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민들레별곡

보신탕 파티

천 지 인 2007. 3. 13. 09:30
 

 보신탕 파티


  지역의 이런저런 단체에서 일하는 후배들이 보신탕 파티를 하자고 조르기에 우리는 8월15일 광복절날 추렴을 해 한바탕 파티를 열기로 했다. 일부는 범민족대회에 참석하고 일부는 공장에 특근을 한다고 나가고 또 일부는 모처럼 애인과 데이트를 한다고 해서 오후 늦게 우리의 원두막에서 왕창 모이기로 했다.

  보신탕이니 매운탕이니 도리탕이니 음식장만 하는 집만 번거롭고 껀껀히 손해만 보는 것을 노상 알면서도 아직은 젊은 부부들이고 반쯤은 총각들이니 결국은 늙은 선배네서 당연히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불볕더위 한나절에 떡집 강사장네 다 낡은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시장을 서너번쯤 오가면서 꺳잎에 대파에 미나리에 들깨 등을 사나르고 계양산 불법도살장(?)에 달려가 개 반짝을 사왔다. 그걸 닦고 자르고 손질해 역시 강사장네 커다란 석유버너에 불지펴놓고 끓이기 시작했다.

  아저씨 아줌씨들이 뙤약볕 아래서도 마땅히 앉을 자리조차 없어 보트피플 유랑민들처럼 몰켜 다니기에 원래 있던 나무를 뚝딱거려 큼지막하게 원두막을 하나 지었다. 4년밖에 안된 오동나무가 금년에 벌컥 자라 어찌나 큰 그늘을 만들어 주는지 원두막 한가운데 그놈을 살려놓고 순 나무송판으로 원두막을 지으니 호화주택에 억대빌라는 아닐지라도 도심 한복판에 지붕을 완전히 뒤덮은 오동나무 잎새며 정다운 나무송판의 은근함이며 강화도 화문석 깔아놓은 바닥의 멋이며··· 그게 어디 아무나 맛볼 정취냐 말이다.

  원두막이라는 말도 내가 만들어 부친 것이 아니라 오가는 후배들이 딱 맞는 말이라며 부쳐준 것이니 그 이름이나 모양이나··· 그 어떤 재벌회장네 정원이 안 부럽고 호화사치판 무슨무슨 가든이 가소롭다.

  어쨌거나 그 원두막 앞 우리 사는 집 그 유명한 60년대 화장실 앞에서 천하일미 보신탕요리를 해대니 오가는 늙은이 젊은이 남자 여자 가릴 거 없이 다들 넘석거리며 어떻게 한점 뻈어 먹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들 있다.

  원래 여기처럼 시끄럽고 이웃참견 많은 동네는 음식 한그릇 식구들끼리 오붓하게 먹으려 해도 이웃간 눈치를 봐야 하고 필요 이상의 신경까지 써야 한다. 나남죽 없이 남의 부엌살림 뻔히 들여다 보고 있고 어디 누구네 집에 손님이 어떻게 다녀갔고 누구네 생일을 뭐뭐해서 어떻게 치뤘고··· 도대체가 숨겨볼 요량도 없는데 까딱 잘못했다가는 음식 한그릇에 치사한 놈 소리 듣기 십상이다.

  그러니 내일 모레 17일날 말복맞이 미리 한다고 대로옆 마당 한가운데서 그 맛나고 몸에 좋고 비싸디 비싼 보신탕을 절절 끓이고 있으니 나부터라도 왜 마른침을 안 삼키겠느냐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오늘만은 안된다. 치사한 놈에 지혼자 처먹다 뒤질놈 소릴 듣고 들창코 돼지코를 아무리 벌렁거려도 오늘만큼은 어림도 없다. 그만한 사정 그정도 사연이 있다 그 말이다.

