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난리
물 난 리
초저녁부터 천둥 번개가 난무하고 벼락까지 정신없이 쳐대더니 이내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꼭 물동이로 내리 쏟아 붓듯이 무섭게 쏟아진다. 방송에서 일러주는 일기예보는 폭우주의보. 그리고 새벽 두시가 됐다. 비는 새벽 두시가 됐는데도 그렇게 쉴 새 없이 쏟아졌다.
방에서 고개를 내밀어 부엌을 보니 부엌에 물이 차기 시작한다. 안에서는 하수도를 통해 들어온 물이 스멀스멀 밀려 들어오고 바깥에서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물이 부엌 문턱을 넘쳐 들어와 하수도물과 합류하면서 단숨에 부엌 가득 넘실거린다.
비상이다! 서둘러 아이들을 깨우고 아내에게 이불이며 책이며 가전제품들을 높은 곳으로 옮기라고 소리쳤다. 잠에서 덜 깬 아이들은 상황을 파악 못하고 그냥 멍하니 앉아만 있다. 난 전기를 차단하면서 정신들 차리라고 소리쳤다. 직장따라 서울에 올라가 있던 큰 아들이 마침 어제 내려온 것이 큰 힘이 되었다. 부엌문턱에 두꺼운 베니어판을 대고 못질을 해 대강 물이 넘쳐오는 것을 막고 웃통을 다 벗어 제치고 양동이로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힘이 장사인 아들놈이 근 한시간을 쉬지 않고 퍼내고 연달아 내가 한시간 정도 쉴 새 없이 퍼냈지만 무섭게 밀려드는 물의 힘을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다. 빗물은 방문턱까지 찰랑거리며 금방이라도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올 기세다. 나는 망연자실, 쉼없이 쏟아지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관둬라! 이제 더 어쩔 수 없다.”
아들의 등을 두드려 주고는 개울가로 나갔다. 꼭두새벽인데도 통장과 반장 아랫동네 송씨 박씨 등 여럿이 이미 나와 있었다. 대책없이 소리 지르고 이리저리 뛰어다니지만 뭐 하나 물길 막을 요량들은 하나도 없다. 그저 답답하고 안타까우니까 소릴 쳐대고 우왕좌왕하는 것뿐이다.
굴포천 똥개울을 집어삼킬듯 흐르는 물은 구청 짓는 안병원 앞 다리쪽에서 막히면서 거슬러 올라와 동네를 온통 물바다로 만들고 있었다. 부평 도심가운데서 거의 가장 낮은 이 지대는 상습 수해지역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낮은 땅에 있는 우리 집은 물난리를 제일 먼저 겪곤했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집의 침수상황을 보아가며 짐을 옮길 것인지 피난을 가야 할 것인지 어림한다.
아내와 아이들도 우산을 받쳐 쓰고 개울가로 나왔다. 그들의 근심걱정 가득한 얼굴을 볼 때마다 울화가 치민다.
“빌어먹다 뒤질 놈의··· 순 나쁜 새끼들 같으니라구··· ”
송씨가 내 욕설을 듣고는 달려 왔다.
“왜 그랴? 누구헌티 욕허는 거여?”
“누구긴 누구야? 동사무소구 구청이구 시에서구 코빼기두 안비치잖어··· 이건 일이년두 아니구 벌써 십년두 훨씬 넘게 매해 이모냥인데 도대체 이 인간들은 이걸 근본적으루 해결하겠다는 계획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그딴 얘기 워디 한두번 했남. 해마다 물난리 겪으면서 주야장창 그렇게 떠들어 댔지만 그것들이 언제 우리 얘기 귓잔등으루라두 들은 줄 알어? 다 소용없다니께···”
뒷짐을 지고와 옆에 서 있던 박씨가 발끈한다.
“이 인간은 뭘 어쨌다구 말만 꺼내면 김빼구 맥풀리게 허는 소리만 먼저 늘어논다니께. 야 이 등신아, 울지 않는 아이 워디 젖주는 년 있다더냐? 동사무소구 구청이구 시청이구 몰려가서 떠들구 싸워야 그놈덜이 뭘 해줘두 해주지 가만 앉아서 신세타령에 김세는 소리만 늘어노면 하늘에서 내리던 비를 저절로 그치게 해준다냐?”
“그렇게 잘났으면 네가 통반장 다 맡아서 한번 해결해봐!”
“요런 순 쌍놈의 호로 새끼는 어른이 뭔 말씸을 허시면 껀껀히 장난으루 몰아간다니께. 나가 은제 통반장 허겠다구 입이라두 뻥긋했어?”
“누가 그렇다구했냐? 니 얘기가 옳기는 해두 우리가 일이년 그놈덜허구 싸웠냐? 심없구 무식헌 우리덜이 아무리 몰려가 떠들어두 들어처먹질 않는걸 워쩌겠다는 거냐 이 말이다. 아니헐말루 여그 청와대 말단 비서락두 살구 있던가, 장관허는 놈 사돈에 팔촌이락두 있던가, 아니면 국회의원은 말구 똑똑헌 시의원이나 구의원이락두 버티구 있다믄 저것덜이 우리덜을 요렇게 흑싸리 껍질만도 못허게 취급해대겄냐 이말이다.”
