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지 인 2007. 2. 16. 11:20
 

          자반고등어

 

 박씨 형님이 찾아 왔다. 한참 딴전을 피우며 낑낑 거리다가

 “저기··· 거시기 말여··· 그라니께 그기 그랴서···”

 “무슨 말씀을 하셔도 좋으니 뜸들이지 말고 말씀하세요.”

 “자네 집안 형편을 보니 아주머니는 불쌍허기가 짝이 읎구 큰딸 아이두 시집갈 떄가 다 됐는디··· 어쩌구 ··· 그랴서··· 여보게 내가 댕기는 아파트 경비루 취직을 안할라나?”

 그래 이걸 무슨 수로 어떻게 설명을 하나 난감해 하다가

 “성님이 나를 생각하셔서 그렇게까지 해주시겠는 건 고맙기 짝이 읎지만서두···.”

 그랬더니 그 양반이 내 얘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대뜸

 “천하읎는 백수건달 주제에 그래도 체면은 있구 자존심은 있어서 못하시겄다 이거신가?”

 솔직히 자존심이 상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내 자존심보다 이 양반의 속심 깊은 성의가 고맙지 않은가.           

 “형님 그게 아니라··· 지가 어디 잡지사에 책 한권 내기루 허구 계약금꺼징 받은 처지라··· 그걸 써야 되니 형님의 배려는 고맙지만 시간이···.”

 조심스럽게 설명해도 또 팩 성질을 내며

 “화상 육갑허는 말씀일랑 작작 허시게··· 이몸은 서울 소공동에서 60평짜리 사무실 읃어 놓구 직원덜 60명 거느리시구 사장님에 회장님꺼징 허신 몸이실세. 개딱지겉은 집구석에서 밤낮 남으돈 꾸러나 댕기는 주제에 뭔 얼어 뒈질 목사타령이구 뭔 빌어먹다 뒈질 원고타령인가. 싫으면 솔직히 싫다고 헐 것이지.”

 현실이 아무리 그래도 내 현실 갖고 사는 인간이 아니고, 또 아무리 굶어죽다 뒈질 형편이래도 서로간의 체면이나 예의가 있는 것이지 살만큼 산 노인네가 말을 저렇게 싸가지없이 하나. 스멀스멀 화가 나고 배알이 뒤틀리고 있었다.

 “내 성님헌테 자세히는 말씀 안드렸지만 ···  사실은 내 원고지 한 장 쓰면 삼천원 받아요. 하루에 열장만 써도 삼공은공 삼일은삼 삼만원이요. 스므장을 쓰면 딱 육만원인데 ···  그게 사실은 적은 돈이 아니거든요. 내가 오지랖 넓게 이것저것 요거저거 벌려놓고 딴 짓을 해서 그렇지 작심허구 글만 쓴다면 가난은 면헐 수 있어요. 그래서 ··· .”

 역시 또 내 얘기가 끝나지도 않아서 대갈일성!

 “예끼! 이 호로잡놈아! 네놈이 운악산 밑자락에서 그나마 도를 닦았다고 허구헌날 개나발을 불어대기에 내 그래도 그나마 사람 하나 만난 줄 알고 겉으루 내색은 안했어두 속으루는 기쁘기 그지읎었구 뭔 사연이락두 있으믄 돕구 살겄다구 작심을 했었는디 ···  뭐가 어쩌구 어쩌야? 네깐 눔이 뭔 소설가에 시인이라구 개좆겉이 허구헌날 신소리나 해대면서 잡노가리나 늘어놓는디 ···  그려, 네깐 눔이 소설가에 시인이라믄 그나마 좆겉은 글이락두 책으루나 신문으루나 남부끄럽지 않게 박아냈을 것인즉 워디 월마나 글다운 글을 썼는지 쫙 펴내 내 앞에 내보여봐라! 맨날 글타령 해대면서두 책방이구 신문이구 네 이름 석자 씻구 볼래야 보이지두 않는 주제에 허구헌날 원고료네 원고마감이네 ···  여그 사람덜이 알아들을 수두 읎는 잡소릴 지껄여대믄서 ···  네깐에는 글쟁입네 사기를 치구 있지만서두 ···  내 얘기인즉슨 ··· .”

 나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얘기인 즉슨? 그래서 뭐가 어쩄다는 거요? 내 당신이 말 한마디라도 점잔하게 하고 술 한잔 마셔도 실수가 읎기에 큰형님으루 모셨드니 ···  이제 보니 ··· .”

 “이제 보니? 순 호로 쌍놈에 똥물에 튀겨 죽일놈이더냐?”

 “입가졌다구 할 말 다한다믄··· 칵! 다 뱉아 버리구 말겄지만 ··· .”

 “그려 ···  근데 왜 칵 배앝지 못하냐? 네 주제에 그려두 윗사람 아랫놈 서열은 알어서 그런다냐?”

 “한말루 당신이 허구 싶은 얘기가 뭐요?”

 “니 허구 댄기는 꼬라지루나 써먹는 심성으루 봐서 경비가 딱 맞을 것이니 폐일언하구 경비노릇이나 하라는 말씸이시다. 거그서 경비를 스다 보면 이놈저놈 이년저년들헌티 굽신두거리구 배알틀리는 일두 숱허게 겪을 것인즉 그런 일 당하면서 좀더 겸손해지구 낮아진 연후에야 글이든지 좆이든지 쓰라는 말씸이시다.”

 치고 박기 일보직전까지 갔던 입싸움이 그 말 한마디에 픽 삭아 버렸다. 내가 진즉 진 싸움이다. 제풀에 한풀 꺾인 내가 기껏 한마디 했다.

 “그러는 형님은 왜 아직 사람노릇 멀으셨소?”

 “니눔 눈이 멀어 내를 제대루 볼지 모르니까 기껏 고런 주둥이나 놀리는 것이니라.”

 “잘난 척하지 말구 술이나 한잔 합시다.”

 

 그날 나는 그 망할 놈의 영감탱이에게 통닭에 생맥주에 보쌈에 정종까지 극진히 대접해가면서도 장장 세시간이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늧은 저녁 헤어지면서 그 영감탱이는 노점상 고씨한테서 자반고등어 한손을 사 내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이거 구워 마누라허구 새끼들허구 같이 먹으면서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라 이거여.경비스면서 도닦는다구 맴 먹으면 큰 글두 쓸 수 있으니께.”

 그래 그놈의 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문득 하늘을 보니 시커먼 장마구름이 온통 시커맸다. 잰걸음으로 집에 돌아와 줄줄이 새는 지붕에 올라가 비닐을 덮고 돌과 나무조각들을 올려놓고 ···  그렇게 번잡을 떨고 두어시간 후에 내려오니 ···  그놈의 자반고등어는 신발장 위에 그대로 놓여 있고 아내와 아이들은 입은 채로 고꾸라져 잠을 자고 있었다.


[민들레별곡 / 강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