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가락을 품고 있고 (桐千年老恒臧曲)
매화는 한평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梅一生寒不賣香)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그대로이고 (月到千虧餘本質)
버들은 백 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돋는다. (柳經百別又新枝)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는 만물이 추위에 떨고 있을 때 가장 먼저 꽃을 피워 봄을 알려줍니다.
때문에 매화는 난초, 국화, 대나무와 더불어 선비정신의 표상이었습니다.
위 글은 조선 중기의 문신 상촌(象村) 신흠의 수필집 ‘야언(野言)’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계절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본연의 자신을 지키는 기개가 간결하고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하기에 이 글에 이러저러하게 덧붙이는 행위는 오히려 구질구질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너저분한 노블리스(noblesse)가 너무 많습니다.
청문회에 나선 고위공직 후보자들은 진정성 없는 악어의 눈물로 면죄부를 받으려합니다.
언론인의 소명을 다하지 못함을 사죄해야 할 엄기영은 오히려 PD수첩을 곡해합니다.
사의표명 후 잠적이라던 정운찬은 일주일 만에 꼬리 내리고 돌아섭니다.
매필매향(梅必賣香)의 변절에서 매불매향(梅不賣香)의 절개는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서 지조와 절개의 상징은 많습니다.
세조에게 죽임을 다하면서도 기개를 꺾지 않은 성삼문,
사마천이 절개의 상징으로 꼽은 백이와 숙제를 한탄한 그의 시조를 다시 한번 음미합니다.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를 한하노라
주려 죽을 진들 채미도 하난 것가
비록애 푸새엣 거신들 긔 뉘 따희 낫더니.
- 천 지 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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