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짝은 확 벗어 던지고
헌신짝은 확 벗어 던지고
엿장수 송씨는 오늘도 다 낡은 리어커를 끌고 탈탈거리며 집을 나선다. 이 추운 날씨에 가위를 흔들며 하루 온종일 돌아다녀봐야 만원정도 번다.
아파트경비 박씨형님과 장씨형님도 여섯시면 출근이다. 하루종일 좁은 공간에 쭈구리고 앉아 오고가는 사람들을 감시하는데 하루 품삯으로 치면 이만원이다. 당신들 말마따나 강아지에 세퍼드 노릇을 하고 그 돈 버느라 꼬리 흔들고 짖기까지 한단다.
참 드럽구 치사하다!
노가다잡부 동씨의 하루품삯은 삼만원이다. 일당제가 아니고 고용제이기 때문에 그렇단다. 야방까지 서면 삼십만원 추가다. 노가다잡부가 요령피우면서 하루해 때운다는 것은 옛날 말이다. 인력시장에서 하루 빌려다 쓰는 하루살이 일용잡부들은 가끔 요령도 피우고 농땡이도 부리는 모양이지만 월급제 잡부들은 사장 눈치보느라 쎼빠지게 일해야 한단다. 나도 판넬(반네루)나르는 노가다잡부 노릇 몇번 해봤지만 그게 노동중의 상노동인줄 그때 알았다.
일톤트럭 몰면서 야채장수하는 김씨는 무면허운전자다. 수십번 면허시험을 봤지만 자기 이름 석자도 제대로 못쓰는 김씨는 번번히 미역국이다. 애새끼들 마누라 먹여 살리느라 죽기살기로 트럭 몰고 나섰는데 한번 걸리면 한달 좆나게 번게(자기 말로) 다 날라간단다. 거기다 차에 마이크 달고 그 돼지 멱따는 소리로 배추하나에 얼마! 무우 두개에 얼마! 떠들고 다니면 고층아파트 싸모님들이 소음공해로 신고를 하는 바람에 잡혀가서 벌금 또 얼마! 이래 저래 저녁나절 집에 돌아올 때는 풀이 팍 죽어 들이키느니 쏘주다.
노점상 곽씨는 벌이는 곧잘 되지만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철거반 등쌀에 노상 울상이다. 씨벌 맘이 편해야 돈이구 뭐구 벌 맛이 나지 이건 원! 그러면서도 이웃 아파트 젊은 여편네들에게는 아첨에 아부에 밸까지 뺴준다. 그러니 동네 같은 또래들이 치사한 놈! 추접스런 놈! 돈이면 지 마누라도 팔아먹을 놈! 바가지로 욕만 먹는다. 그래도 곽씨는 다 처먹구 살아야 하는데 우쩔거여? 다 ~.
난 주태백이에 날건달이지만 -- 비록 -- 그래도 지도자다. 꼭두새벽부터 오밤중까지 집안에 손님이 끊일새가 없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남녀노소 불문하고 찾아 온다. 오는 손님을 어떻게 하나. 술먹는 사람에게는 술대접해야하고 밥 먹을 때 찾아오는 사람은 밥 같이 먹어야 하고 -- 시덥지 않은 얘기하더라도 들어줘야 한다. 돼지도 않는 소리를 한도 끝도 없이 늘어놀 때는신경질이 나서 집어치고 술이나 처먹어! 소리도 지른다. 그래도 안가고 계속 주접인 인간도 있다. 그걸 어떡하나 배운 놈이 참아야지. 한밤중에 찾아와 지 집처럼 물어뜯고 할퀴고 두드려 패고 순 쌍욕을 해가며 싸우는 부부는 뜯어 말리기도 해야 한다. 천만다행으로 돈 꿔달라는 사람 없는 것이 고맙고 고마울 뿐이다. 난 정말 가난하다.
요즘 나는 정말 목사노릇 하고프다. 노씨 전씨 사건 터지고부터 병신등신에 무지렁이 화상같은 우리동네 민중들의 얼굴색이 예전같지 않다.
사회과학 공부하고 운동권 물먹은 젊은 놈들이야 해대는 소리가 뻔할 뻔자지만 우리동네 아저씨 아줌씨들이 정말 힘을 잃은 모습은 안쓰러워 볼 수가 없다. 그게 뭐냐하면 -- 새벽에 일어나 동네 어귀 -- 똥개울 굴포천 뚝방에 서 있어보면 동네 전체가 어떤 기운-- 활기 -- 이 싹 스러져버린 느낌이 온몸에 와닿는다. 비록 가난하고 못배우고 빽없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지만 우리동네는 새벽부터 넘치는 힘이 있었었다.
