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질 급한 놈은 빨리 죽는다네
성질 급한 놈은 빨리 죽는다네
우리동네 옆에 근린공원이 있다.
도심 복판에 있는 공원치고는 꽤 크다. 굴포천 똥개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종합병원인 안병원이 나오고 그 옆에 부평경찰서가 있고 바로 안병원 길 건너 이번 분구(分區)된 부평구청 신청사를 짓고 있다. 바로 그 옆에 여성회관이 있고 그런 관공서 건물군들 뒤켠에 널찍한 공원이 있다. 한쪽은 잔디와 야트막한 나무들을 심어놔 요즘 같은 여름날 저녁이면 가족들끼리 모여앉아 삼겹살도 구워먹고 곱창도 굽고 쏘주 한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바로 그 옆은 큰 운동장이 있어 공도 차고 조깅도하고 젊은 주부들이 이른 새벽에 에어로빅 훈련장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시민이니 국민이니 그런 말에 원초적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내가 시민공원인 근린공원을 자주 갈 일은 없다. 그런데도 이틀에 한번꼴로 필히 다녀와야 되는데 그건 그 공원 옆에 지하수 펌프장이 있기 때문이다. 지하수 펌프장은 좀 거창한 표현이고 그저 수도꼭지 대여섯개 달린 지하수물 떠오는 곳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생명이니 환경이니에 별나게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정말 수돗물은 죽어도 못먹겠다. 생명이란 게 단지 목숨 붙어있는 상태가 아닌데 그놈의 독약과 같은 소독약을 그렇게 쏟아붓듯이 부어 놓고 그걸 사람이 마시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도무지 견딜 수가 없다. 내 아무것도 몰랐을 때는 수돗물이라도 끓여 먹으면 그냥 괜찮은줄 알았었다.
그러다 이런저런 공부를 해나가면서 그놈의 끓인 물을 꽃에도 줘 보고 새에게도 줘 보고··· 그랬더니 글쎄 그 생명들이 몽땅 죽어 버리지 않는가! 생명이 정신이니 영성이니 몸뚱아리니 몽땅 일컬어 하나됨을 이루는 우주적인 것이라면 - 우주라고들 하지 않는가! - 생명은 생명을 맞이함으로서만 그 생명을 유지해 나가고 더욱 성장시켜 나갈 것이 아닌가. 그런데 생명의 물을 독약같은 약을 퍼넣어 죽이고 끓여 죽여 그 물을 마신다는 것이 나는 견딜 수가 없다.
어쨌거나 오늘도 나는 옆가게 강사장 다 낡은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근린공원에 갔다. 며칠 비 쏟아지고 난 다음이라 그런지 물길러 온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대개 육십줄 넘어 도시생활에서는 딱이 할 일 없는 아주머니들, 그보다 한 십년 더 나이 들었을 아저씨들, 그리고 남편 아이들 직장 학교 보내고 한갓지고 무료하게 시간 죽이고 있을 법한 삼사십대의 부녀자들··· 그중엔 나같은 백수건달들도 몇명 끼어 있다.
노상 걱정도 팔자 끼고 사는 나에게 근린공원의 물긷기는 여간 고통스러운게 아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수질이 썩 좋지 않아 그거 마시고 무슨 병 들까봐 그러는 것도 아니다. 좋은 물 마시고 건강하게 살자는 좋은 맘으로 나온 사람들이 물긷는 것을 보면 이건 차라리 악다귀들 모여 싸우는 전쟁터다.
눈에 살기와 독기를 품고 어떻게 하면 먼저 길을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많이 길어가야지, 공중도덕이고 나발이고 새치기를 하고 남이 물통에 물을 다 담지도 않았는데 벌써 밀치고 들어와 남의 물통을 밀어 놓고 제 물통을 들이 밀고···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를 더욱 분통 터지게 만들고 절망하게 만드는 것은 젊은 아낙네들의 그 이악스럽고 야비한 이기심이다. 사람이 어쩌면 그럴 수가 있을까. 아마 큰말 한말짜리(대두 한말 보통 두말) 커다란 물통을 서너개 갖고 와서는 다섯개밖에 되지도 않는 수도꼭지에 자기 물통을 죽 늘어놓고 눈에 불을 켜고 물을 받는다. 끝이 안 보이게 사람들이 늘어 서 있는데도 말이다. 자기 많이 떠 가고 싶으면 남도 마찬가지요, 자기가 자주 오기 싫어 그렇게 약은 체한다면 남 또한 자주 길러 오기 귀찮다는 것은 전혀 헤아리지도 않는다.
수도꼭지 다섯개 뒤로 사람들이 다섯줄로 늘어서 있는데 내 옆줄에 있는 여편네 하나가 냉큼 내 줄로 건너오더니 내 앞에 선다.