  솔직히 말해 나야 보신탕 못먹어 껄떡거리고 몸살 앓을 만큼 그 음식 즐기는 사람 ‘절대’ 아니다. 그저 남들이 몸에 좋고 소화가 잘된다기에 그럭저럭 한 그릇정도 비우는 보통 애호가일 뿐이다. 그렇지만 오늘 찾아 오는 후배 떨거지놈들은 보신탕이라면 정말 무서운 인간들이다. 정말이다! 보신탕의 보자만 들어도 눈의 빛깔이 달라지고 보신탕집에 들어 가면 한점이라도 더 처먹으려고 쌍심지를 켜고 덤벼드는 비신사적이고 치사하고 위아래도 모르고 (진짜 자기 마누라나 애인들 선배들도 배려 안한다) 대화도 안하고 오직 이를 악물고 먹는 데만 혼신의 노력을 다 쏟는 파렴치한 인간들이다.

  그런 위인들에게 이웃간에 나눠먹는 정 어쩌구 해가면서 몇그릇 덜어줬다고 해봐라! 아이고··· 차라리 내가 나중에라도 돈 생기면 몇근 사다가 따로 대접하는 게 낫지, 두고두고 무슨 소릴 들으려고 그런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겠냐 말이다.

  그래 김씨가 다가와 은근슬쩍 속보이는 아첨을 떨고 조씨가 다가와 쓸데없이 버너 불길을 올려주고 김가가 다가와 느닷없이 내 아내같은 여자가 요새 어디 있겠냐고 칭찬을 줄줄이 늘어놨어도 난 눈도 꿈쩍 안하고 요지부동으로 버텨냈다.

  아아! 그리고 드디어 시간은 됐고 보신탕은 아내와 나의 수고와 땀으로 기막히게 맛있게 완성되었다. 후배들은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고 아내는 양념이며 술이며 열심히 날랐다.

  그런데 말이다··· 세상에 인간들이 어쩌면 그럴 수가 있느냐 말이다. 자기들 보다 아주 새까만 후배들과 또 그들의 아내나 애인들이(새파랗게 젊은 것들이니 자기 딸같은 아이들이건만) 오랫만에 둘러앉아 친목도 도모하고 영양보충도 좀 한다고 그렇게들 모여 있는데··· 글쎄 우리들 음식 먹는 원두막 바로 앞 대로변에 평상 하나를 끌어다 놓고 거지뗴처럼 쪼르르 앉아서는 목을 쭉 빼고 침을 질질 흘리며 뚫어지게 쳐다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제기랄! 그렇게들 앉아 체면도 자존심도 없이 그렇게들 보고 있으니 아무리 보신탕에 걸거리가 들고 죽기살기로 먹어치우는 우리들이라 하지만··· 그게 목구멍에 쉽게 넘어가겠느냐 말이다. 나는 얼굴에 가죽 쓸 때는 기왕 쓰는 거 소가죽 보다 더 질기게 쓰면서 안면 싹 바꾸는 배짱이라도 있지만 아내는 이게 영 아니올시다라 판단했는지 괜히 좌불안석이고 이쪽저쪽 눈치 보느라 음식도 제대로 못먹고 있다.

  그러자 후배들이 더 불안했는지 서너그릇 갖다 드리세요! 했다. 아내는 아주 신이 나서 생전 꺼내 쓰지도 않을 것처럼 모셔놨던 큰그릇까지 꺼내와 퍼담기 시작한다. 후배놈들 안색을 보니 아까워 죽겠다는 기색들이 역력하다. 이래저래 속이 상해서 원두막 문을(유리창이 다 깨져서 문살만 몇개 앙상하게 남아 있으니 닫나 마나다) 쾅 닫아 걸어 버렸다. 그래봤자 밖에서 훤히 보이기는 마찬가지지만.

  아내가 퍼다준 보신탕을 희희낙낙 쳐다 보던 밖의 패거리들은 한참 쑤군거리더니 아마 술값추렴이라도 하는지 몇푼씩 걷고 있다. 조씨가 일어나 가게로 가는 모양이다. 비닐 봉지에 이것저것 사들고 돌아온 조씨가 반은 자기들쪽에 놓고 나머지를 들고 털래털래 이쪽으로 와 문을 삐끔히 연다.

