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그는 헐크로 불렸습니다. 전성기 시절 호쾌한 홈런타자로서 힘을 자랑하는 그가 웃을 때에는 순박함 그 자체였지요. 미국으로 떠나고 가끔 스포츠 단신에서 그의 미국 생활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2006년에 다시 돌아 왔습니다.
돌아온 그는 예나 지금이나 결코 녹슬지 않은 검객임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전성기 시절의 그는 배트와 미트로 그라운드를 평정하는 검객이었습니다. 불혹을 훌쩍 넘긴 그의 검술은 이제 검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내공은 이미 ‘와호장룡’의 주윤발을 능가하고 있습니다.
검객이 검에 의지하지 않을 때 우리는 내공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 검에만 의지하여 승부에 집착할 경우 멀리보지 못하고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근본을 앞세우면서 정도(正道)를 걸어야 함을 가르켜 주었습니다.
요즘 잘나가는 SK구단의 성적 이면에는 이만수의 녹녹치 않은 무사도 정신이 깃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위보다는 근본을 잊지 않는 그의 정신은 모든 것은 승부로 판결된다는 ‘승부제일주의’와는 근본이 다릅니다.
무림강호에서도 검객들에게는 금기사항이 있습니다. 여성의 특정신체부위를 공격하지 않거나 암수를 쓰지 않는다는 등의 금기 말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승부를 위해서 금기를 깨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게 마련입니다.
요즘 강호는 김재박과 선동열 중심으로 재편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국보급 여우인 그들에게 강호의 근본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근본을 망각한 따분한 강호는 배척의 대상이 됩니다.
승부를 위하여 상대타자에 따라 수시로 투수를 바꾸는 선동열의 검법은 승부에 대한 열정은 있되 왜 이겨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은 없습니다. 한두점으로 예견된 승부에서 대여섯점을 이기고도 8회말에 번트작전으로 점수차를 벌이는 김재박은 선배감독에 대한 확인사살을 감행하는 아름답지 않은 승부집착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무미건조하고 동료의식 조차 없는 강호를 당연히 사람들은 등지게 되어있습니다. 최소한의 무사도와 규칙 등을 벗어나 난투를 벌이는 그들을 결코 검객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만수는 달랐습니다. 그는 응원석의 록밴드 공연 단상에 올라서 긴 가발을 쓴채 춤을 추며 팬들의 흥을 돋구더니 “앞으로 10경기 안에 홈인 문학야구장이 팬들로 꽉 채워지면 팬티만 입고 경기장을 돌겠다”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이 한 마디에 강호 사람들은 환호성을 올렸고, 구름처럼 몰려든 강호의 관중 앞에서 그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승부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강호의 질서에서 사람을 제일 우선으로 대접해야 한다는 근본을 제시한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의식이 모든 검객들의 머리 속에 박혀있어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가르쳐 준 것이지요.
“이래 갖고 돈 받으면서 야구를 하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검법이 상당한 경지에 이르러 강호에 이름을 날리고 있는 어느 검객의 수련과정을 보니 열심히 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팀의 선수들이라도 프로의식을 갖게끔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진정한 검객입니다. 근본을 잊지 않은 진정한 프로입니다. 오로지 야구를 통해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사람들에게 재미를 선사하고자 하는 그의 자세는 ‘승부에 대한 집착’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젊었을 때 해태를 응원하던 저는 이만수가 등장할 때는 항상 긴장하였으며, 그가 치는 홈런을 결코 아름답게 박수쳐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만수 자체를 좋아하게 되었으며, 그가 몸 담고 있는 팀을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야구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오로지 야구만을 통해서 즐거움을 선사하고자 하는 그의 정신은 치열한 검객의 세계에서도 당연히 지켜야 할 정도가 있으며, 해서는 안되는 금기가 있음을 깨우쳐 줍니다. 세상사의 이치에 대해서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여준 이만수코치, 우리 시대의 진정한 검객인 그와 함께 하는 야구가 진정으로 즐겁습니다.
[ 천 지 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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