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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사람과 산

금산사 - 미륵이여, 미래불이여

by 천 지 인 2011. 11. 18.

 

 

 

 

사람들은 힘겹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갈 때, 부조리한 현실을 말세라고 여긴다.

이러한 말세관(末世觀)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희망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를 불교적으로 승화시킨 것이 미륵신앙이다.

그래서 미륵신앙은 민중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의 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석가 입멸 후 56억만 년이 지난 뒤 도솔천에서 인간세계로 하생하는 미륵은

사욕(邪欲)과 사법(邪法), 질병에 허덕이는 고통의 세계를 온화하고 평화로운 이상세계로 만든다고 한다.

인도에서 처음 성립된 이러한 미륵신앙은 중국에서 수당교체기에 구세말법(救世末法)의 민중신앙으로 나타난다.

한반도에서도 신라 하대의 정치·사회적 혼란기에 말법사상이 반영된 구원의 신앙으로 변모한다.

 

 

 

 

 

고대사회에서의 미륵신앙 전개과정에서 금산사는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갖는다.

앞으로 김제평야의 넓은 곡창지대가 있어서 식량이 풍부하고, 뒤로는 노령산맥의 험준한 산악이 펼쳐져 은신이 용이한 금산사!

때문에 혼탁하고 어지러운 신라 하대에 금산사는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민중들과 미륵신앙이 결부된 저항기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후 금산사는 고려시대에 이르면 미륵을 주불로 모시는 법상종(法相宗)의 근본도량이 되었다.

 

 

 

 

조선 중기 정여립은 반상의 귀천과 사농공상의 차별, 남녀차별이 전혀 없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꿨다.

따라서 그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각계각층을 망라해 혁명세력인 대동계를 조직하여 모악산 일대에서 모임을 갖고 무예를 닦았다.

정여립의 정치사상은 다음과 같은 그의 글에 잘 나타난다.

천하는 공물(公物)이니 어찌 일정한 주인이 있으리오.

··우가 임금의 자리를 서로 전한 것이 성인이 아닌가.

또 말하기를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한다는 것은

왕촉이 죽을 때에 일시적으로 한 말이고 성현의 통론은 아니다.”

 

 

 

 

 

구한말 강증산은 정여립 집터 바로 옆에 광제국(廣濟局)이라는 약방을 차려놓고 절망에 빠진 백성들을 구제했다.

그는 여성과 백정 무당이 존경받고 서자와 상민이 무시당하지 않는 후천개벽의 세상을 역설했다.

강증산, 그는 말한다.

나는 광대요 무당이며 천지농사꾼이다. 광대와 무당이 바로 가장 큰 후천개벽의 전위다.”

 

 

 

 

이렇듯 금산사를 중심으로 미륵신앙은 근세에까지 이어져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나타나는 모습은 다르다 할지라도 미륵하생의 용화세계를 꿈꾸는 민중들의 열망과 꿈은 동일했다.

차별 없이 더불어 사는 대동세상에 대한 열망!

반상의 귀천, 사농공상의 차별, 남녀차별이 없는 후천개벽 세상에 대한 바로 그 꿈!!

 

 

 

 

 

미륵이여, 미래불이여

                                            - 이가림 -

 

.....

얼마나 마음의 귀를 씻고 씻어야

저 강물 같은 숨결을

엿들을 수 있을까

얼마나 마음의 거울을 닦고 닦아야

저 연꽃 같은 미소를

비출 수 있을까

얼마나 마음의 문을 열고 열어야

저 바위 같은 침묵의 말씀을

깨칠 수 있을까

.....

 

 

 

 

 

 

- 천 지 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