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남편 겉늙어 보이기로 유명합니다. 벌써 중학교 때부터 그 나이보다 10년은 더 나이들어 보였다고 합니다. 중학교 때 남녀공학이었는데 여학생들이 남편이 선생님인줄 알고 인사를 다 할 정도였다니 얼마나 늙어 보이는지 안 봐도 상상이 가시죠?
아직도 상상이 안 가신다구요?
그럼 이 얘기도...
한 2년전 우리 신랑 38살 때 그때 당시 최신 휴대폰이었던 쵸콜렛 폰을 사기 위해 한 매장에 가서 쵸콜릿 폰을 가리키며“ 저 거 좀 보여주시겠어요?” 했더니 매장 점원 아가씨 왈 ‘아버님, 저건 요즘 젊은이 들이 쓰는 거예요. 그거 말고 이건 어때요?“ 하며 단순한 모양의 휴대폰을 보여주었다는 군요. 이 정도이니 어느 정도인지 아시겠죠?
나이 이제 40이지만 배가 38인치인데다 머리는 희끗희끗, 수염은 덥수룩, 게다가 주름까지 자글자글하니 어쩔 땐 제가 봐도 나이 50이 넘어 보일 때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겉모습만 늙은 게 아니라 몸도 50대라는 거지요. 후유...
그 때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지금으로부터 15년전 그러니까 우리 신랑은 25세 전 26세 그야말로 한창 팔팔했던 꽃다운 나이이지요.
우리가 연애를 시작한 뒤 2개월 쯤 뒤에 우린 단 둘이서 대전에 있는 계룡산으로 등산을 간적이 있습니다.
남편은 뭔가 있어 보이고 싶었는지 커다란 배낭에 등산화에 등산 양말,등산복 게다가 머리엔 예의 그 빨간 등산용 손수건까지 동여매고 나타났더군요. 전 우리 신랑 산 무지 잘 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산에 오른 지 30분도 안돼서 신랑은 뒤쳐지기 시작 했습니다. 전 그 당시 별명이 산 다람쥐였을 정도로 산을 잘 탔거든요.
열심히 올라가다 뒤에서“연이야, 좀 천천히 가! 제발 기다려, 같이 좀 가자”란 말에 뒤돌아보면 신랑은 한 50m 아래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간신히 올라오고 있는 겁니다.
‘어이구, 온갖 멋은 있는 대로 다 부리더니 쯧쯧....’
남자친구가 너무 힘들어 하니 어쩝니까?
그 무겁고 커다란 등산 가방을 결국은 제가 메고 정상까지 올라갔지요. 그럼에도 산에서 내려올 때 발을 절룩거리는 것은 남편이었습니다.
우린 계룡산에서 내려와 민박을 했습니다.
저녁밥을 해 먹고 술 한잔 마시니 피로가 확 몰려오더군요. 남편도 마찬가지였겠지요.
하지만 어찌 그냥 자겠습니까?
이렇게 단 둘이 한 방에서 자는 것이 처음인데^^
아시죠? 왠지 그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고 떨리는 그 느낌!
남편이 몇 번 뽀뽀를 하며 슬슬 달려들기에 전 살짝 밀쳐내며 싫지 않은 듯 “어우, 왜 이래~? 아이 싫어. 이러지 마~!”하며 몇 번 반항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남자 “그래, 알았어. 알았어. 안 그럴게. 미안해. 잘 자. ”하며 볼에 입맞춤을 하곤 등 돌리고 눕더라구요. 그러더니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코 골며 자대요.
내 참! 쩝쩝. 뭔가 좀 아쉬었지만 뭐 제가 어떡하겠습니까? 코 골며 자는 사람을... 저도 옆에서 이불 깔고 잤지요.
그런데 문제는 정작 그날 아침에 일어났습니다.
민박을 한 집은 마당에서 쌀 씻고 설거지하고 세수까지 다 해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밖에 나가보니 여러 명의 사람들이 밥도 하고 씻기도 하고 그러고 있더군요.
그래 나는 아침밥을 하기 위해 쌀을 씻고 남편은 마당 건너편에서 세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쌀을 열심히 씻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킥킥거리며 웃는 소리와 함께 “얘, 저 사람 좀 봐. 코피 흘려. 어젯밤에 뭘 했길래 코필 흘릴까?”하는 말에 고개를 들어보니 아니 이럴 수가! 남편이 코피를 흘리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나원참 얼마나 민망하고 창피하던지...
남편은 “아니, 코피가 왜 나오지?”하며 날 향해 다가오더군요.
난 속으로‘가까이 오지마! 야! 가까이 오지 말란 말이야. 정말 쪽 팔리거든!’
했지만 이미 내 앞에 와 있는 이 남자!
당황하는 남편의 표정과 옆에서 킥킥대며 웃던 여자들, 그리고 남자들은 어땠는지 모릅니다. 차마 그들을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내 그때 우리 신랑 알아봤습니다요.
겉만 늙은 것이 아니라 몸도 늙었다는 것을요.
내 간밤에 무슨 일이나 있었으면 덜 억울하지.
아니 자기가 한 일이 뭐있다고 코피를 흘리냐고요?
무거운 가방 내가 다 들었지, 밥도 내가 다 했지.
25살에도 체력이 그리 했으니 지금은 어떨지 말 안 해도 상상이 가시지요?
우리 신랑 요즘 제가 옆에만 가면 도망갑니다.
제가 어쩌다 콧소리 내며“자기야!” 또는 “여보!”하며 다가가면 웃음 띈 얼굴로 손 사레를 치며
“부인! 왜 그래? 그러지마. 나 무서워. 난 부인이 부드러운 말로 말 할 때가 가장 무서워”하며 도망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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