“여보 아줌씨 왜 그래요?”
그렇잖아도 속상하는 판에 내 음성이 고울리가 없다. 그 여편네가 쳐다보지도 않고 싸가지 없이 되받는다.
“내가 먼저 왔잖아요!”
그래 나도 영 싸가지 없이 나갈 수밖에.
“전철표 사봤어요 아줌마? 저쪽에서 표를 사려고 줄 서 있다가 이쪽 줄이 좀 빠를 것 같다고 그렇게 냉큼 새치기를 한다면 이쪽 줄에 서 있는 사람들이 가만 있겠어요?”
그러니까 옆구리가 결리는지 잠자코 있다. 심술난 김에 왕심술 부리자고 그 여편네를 원래 서서 기다리고 있던 줄에 밀어부쳐 버렸다. 힘으로 하는데 지가 나를 어떻게 당할 수 있겠는가. 그래 그렇게 밀려난 그 여편네는 원래 섰던 자기줄의 사람들까지도 왜 왔다갔다 오락가락 하느냐, 여기가 당신 맘대로 그렇게 해도 되는 데냐, 젊은 여자가 싸가지가 없다··· 된통 잔소리에 핍박을 당하고 기가 죽어 뒷줄에 섰다. 막상 그렇게 망신을 주고 나니 내 마음은 뭐 그리 좋겠는가.
어쨌거나 그렇게 그렇게 해서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난 유유히 물병의 마개를 열고 물통을 수도꼭지 아래 보무도 당당히 갖다 놨다. 그런데 어떤 할배씨가 냉큼 남 물긷는 물통 위에다 종이컵을 턱 갖다 대더니 마실 물을 받는다. 그런데 이 할배씨가 종이컵 하나 가득 물이 찼는데도 계속 컵을 대고 있는게 아닌가. 그러니 할배씨의 꺠끗지 못한 손을 타고 흘러내린 물이 내 물통 속으로 뚝뚝 떨어진다.
이런 젠장! 난 또 역정이 나기 시작했고 기어히 또 한마디 하고 말았다.
“영감님 그러면 이 물을 어떻게 먹어요? 조심스럽게 받으셔서 제 물통에 떨어지지 않게 해주셔야지···”
그래도 이 영감은 물컵을 그냥 수도꼭지 아래 계속 대고 있다. 난 화가 났다.
“아니 지금 뭐 하시는 거에요? 술 취하셨어요?!”
그랬더니 이 할배씨가 물컵을 든 채로 일장연설을 하기 시작한다.
“ ··· 친애하는 인천시 부평구민 여러분! 우리덜이 이곳에 와서 물통에 물을 받아가는 것은 좋은 물 마시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자는 바로 그거올시다! 아닙니까? 여러분! 그런데 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자는 바로 그 이치가 거꾸로 되어버렸다 이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이 요렇게 성질 급하게 자기 차례 하나 기둘르지 못하고 오도방정에 성질급한 참새새끼마냥 파르르 해댄다면 좋은 물 백번 마셔도 소용이 없다 이겁니다. 내가 지금 참새 얘기를 말씀 디렸는데 바로 고 참새나 뱁새나 한번 손으로 잡아보세요! 파닥거리다가 금새 죽고 만다 이거에요! 강물에 피라미나 불거지나 요런 성질 급하고 지 성질 지가 참지 못하는 고런 짐승들은 쪼금만 건드려도 파르르 오도방정을 떨다가 금새 죽어버리고 만다 이겁니다. 성질을 유하고 느긋하게 가져야 오래 살아요! 우선 자기 성질 성격부터 고치고 좋은 물도 마시고 좋은 공기도 마셔야 된다 이겁니다. 공중전화거는 거 하나 기둘르지 못하고 전철표 하나 사는 거 기둘르지 못하고 추월하려는 차 하나 그냥 보내지 못하고 그냥 냄비처럼 파르르 해대는 이 성질 고치지 못하면요 제 명대로 살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가 요길 매일 나와 여러분덜이 물 긷는 모습을 유심히 유심히 보는데요··· 이래 가지구는요 지하수 아니 지하수 보다 더한 천연약수를 마셔도 진짜 건강 찾지 못합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오늘 이 순간부터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이곳의 청결을 유지하고 질서 지키기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할배씨가 사라지자 한쪽에서는 그 할배씨가 구의원이라도 해먹으려는 정치지망생이 아니냐, 다른 한쪽에서는 그 영감이 도사 흉내내며 아는체 잘 하는 위인이라더라 -- 한마디씩 떠들어댄다. 나는 왜 그런지 뭔가 찝찝했다. 물을 받아 오토바이에 싣고 돌아오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영감님의 말씀은 바로 나를 두고 한 말씀이었다.
[민들레별곡 / 강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