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이 패망이다!
객쩍은 정치 얘기를 하다가 조씨하고 홍가하고 싸움이 붙었다.
원래는 삼풍백화점 무너져 내린 얘기를 하다가 민자당 놈들 하는 정치가 맨날 그 모양이라고 홍가가 쌍욕을 퍼붇자 조씨가 그러면 민주당 것들은 뭐 난게 있느냐고 핏대를 올리더니 종당에는 이놈 저놈 이자식 저새끼 삿대질에 멱살잡이까지 나갔다.
다들 뜯어 말리고 해서 억지 화해까지 했지만 둘 다 분이 안 풀리는 모양이다. 최목수가 술 한잔 사놓고 이리저리 얼르고 달래고서야 굳어있던 상판들이 비로소 풀렸다. 그리고는 자기들끼리 서로 한잔 더 사겠다고 한참을 우겨대더니 각자 소주 한병씩 더 사서 권커니 받거니 하다가는 다시 그놈의 객쩍은 정치얘기로 다시 돌아온다.
“내가 이래뵈두 20년전부텀 김영삼대통령을 좋아허구 따랐는데 말야··· 지난번 선거 때두 나는 확실히 김영삼을 찍었다 이거야. 근데 이게 뭐냐 이거야! 맨날 터지느니 대형사고구 수십명 수백명씩 죽어나가구 그런데두 어떤 새끼 하나 미안한 척두 안하구··· 씨벌 이게 무슨 나라꼴이 이 모냥이냐 이거야.”
“니가 무식해서 잘 모르니까 고러는데··· 고게 어째 와이쓰(잘난 척 잘하는 조씨는 이 동네서 유일하게 YS라고 한다) 잘못이냐? 모두가 다 박정희 때 전두환 노태우 때 맨긴건데 고때 잘못져서 무너져 내리는 거 같구 와이쓰 잘못이라구 하믄 고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거지.”
“무식한 걸루 말하면 니가 내보다 두배반은 더 무식하단 걸 동네가 다 알구 있는 사실이구··· 고렇다믄 박정희 때 맨긴 건 전두환이나 노태우 때 무너져야지 왜 하필 요때 왕창왕창 무너져 내린다냐?”
“고거야 년한이 고렇게 됐으니까루 그렇게 된거 아니냐. 그러니까 널 보구 무식하다고 안하냐.”
“삼풍백화점 진 게 5년밖에 안됐다구 허드라, 니는 뭐든 확실히두 모르면서 아는 척을 하는데 그래서 네 얘기를 안 믿는 거 아니냐.”
“시상에 어떤 빌어묵다 뒤질눔이··· 그래 아무리 공사를 날림으루 했다 쳐두 5년에 무너지는 건물이 어디 있다냐. 고게 어찌 와이쓰 잘못이란 말이냐. 고건 공사를 따놓고 능력두 읎스면서 남이야 죽건 말건 지 배때기나 채우려는 악덕업자놈 때문이구 고렇게 날림으루 져도 건물만 지어노라구 헌 건물주인놈 때문이니까루 죽일놈들은 바루 그놈들이라 이거다 알아듣겄냐?”
“니를 좋게 봐줄려구 내가 을마나 노심초사 하시는지 고 사실을 니가 알아줬으면 좋겠건만··· 어쩌면 고렇게 니는 하나만 알구 둘은 모르고 있냐. 고렇다면 이 나라의 정치지도자라 허는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국회의원이나 고런 사람덜은 도대체 뭐 할라구 그 자리에 앉아 있다냐? 박정희 때구 전두환 때구 은제 지었건 개판으로 지었건 고때는 고때구 지금 세월은 또 지금 세월이니 고때 아무리 잘못됐다구 해서 그냥 놔두구 갈 수가 있겄냐. 아무리 성질나구 분통이 터져두 뜯어 고칠건 고치구 치울건 치워놓구 가야 헌다 이거다. 코딱지만헌 건물에두 하자보수를 하는 건디 이만큼 큰나라에 왜 손볼일이 읎겄냐 이거다. 무너져 내리는 건물 놔두구 새건물만 지을려구 허니까루 괜히 엄한 사람만 뗴죽음을 당하는 것이다 알아듣겄냐?”
“니 말두 일리가 있는 말이다만··· 지금 세계적으루 미친눔 널뛰듯 숨가쁘게 달려가는 이 싯점에 있어서 은제 맨날 뒤치닥꺼리나 하고 앉찔러 있을 수 있겠냐. 니두 주태백이 니 동생 평생 뒤치닥꺼리 하다가 고모양 고꼴로 주저앉은 거 아니냐.”
“니가 인자 우리집안 얘기꺼지 꺼내면서 약을 올리는디··· 좋다! 니눔 야비하구 비겁한것은 동네가 다 알구있으니까루··· 무너진 다리 놔두구 워디루 간다냐? 다리가 있으야 건너지··· 하늘루 날아가냐? 비행기두 떨어졌는디 뭘 타구 가냐? 바다루 가? 배두 가라앉았는디? 땅밑으루? 땅두 꺼지구 지하철두 깨졌는디? 세계루 국제루 워치게 갈거여?”
“고렇다구 구한국 되돌아 보며 넋놓구 앉아있을 수는 읎다 이거라. 앞으루 전진하려면 얼마간의 희생과 고통은 있는 법이니라. 이자는 신한국으루 한단계 더 높여야 된다 이거다!”
“니눔이 하두 무식허구 몰상식혀서 내 이자 말을 끊겄다만··· 니가 해대는 고 말이 바루 건방진 데서 나온 말이니라. 좀 유식헌 말씸으루는 교만이라구 허는디 누가 널보구 신한국 부탁했냐? 알기쉽게 간단히 말한다믄 와이쓰헌티 누가 신한국 부탁했냐? 자고로 하늘의 뜻이고 역사말씀이고 몽땅 무시허구 지 생각대루 지 멋대루 나가는 것을 교만이라구 하느니라. 박정희 전두환이 노태우가 잘못했다면 바루 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정리하라구 내보낸 게 하늘의 뜻이거늘 하라는 건 안하구 엉뚱하게 딴짓을 벌이니 나라가 온통 무너져 내리는 게 아니냐? 자고로 성경말씸에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구 했다. 니눔이 내 말을 워치게 알아듣겄냐 걱정이 되지만서두 집안 치우지 않구 새각시 들이는 법 없느니라. 귓구멍이 있으믄 잘 헤아려 알아들어야 니가 사는 길이다. 알겠느냐?”
그날 우리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성질 안 내고 핏대 올리지 않고 늧은 밤까지 얘기를 나눴다. 마침 청소부 아저씨 아줌씨 스물너댓분이 다 구출됐다는 뉴스도 들은 터라 핑계김에 소주에 막걸리에 한 무데기 쌓아놓고 술잔치를 벌리긴 했지만.
[민들레별곡 / 강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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