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민들레별곡

휘영청 밝은 달만...

천 지 인 2007. 3. 7. 09:44
 

휘영청 밝은 달만...    


  엊그제 부터 한패씩 몰려온 친구들이 오늘까지 게기다 갔다.

  봉승이는 지금 역사가 어드렇게 바뀌고 있는데 노상 술타령이냐고 하루 종일 씹다가 지 혼자 성질을 내면서 휑 돌아 갔다. 정창이는 애인과 티거덕 거리더니 결국은 애인을 울려 놓고 역시 지 혼자 돌아 갔다. 용우와  구영이는 네가 잘났니 내가 잘났니 -- 처음에는 말싸움으로 나가다가 새벽 두시쯤에 멱살잡이로 나가더니 -- 그 한밤중에 마당으로 밭으로 산으로 꼭 미친놈처럼 헤매다가 돌아 왔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걱정을 했겠는가.

  장일이는 별거중인 아내가 보고 싶다고 꺽꺽 거리고, 성일이는 사업이 쓰러져 빚 갚을 일로  한숨만 들이쉬고 내쉰다. 아내는 아내대로 그 대책 없는 술자리에 버티고 있는 것만도 힘들다고 부평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되뇐다.

  그 끔찍한 분탕질에 --  폭풍이 쓸고 간 집에 혼자 남으면 가슴은 온통 난도질 당한 아픔으로 도무지 견딜 수가 없다.

  석유도 떨어져 보일러도 켜지 못하니 방은 식어 버렸는데 차는 어디가 고장인지 움직이지도 않으니 석유를 사러 갈 수도 없다. 비참한 기분이고 슬프기도 하다.


  아침엔 함박눈이 내린다. 까맣게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며 산에 오르니 가슴에 휑하니 찬바람이 몰아친다. 산 능선 이쪽에서 시작해 저쪽까지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한시간쯤 걸렸다. 흐르는 땀을 대강 닦고 -- 에라 오늘 같은 날은 일이나 하자! 망치 들고 못통 들고 “미친듯이” 일하기 시작했다.

  일에 매달리니 걱정근심도 비참하고 슬픈 마음도 다 잊어 버렸다. 온종일 톱질에 망치질로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차의 시동을 걸어 봤다. 이틀 동안을 꿈쩍도 안하던 똥차가 부르릉 붕붕 시동이 걸렸다. 그거 참! 석유통을 싣고 석유를 사와 보일러를 돌렸다.

  한시간쯤 지나니 방안에 따스한 기운이 가득하다. 밥을 지어 한그릇 먹고 설겆이를 끝내고는 책을 읽는다. 전화가 왔다. 구영이에게서도 오고, 창정이에게서도 오고, 용우에게서도 온다. 밥이나 먹었느냐 몸은 괜찮냐 잠을 푹 자라 -- 그리고 밖에서 차소리가 들린다.

  귀를 곤두 세우고 누가 왔나 -- 살피다가 밖으로 나가 본다. 차도 사람도 없다. 그러니 그 새를 못참고 사람이 보고파 기다리는 내가 착각을 한 것이련만 저쪽 아랫길로 누군가 들이닥칠 것만 같아 한참을 서성이다 연못쪽으로 더 나가봤다.

  휘영청 밝은 달만 연못 위에 걸려 있다.

 

[민들레별곡 / 강진호]

  

* '민들레별곡' 단행본에 수록되지 않은 원고입니다.

   아마 개인적인 소회를 기록하다만 미완성 원고로 추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