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산을 찾는다. 건강을 위해서 또는 친목을 위해. 조용히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러 내지는 마음의 갈등을 치유하러 나서기도 한다. 어쨌든 산은 거기 있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 산을 찾는다. 저마다 다른 심정과 상이한 목표를 가지고.
나도 그랬다. 계양산에서는 채워지지 않는 산에 대한 갈증, 산에 푹 잠기고 싶은 열망, 머리와 마음을 비워 버리고 싶은 이런 것이 어우러져 아침에 홀로 나섰다.
집을 나설 때 두 가지만 예정했다. 출발지 독바위역과 목표 봉우리 백운대! 나머지는 발길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이기로 작정했다. 독바위역에서 출발하여 처음 맞닿은 봉우리가 족두리봉이다. 가볍게 오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능선을 따라 오르고 내리며 향로봉을 지나 사모바위에서 잠시 여장을 풀었다. 막걸리 한통이 꿀맛이다. 김밥으로 요기하며 땀을 식힌다. 주변을 보니 나홀로 산행족이 여럿 보인다. 그들도 자신만의 사연이 있겠지.
휴식을 마치고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여럿이 산행할 때는 초심자를 배려하여 지나쳤지만 오늘은 홀로이기에 부담없이 문수봉에 올랐다. 땀을 닦고서 주변을 둘러본 후 다시 산행 재개, 북한산성 주능선에 들어섰다.
대남문을 지나 대성문, 대동문, 용암문에 이르렀다. 만만치 않다. 온 몸이 끈적거린다. 어제 내린 비로 한낮의 산길은 열기와 습기가 어우러져 한증막과도 같다. 용암문에서 이정표를 보니 백운대까지 1.6㎞다.
마지막 남은 여정이다. 하지만 힘들다. 체력이 많이 소진되었다. 그러나 질긴 놈이 이긴다. 어떤 이는 묻는다. 산에 오르면서 무슨 소망을 빌었냐고? 나는 답했다. 소망은 우라질... 한걸음 한걸음이 힘들다. 쉬고 싶고 내려 가고 싶어 하는 나약한 자신과의 고투를 진행하는 마당에 소망이라니...
출발지에서 4시간 30여분만에 백운대에 올랐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그렇지만 헛헛하다. 이 더운 여름날에 아무 생각없이 기를 쓰고 올랐으니 머리는 텅 비었다. 모공을 통해 체내의 수분도 많이 비웠다. 그러나 마음은 비우지 못한 채 그저 토함산의 가사를 웅얼거린다.
“ ... 터져 부서질듯 미소짓는 님의 얼굴에도 천년의 풍파세월 담겼어라 ... 한발 두발 걸어서 올라라 맨발로 땀흘려 올라라 ... 세월이 흐른뒤 다시 찾는 님 하나 있어 천년 더한 이 가슴을 디고 서게 ... (송창식의 토함산)”
6시간의 산행을 마무리 하고 조촐하게 나만의 만찬을 즐긴다. 막걸리 한통에 김치면 충분하지만 자릿세는 내야 하기에 주인장에게 돼지껍데기도 주문했다. 그리고 산행에서 먹다 남은 김밥도 꺼내고. 마음은 비우지 못하고 생물적 본능에 의해 텅 빈 위장을 채운다.
장자는 말했다. "신발이 발에 꼭 맞으먼 발의 존재를 잊으며, 허리띠가 허리에 꼭 맞으면 허리의 존재를 잊는다"고. 그럼 내가 비우려 했던 것은 내게 꼭 맞은 신발이며 허리띠 같은 존재였나 아니면 나의 발 나의 허리였던가?
- 천 지 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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