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물베기
어제만 해도 그렇다. 좋게 술 한잔씩 나누다가 김씨가 보신탕으로는 검정개가 최고여 하고 한마디 하니까 조씨가 누렁개가 최고라고 반론을 펴고 검정개다, 누렁개다 몇번 오락가락 하더니 김씨가 느닷없이 소리친다.
“조가놈아! 너는 한말루 좆심두 읎는 놈이다 이거여! 그거 동네가 다 알구 있다구!”
아니 검둥이 누렁이 놓고 싸우다 왜 갑자기 정력문제를 들고 나오나. 얼굴이 벌개진 조씨가 지지않고 쏴부친다.
“김가야 니는 바람난 숫캐처럼 치마둘른 여자만 보믄 다 올라탈라구 그러드라.”
그 자리에 김씨 아줌씨도 앉아 있는데 저렇게 막 나가도 되는 건가?
“이런 호로새끼! 내가 은제 바람폈어? 느놈은 육년 전에 사거리 식당에서 쏘주 사겠다구 혀놓구는 처먹구 나서 입 싹 씻었지? 치사한 놈.”
옛날 고리짝 소주 한 잔 값까지 되들쳐내 싸우니------.
“그려서 내가 씨암탉집에서 맥주 몇병 산 거는 왜 말 안해? 진짜루 치사헌 놈일세.”
누렁이 검둥이가 숫캐에 발기부전증으로 그리고 다시 6년 전 소주와 맥주로... 그래도 방안에 앉아 있는 친구, 이웃들은 서너명만 그 싸움에 관심 있고 다른 측들은 그저 지 할 얘기 지 할 노릇을 할 뿐이다. 그러다 가끔 시끄러! 꽥 소릴 지르거나 더 싸워! 나가 싸워! 이건 싸움인지 뭔지... 그렇게 곧 절단날 것처럼 악악거리다가 에이 드런놈! 한마디 뱉고는 조씨가 문을 걷어차고 나가 버린다.
그랬거나 어쨌거나 다음날 아침에 조씨는 여전히 나타나 한바탕 수다를 떨고 시시덕거리다 김씨와 같이 공장으로 출근한다. 아니 남자가 싸웠으면 그래 단 며칠이라도 냉전상태로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우리들이 ‘당연히’ 큰성님 대접하는 정씨 성님도 그렇다. 나이 예순아홉에 국군 대위출신이고 그 나이에 주착스럽게 무협지를 한방 가득 빌려다 봐서 그렇지 그래도 글줄이나 안다는 양반인데 아직 50대 새파란 후배인 최씨가 열받치면 노상
“무식허긴...” “저렇게 맹해서...”
하는데도 여전히 성님 동생이다.
물론 무골호인양 그냥 넘어가지는 않는다. 무식하단 소릴 듣는 걸 죽기보다 더 싫어하는 큰성님인지라 얼굴 색깔이 파리해지고 눈에 독기를 품고 죽일 듯 노려보다간 제풀에 ‘에이 배운 놈이 참아야제...’ 그리곤 정말 잊어버린다.
이류 목수 박씨는 며칠전 술에 취에 횡설수설 하다가 자기 아줌씨가 개울밑으로 밀어버려 온통 똥물을 뒤집어 쓰고도 부끄러운지 모르고 연속 주접을 떨다가 주태백이 홍가에게 수모를 당했다.
“나잇살이나 처먹어 가지고... 마누라 하나 휘어잡지두 못하고 개울바닥에 처박히는 주제에 뭘 잘났다구 노가리여, 노가리가.”
그러니 나이도 자기보다 아래고, 힘이 있어도 홍가보단 자기가 더 쎄고, 자기는 어쨌거나 마누라에 자식새끼 어엿이 데리고 가정도 꾸려가며 살지만 처자식 다 도망가 저 혼자 사는 주제에다 밤이고 낮이고 술에 아주 쩔어 헤롱대며 다니는 홍가놈이 뭔 자기에게 훈수 둘 자격이나 있냐 말이다.
“요런 쥐새끼 같은 눔이 뭐야? 마누라 자식새끼 다 도망쳐 뿌렸구 혼자 날홀애비루 사는 주제에...”
홍가에겐 그야말로 가장 치명적이요, 모욕적이요, 아픈 상처다.
“야 씨벌놈의 인간아, 네 여편네는 무도회관에 뺑뺑이 돌려 댕기문서 이눔 저놈 이새끼 저새끼헌티 들러붙어 콧소리 킹킹 대는 데도... 등신이 그런 것도 모르구.”
이판사판으로 나가더니 멱살들을 움켜쥐고 박씨가 홍씨 콧잔등을 후려갈기고, 코피가 나자 홍가는 눈이 돌아 머리로 박씨 얼굴을 들이받고... 그리곤 며칠 얼굴도 안 쳐다보고 말도 않던 둘은 어느날 보니 개울가에 다정하게 앉아서 아랫지방 가뭄 걱정을 하고 있다.
[민들레별곡 / 강진호]
* 제목이 없어서 '배운놈이 참아야지'라고 달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틈이 나서 '민들레별곡' 책을 두적이다 보니 똑같은 원고가
'칼로 물베기'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제목을 원제로 수정합니다. (2007.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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