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 21일 월악산 산행,
송계계곡을 산행 들머리로 삼으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보덕암에서 오르기 시작했다.
산행 초입부터 45° 이상의 급경사는 하봉까지 이어지며 녹녹치 않은 산행임을 일깨운다.
이렇게 험준한 산길은 한여름 무더위와 어우러져 체력을 빠르게 소진시킨다.
그러나 평소 산행을 동반하며 다진 체력과 팀워크는 이럴 때 뒷심을 발휘한다.
우리는 결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페이스를 유지하며 오른다.
개인이 아닌 우리가 일관된 속도로 함께 오를 수 있는 것은 체력을 바탕으로 하는 끈기와 인내의 정신이 있기에 가능하다.
끈기와 인내로 한발씩 내딛는 발걸음은 공간을 좁히고 시간을 단축시킨다.
그 결과 9시 50분에 산행을 시작한 우리가 중봉을 지나면서 8시40분에 출발한 팀을 추월하였다.
이것이 바로 끈기와 인내의 축지법(縮地法)이다.
축지법은 주문을 외우는 선계(仙界)의 도술이 아니다.
우리들 몸과 마음의 훈련된 정도에 비례하는 내공의 척도일 따름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허구적 주문에 의지하지 않고 끈기와 인내로 노력한다면 시공간을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150m의 높이에 주변 둘레가 4㎞에 이르는 거대한 바위덩어리,
중봉을 지나니 영봉은 사뭇 위압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마지막까지 쉽사리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월악을 사다리와 난간에 의지하여 힘겹게 오른다.
그렇게 힘들게 오른 영봉에서 바라보는 월악은 직선으로 구성된 수직의 세계로서 날카롭고 까칠한 마초의 모습 그 자체다.
곡선으로 구성된 수평의 세계로서 부드럽고 풍만한 덕유나 소백의 여성스러움과는 대비되는 맛이다.
다행히도 인공이지만 후천의 충주호가 월악의 선천적 수직공간에 수평의 부드러움을 가미하며 조화를 이룬다.
소설가 이병주는 이렇게 말했다.
"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굳이 삼국 패권 다툼의 싸움터였다거나 임지왜란 당시 탄금대의 격전지 등 역사를 들먹이지 않아도 된다.
달빛과 어우러진 월악의 산봉우리는 그 자체가 신화다.
그래서 산을 오르며 쏟아내는 숱한 사람들의 땀방울도 월악에서는 신화가 된다.
게다가 달빛보다 고운 동반자의 눈빛이 있는데 어찌 신화가 되지 않겠는가.
- 천 지 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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