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無 題 ....
뭐 대단히 힘든 일은 아니지만 봄이 되니 이거 저거 심어야하고 그럴려면 거름도 실어 날라야하고 땅도 파 뒤집어야하고 -- 그래저래 소똥 실어 나르고 땅을 파고 울타리도 보수하고 노상 바쁘게 지내다보니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오늘 후배와 똥차 트럭에 소똥을 한차 싣고 호박밭에 부리고 오는데 목장집 둘레에 빼꼭히 들어찬 개나리가 노랗게,그 수많은 꽃망울을 곧 터뜨릴려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깜짝 놀라 차에서 내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더러는 벌써 노란꽃을 활짝 피고 반갑게 웃고 있었다. 세상에! 어느 세월에 이놈의 겨울이 가누 -- 꽁꽁 언 땅에 곡괭이질을 해대며 그게 힘들어 투덜거린 것이 바로 엊그젠데 봄은 성큼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울타리 밑을 살펴보니 개나리만 피는 것이 아니라 냉이꽃도 벌써 하얗게 피어 실바람에 살랑살랑 몸을 흔들고 있었다. 그 옆을 보면 민들레도 이미 중간키 이상 자라 얼마 있으면 노란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세월을 속절없이 산다는 생각이 갑자기 가슴 한쪽을 휑하게 만들어 아래 들판쪽을 바라보니 아지랑이 아롱거리는 들판에는 목장집에서 심궈논 보리와 이름 모를 목초들이 진초록색으로 끝간데 없이 자라고 있었다.
차에 올라타고 다시 시동을 걸며 혼잣말로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살고 있으니 -- ” 중얼거리니 후배가
“형두 이제 나이를 먹는 거 같수. 그런 말을 허는 걸 보니 -- ”
차를 몰고 오다 유씨가 텃밭에서 하릴 없이 왔다갔다 하길래 차를 세웠다.
“큰성님은 봄이 됬는디 일은 안하구 왜 빈둥거리시요?” 인사 삼아 물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유씨는
“ -- 일년만에 팍 늙는다구 돌아가신 아부지께서 말씀 하실 때는 그게 무슨 말씀인가 했는데 내가 살아 보니까 꼭 그렇구만 -- 작년만 해도 일이 겁이 안나서 하루 종일 하우스며 논두렁 밭두렁에서 그저 일만 했었는데 글쎄 일년만에 한 십년은 파싹 늙어버린 거 같다니까 -- 이제는 겁부터 나구 일이 아주 지겨워지는 거야 -- ”
“그래도 벌려논 걸 어떻게 해요? 안 심을 수두 읎구 -- “
“글쎄말야 -- 마누라두 금년엔 뼛골 빠지게 일 안허겠대 -- 그래 하우스 앞 밭허구 저기 저 쪽 논은 다 남줬어. 자식놈들 다 키워놓구 시집장가 다 보냈으니 아무려면 우리 두식구 먹구살 요령 읎겠어. 그럭저럭 살아가는 거지 뭐.“
[민들레 별곡 / 강진호]
* 미완성 초고로 추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