  “옛말에두 원래 음식은 나눠먹어야 복이 넘친다구 했는디··· 이렇게 강씨 후배님덜이 모처럼 모여 친목을 도모하는 이 싯점에서 동네 선배들과 음식을 나눠먹겠다는 그 생각들이 고맙구 고마워서 에또 우리덜이···”

  속 뻔히 들여다보이는 유세를 한바탕 늘어놀 낌새라 일절만 하라고 딱 짤라놓고 뭐야? 뭐 가져왔어? 물으니까 소주 너덧병을 주섬주섬 꺼내 놓는다.

  바깥패들이나 안패들이나 술 몇배 돌아가니 큰소리에 헛소리가 난무하고 그러다 보니 젊은 놈들은 으례 고스톱판으로 돌아가고 바깥 늙은 패들은 육자배기에 목포의 눈물 타령으로 빠져 버린다. 내 이 웬수 겉은 인간들하고 인연을 언제 끊어 버리나··· 비싼 돈에 피땀 흘려 뭘 좀 해먹이면 화투판에 육자배기판 벌려놔 동네방네 강씨집은 아예 먹자판에 놀자판 집이라더라··· 온동네를 소란스럽게 하니 책임을 물어야한다··· 말만 듣고 비난만 받으니 내 팔자가 기구하고 기구하기만 하다. 소변이 보고 싶어 원두막 바로 앞 60년대식 화장실로 들어서 바지고춤을 내리는데 조씨가 비칠거리며 들어 선다.

  “워뗘? 보신탕 먹으니께 그게 스는 거여? 오줌발두 다른 날 하구는 다른 거 같은디··· ”

  “음식두 맘편하고 기분 좋게 먹어야 살루 가구 정력두 오르는 거지 염병화상들 거지뗴처럼 지켜보구 앉찔러 있는데 뭔 맘이 편해서 몸보신이 되겄냐? 정력은커녕 왕창 체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개고기 먹구 체한다는 사람 츰봤네! 근데 강씨, 고거는 누가 잡쉈는가?”

  “······?”

  “시치미떼긴··· 개부랄말여!”

  “한마리두 아니구 반마리 사왔는데 어떤 개장사가 그걸 주겠어?”

  “아따 그러지말구 감춰놨으믄 이분지일루 딱 짤러 나눠먹자 이거여!”

  말같지도 않는 소리를 주절거리기에 상대도 안해줬드니 조씨는 낄낄대면서

  “내는 그놈의 보신탕만 먹은 날이면 아랫도리가 뻣뻣하구 영 요상스러워진다 그건디··· 오늘은 쪼께 양이 안차서··· 그랴서 말인디 쪼끔 안 남었소?”

  “개 반짝 사와서 그만큼 처먹었으면 됐지 아주 배터지게 처먹을랴면 칠순이네 보신탕집에 가서 사처먹지 그래?”

  “아니··· 그게 아니구··· 강씨두 내 나이가 되보소··· 불알이 서다 말면 그보다 챙피한 것은 읎는 것인디···”

  “그래 보신탕 실컷 안 처먹으면 부랄이 스다 축 처지시나?”

  “··· 믿지 않겄지만 고게 사실이라니께”

  “별난 부랄두 다 있네···”

  글쎄 화장실 안에서 그렇게 주착을 부리고들 있는데 대변보는 똥깐에서 음음해대며 사람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기척을 해대더니 조금 있으니까 아이고!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후배 마누라씨가 얼굴을 빨갛게 해가지고는 민망스러워하며 도망가지 뭐냐?

  이런 망신스런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어쨌거나 그날 우리는 밤늧게까지 기분좋게들 놀았는데 그건 아마도 남은 보신탕을 재차 끓여 바깥 노인패들하고 한껏 어울려 나눠 먹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배터지게 실컷 먹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넉넉히 먹은 기분들이었고 나나 후배들이나 속이 참 편하다고 한마디씩 한 것으로 봐 좀 적은 음식도 나눠먹으면 오병이어(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5천명이 먹고도 열두광주리 그득 남았다는 성서의 기적)의 축복이 일어나는 것이고 그게 몸에 살도 되고 피도 되고 정력도 되는 이치일 것이다.

  그날은 참! 광복절이었다!              


[민들레별곡 / 강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