“시상에 오죽 못난놈이 지 헐노릇 해보지두 않구 썩은 빽줄 타령만 하구 있다냐. 야 이눔아 니나 내나 이 꼬라지루 한시상 살은 인상인디 죽는기 겁시 나겄냐 징역사는기 겁이 나겄냐··· 확 뒤집어 버리구 고쳐줄 거여 안 고쳐줄 거여 멱아지 한번 움켜 쥐구 흔들어놔야 우리 아새끼덜이락두 편한 시상 살 거 아니냐?”
그러는 중에 다리께쪽에서 못보던 위인들 몇몇이 서성거리는게 보였다. 통장이 그쪽으로 다가가 인사를 나누고 어쩌고 하는 것을 보니 동사무소나 구청에서 나온 위인들이 분명해 보였다. 믿을 수 있는 정보통인 앞집 손씨아줌씨가 동사무소와 구청에서 나온 사람들이 분명하다고 속삭이기에 몰려가 한바탕 해주자고 꼬드겼더니 그렇게 청산유수로 큰소리치던 박씨가 꽁무니를 뺀다.
“에이 내는 말주변두 읎구··· 똥깐이 넘을 틴디··· 빨리 퍼내야겠쓰니···”
빌어먹을 인간이 꼬리를 내리고는 뒤도 안돌아 보고 자기집 쪽으로 내뺀다. 그 뒤에다 대고 송씨가 드런 눔, 아가리만 놀리는 눔, 좆심두 읎는 눔··· 벼라별 욕을 다 퍼붓고 나서 송씨와 나는 동직원들쪽으로 갔다.
앞뒤좌우 순서도 두서도 없이 떠들어대는 송씨는 청와대비서··· 장관의 사돈에 팔촌, 시의원 구의원··· 아까 박씨한테 떠들어댔던 구절들을 한바탕 되읊고는 뒤로 빠졌다.
내 차례다. 나는 불문곡직 그들을 반강제로 잡아끌고 우리집 부엌의 꼬락서니를 보여 주었다. 허벅지까지 빠져 가며 안마당을 거쳐 부엌을 들여다본 그들이 영 맛이 간 표정으로 이 궁지를 빠져나갈 궁리에만 급급한 눈치다.
“나도 이 나라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세금 한푼 밀리지 않고 다 내고 산다 이거요. 주민세에 텔레비젼 시청료에 교육세에···”
박씨가 끼어들었다.
“담배도 여그서만 사피는디··· 세금 늘어 나라구. 쏘주두 여그서만 마시구··· 우리 아들은 시(휘)발류두 여그서만 꼭꼭 사쓰구···”
“의료보험조합비에 전기세에 자동차세에 과태료 벌칙금에 한푼도 밀리지 않구 꼬박꼬박 내구 있다 이거요. 국민의 의무는 꼬박꼬박 하라면서 요것저것 이리저리 다 뜯어 처먹구는 그래 이 국가가 우리들을 위해서는 도대체 뭘 해줬소?“
박씨가 또 끼어든다.
“낸 해병대 갔다 왔구 하사루 제대했다 이거여! 국방의 의무두 다 해버렸다니께···”
그들중의 하나가 싸가지 없이 내뱉는다.
“우리들이 무슨 권한이 있나요? 다 높은데서 하는 것이지···”
송씨가 버럭 소릴 지른다.
“야 호로잡놈아 그럼 높은 놈 새끼덜이 우리가 찾아가면 아이구 어서오십쇼 허구 맞아나 주겄냐? 느그덜이 주민덜을 진정으루 생각하구 일하겠다믄 네가 아무리 말단이구 네 목이 열두개 달아난다 해두 윗놈덜헌티 헐 말은 딱 부러지게 허야 될 것이며 그것을 사명감으루 가지구 공무원 노릇두 해야 될 것 아니냐. 한말루 좆빨겠다구 공무원 됐다냐? 허구헌날 문민정부네 지방자치네 좆나발이나 불면서··· 씨벌 문민이 밥 멕여주구 자치가 물난리 막아 준다더냐? 잡소리에 헛소리 집어치구 내두 이번 구청장 당선된 위인 도장 찍어줬으니께 회전의자에 앉아 똥싸는 소리나 쑤얼거리지 말구 직접 여그에 나와 이 꼬라지를 직접 한번 보라구 하라 그말이여. 워쩔 것이냐, 한번 목아지 잡아 데리구 올 것이여 어쩔 것이여?”
눈부라리고 곧 처죽일 듯이 설치는 송씨의 위세에 눌려 공무원 네명은 꼭 모시구 오겄으니까··· 이만··· 그리곤 줄행랑을 처버렸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거늘 잘했건 못했건 한바탕 싸우고 나자 비가 뚝 그쳤다. 마당 가득 부엌 가득 찰랑거리던 빗물이 순식간에 빠져나갔고 날은 어느새 훤히 밝아 오고 있었다. 이번 물난리는 이쯤에서 끝났으면 참 좋겠다.
그나 저나 이번엔 정말 사생결단하고 싸우든지 해야지 이사람들, 이게 참 뭐냐 말이다.
[민들레별곡 / 강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