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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사람과 산

지리산 산행

by 천 지 인 2013. 7. 26.

 

 

   전라남도, 전라북도 및 경상남도에 걸쳐 있는 지리산.

그러나 지리산은 단지 넓기만 한 산이 아니다.

그렇다고 외골수로 높이만 추구한 산도 아니다.

한없이 넓은 품과 가늠할 수 없는 깊이를 간직한 채 솟구쳐 오른 넓고, 깊고, 높은 산이다.

그래서일까?

어리석은 사람도 지리산에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변한다는 것이!

 

 

 

 

15년여 만에 찾은 지리산 산행을 새벽에 백무동에서 시작한다.

어둠을 뚫고 끊임없이 재촉한 발길은 하동바위 참샘을 지나 장터목에 이르렀다.

허기진 배를 채우는 점심식사에 곁들여 마시는 소주가 일품이다.

급기야 반주 몇 잔 걸친 일행은 한두 번 오른 봉우리가 아니라며 천왕봉을 포기한 채 오침을 청한다.

어제의 천왕봉은 오늘의 천왕봉이 아닌 것을...

그래서 나는 홀로 천왕봉을 향한다.

 

 

 

천왕봉으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는 제석봉에는 하얗게 속살을 드러낸 고사목이 있다.

비장미와 신비감을 주는 고사목은 인간의 욕심이 빚은 재앙의 결과물이다.

죽어서도 그렇게 수십 년을 비바람에 맞서던 고사목도 이젠 세월에 밀려 대부분 밑동만 남았다.

어리석은 인간의 욕심을 회한하며 천왕봉의 마지막 관문 통천문에 이른다.

고은 시인이 신선들이 하늘에 오르는 것이 다른 산에서는 자유롭지만 지리산에서는 이 문을 통하지 않고서는 신선도 하늘에 오르지 못한다고 하였다는 통천문.

신선조차 이 관문을 거쳐야 했으니 우리가 어이 통과하지 않고 오를 수 있겠나.

 

 

 

 

한국인의 기상이 발원된다는 천왕봉.

지리십경 중 으뜸이 천왕봉에서 바라보는 일출이다.

하지만 그 모습은 아무에게나 허하지 않기에 3대가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 천왕일출.

그 일출을 나는 서른 되던 해의 첫날에 보았다.

그것도 어느 일출보다 말갛고 더 새빨간 커다란 불덩이를!

 

 

 

 

 

시인 이원규는 행여 지리산에 오려거든 흑심 없이 이슬의 눈으로 오라 했다.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올 것이며,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 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라 했다.

그리고 벽소령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라고 했다.

종주 내내 그렇게 우리는 유장한 바람처럼, 때론 온 몸 달아오른 절정으로 산행을 하였다.

그리고 노고단에서 화엄사로 하산 하는 길에 우리는 겨울지리를 기약한다.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라는 시인의 바램을 뒤로한 채...

 

 

 

 

- 천 지 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