승기류를 타고 오르는 것이다.
풀잎마다 꽃잎마다 맺힌 그이의 사연을 알기에
우리는 어느 산보다 지리산을 갈망하는지 모른다.
시인의 표현처럼 사람은 누구나 다 사라진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라진다.
그럼에도 시인은 무엇을 그리워하며 쓰러지는 일은 아름답다고 하였다.
우리는 안다.
땅에 떨어져 철쭉으로 벙글은 그의 숨막힌 사랑을!
하기에 뒤서가는 우리는 부침개에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고
그 사람의 뜨거운 내음 맡으며 가는 길에 힘 붙어서 나아간다.
- 천 지 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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