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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사람과 산

사랑은 전설이 되고 - 북한산 사모바위

by 천 지 인 2010. 1. 28.

 

 

 

기록적인 폭설과 연일 지속된 추위도 산행본능을 잠재우지 못한다.

누가 뭐래도 겨울산은 눈과 바람이기에 오히려 산에 대한 열망으로 달뜨게 한다.

겨울산에서 콧구멍 가득 들이킨 칼바람, 그 바람도 심장을 관통하고 나면 허옇게 응축된 수증기와 함께 따끈한 콧바람으로 토해 나온다.

소백은 눈과 바람의 산이다. 하기에 겨울산에 대한 열망은 소백으로 구체화 되어 가슴 가득 자리 잡는다.

 

 

 


가슴 속에 쌓인 열망은 어느새 신화가 된다.

누구나 가슴 속에 신화를 간직하고 있을 게다.

고래잡이의 신화는 고래다. 고래잡이는 자신의 신화를 찾아서 동해바다로 떠난다.

조셉 캠벨은 "모든 신화는 꿈과 동일한 문법을 갖는다"고 설파하였다.

그렇다. 신화는 에너지다. 꿈을 추구하는 열정이다.

하기에 가슴 속에 고래를 간직하지 않은 사람, 신화가 없는 사람은 꿈과 열정이 없는 사람이다.

이 겨울 눈보라 속에서 허옇게 콧바람 토해 내고픈 열망은 내게 신화가 되었다.

그러나 떠나지 못했다. 아쉽지만 고래의 꿈을 다음 겨울로 미루며 북한산으로 향한다.

 

 

 

[족두리봉] 

 

 

  [운무에 가려진 시내] 


 

폭설 뒤 2주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산에는 섭섭지 않을 정도로 눈이 쌓여 있다.

초입부터 아이젠을 착용하고 시작한 산행, 내딛는 발길마다 뽀득인다.

하지만 반복되는 그 소리가 질릴 만도 하건만 들을수록 맛깔스럽다.

독바위역을 출발, 족두리봉을 거쳐 향로봉으로 향했다.

능선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는 산중운해(山中雲海)나 다름없는 운무에 가려 있다.

인공의 빌딩이 자연현상에 가렸으니 무위(無爲)가 인위(人爲)를 잠재운 셈이다. 

 

 

   [비봉] 

 

 

능선과 봉우리를 오르락내리락 하며 비봉을 지나 사모바위에서 여장을 풀었다.

그리움이 사무쳐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의 바위!

현실의 간절함은 바위가 되어 영원한 사랑으로 완성되었다.

간절한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사람도, 그리움을 간직하고 바위가 된 사람도 행복한 사연이다.

시간이 흘러도 변질되지 않는 사연의 순수성은 바위와 함께 전설이 되었으니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다 바위가 된 전설이 어디 사모바위 뿐이랴.

이외수는 말한다. “바위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사랑”이라고.

 

 

[사모바위]

 

 


산에서의 식사는 소박하다. 김밥과 컵라면, 삶은 계란과 막걸리 한사발이면 심신이 족하다.

게다가 좋은 사람과 함께하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점심을 마치고 문수봉, 대남문을 지나 구기동 계곡으로 하산하니 4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윌트 휘트먼은 질문한다. "왜 저 나무들 아래를 걷다 보면 항상 크고 아름다운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 돋아나는 것일까?"

산행기를 쓰며 스스로에게 질문해본다. 왜 우리는 산에 가는 걸까?

윌트 휘트먼의 질문이 나에겐 답이 되었다.

“산을 걷다 보면 항상 크고 아름다운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 돋아날 것 같으니까!”

 

 

 

 

 


산행을 마치고 식탐을 채우러 광장시장으로 향한다.

그곳은 산해진미가 쌓여 있는 곳, 다양한 먹거리가 값싸게 제공되니 홍콩의 야시장이 부럽지 않다.

격식의 인위보다는 사람냄새 물씬 나는 무위가 있는 시장, 그래서 그곳에서의 식탐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귀가길 지하철 스크린도어로 마주친 시(詩)!

인공의 지하에서 만나는 인문(人文)은 또 다른 행복이다.

그렇구나.

한편의 시(詩)가 무미건조한 일상을 탈각시켜주고 있으니 무위의 아름다움은 이곳에도 존재하고 있었구나.

 

 

 

 


- 천 지 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