노가다현장에 출근하러 썩썩 걸어가는 사람들, 노점상에 팔 물건 사려고 나가는 부부들, 벌써부터 마이크를 왱왱거리며 마이크테스트를 하는 사람들, 벌써 쏘주에 취해 비칠대면서 시비를 벌이고 또 한쪽에선 뜯어말리는 소리들, 아이들에게 죽일 놈 살릴 놈 해대면서 빨리 일어나라고 소리치는 소리. 개 짖는 소리. 그 짖는 개를 몽둥이를 들고 쫒아가고 쫒기는 개가 깨갱대는 소리들 -- 어떤 놈과 눈이 맞아 어제 밤에 안 들어 왔느냐고 마누라 두드려패는 남정네와 순 음담패설로 맞서다 네 좆 갖고는 못살겠다고 끝을 내면서 집을 나가는 여인네와 등신처럼 그런 여편네를 쫒아가 내가 잘못했으니 다시 살아보자고 사정하는 남자 -- 아아 요즘 기운이 쏙 빠진 우리동네 모습을 보면 옛날 그 지긋지긋하게 난장판같은 그런 것이 사람 살아있는 진짜 모습이었는데. 이상하게 조용하다. 그것을 아마 정숙함이라하지 않고 스산함이라 하는 게 맞을 거다.
을씨년하다. 술 한잔들만 해도 팩 돌아서 말없이 집으로 돌아들 간다. 여편네들은 그 천박하고 야한 화장도 안하고 얼굴도 부시시 머리도 헝클어진채로 말없이 오고 간다.이거야 -- 참, 이게 뭐지? 이 판에다 대고 사회과학적 잡소리를 주절대고 콩까먹는 소리로 뭘 어쩌구 저쩌구 할 수도 없다. 그런 걸로 힘을 되찾게 할 그런 계제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 본질적으로 저이들에게 역동적인 힘을 되찾게 할 -- 그 무엇이 필요하다. 그래 요즘 나는 때 아닌 기도를 열심히 하게 되고 잊고 있었던 하나님도 자주 찾게 되었다. 그리고 엿장수 송씨와 마주앉아 술 한잔을 나누게 되었다. 내가 물었다.
“형님 요즘 왜 그렇게 힘을 잃었어?”
이빨이 몽땅 빠진 송씨가 안주를 우물거리며 딴전을 하다가
“ -- 우리네겉은 인상(생)은 말야 -- 뭘 믿구 사는 구석이 있어야 살 심(힘)이 있는게야. 그래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나가구 어떤 사람들은 절에두 나가는게지. 하나님두 부처님두 안 믿으면 -- 이 세상에 살아있는 지도자를 믿으며 사는거지. 대통령이구 국회의원이구 뭐 그런 사람들이 우리네가 의지허구 살 데라구 믿구 사는게야. 그런 사람들 얼굴한번 본적두 읎구 손목한번 잡은적두 읎지만 그래두 그이들이 우리를 지켜주구 우리들의 울타리라구 맘을 맡기구 사는거지. 근데 말야 -- 그런 그이들이 저렇게 했다는게 -- 이게 도무지 뭐가 뭔지 몰르겄어. 아 강씨 한번 생각해봐. 만약 강씨가 믿는 하나님이 전씨와 노씨겉이 그랬다는게 밝혀지면 일생동안 믿구 의지하며 살아왔는데 그런 하나님이 그랬다면 강씨 맘이 어떻겄어? 그러니 말여 -- 국민의 지도자라면 믿게끔 해줘야 우리겉은 사람들이 심이 안든다구. 대통령뿐만 아니구 어떤 지도자구간에 그이들을 따르구 의지하구 맽기구 사는건데 그런 지도자들이 자기 생각만허구 지 좋은대로만 처신 한다믄 밑에 사람들은 뭘 어떡해야 될지. 뭘 바라보구 살아야할지를 몰라 기운이 쫙 빠져버려. 전씨 노씨가 돈을 을마나 먹었다는그런거가 나쁜게 아니라 숱한 사람들의 살 힘을 뺐었다는게 더 나쁜거야 -- ”
나는 술이 취해서가 아니라 -- 집에 돌아와 방문을 걸어 잠그고 대성통곡을 하며 울었다.
나는 지도자다. 그럼 나는 나를 그나마 의지하고 따르는 내 가족 내 후배 내 이웃들에게 어떤 식으로 해왔는가. 그저 날이면 날마다 술에 쩔어 헛소리나 지껄이고 지 잘났다고 교만이나 떨고 -- 대책 없는 노가리나 늘어놓고 -- 아아 나야 말로 정말 죽일 놈중에 제일 먼저 죽일 놈이 아닌가.
발버둥치며 소리쳐 울다 -- 지쳐 문득 오른쪽 벽을 보니 -- 벌써 금년 한해도 다 가고 새해가 시작된다. 좋다! 내년 밝아오는 새해에는 양단간에 결판을 내보자!
[민들레별곡 / 강진호]
* '민들레별곡' 단행본에 수록되지 않은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