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민들레별곡

뺀질이와 곰퉁이

천 지 인 2007. 2. 9. 08:55
 

  박씨와 황씨


  우리동네 입구에 게딱지 같은 무허가 건물 공장들이 어느날 다 헐리고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무슨 실내수영장에 볼링장 들어설 건물 짓는다고 요란스럽게 공사가 시작됐다. 나이 오십 다 됐는데도 노가다 잡부 신세 못면하는 황씨와 박씨는 나란히 그 현장의 막일꾼으로 ‘취직’을 했다.

  하루 노동이 끝나고 박씨는 정씨 가게 앞에 모여 있는 패거리들과 왁자하니 떠들어가며 술한잔 나누고, 황씨는 여늬 때와 다름없이 라면 대여섯 봉지 사들고 탈탈거리며 집으로 간다. 남루한 옷차림에 다 닳아버린 운동화를 끌고‧‧‧ 아주 작은 체격에 뽀얀 시멘트 먼지를 머리에 뒤집어 쓴 채 늦가을 된서리에 주저앉은 꽃봉오리처럼 잔뜩 웅크리고 걸어 간다.

  그런 황씨를 쳐다보며 박씨가 혀를 찬다.

  “원 사람이 저렇게 주변머리 읎어서야‧‧‧ 저 인간은 허구헌날 지 여편네 치마폭 못벗어나구 지 애새끼들 그늘 못 벗어나고 저렇게 살 팔자라니께‧‧‧ 저 인상츠럼 살 바에야 내 겉으믄 칵 뒤져버리겄다!”

  박씨 말마따나 황씨는 주변머리 없고 소심하고 힘도 없는 사람이다. 그저 착해빠진 성격 그대로 자기 마누라와 자식새끼들 먹여 살리는 일에만 온 힘을 쏟는다. 그러니 공사현장에서고 어디서고 지 할말도 없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해가며 수굿이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한다.

  황씨에 비해 아주 이악스럽고 자기 잇속 차리는 데는 월등한 박씨는  그런 황씨를 노상 깔보고 우습게 여긴다. 공사판에서도 지 할일도 슬쩍 황씨에게 떠 넘기고‧‧‧ 그러면서도 현장 소장이나 십장한테는 잘한 일은 모다 자기가 한 것처럼 장난질도 치고 눈속임짓도 하는 모양이다.

  사람이 지 혼자 약은 체는 다 해가면서 지 똑똑하다고 잘난 체는 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황씨보다 더 나을 거 하나도 없다. 그렇게 약삭빠르게 살아봤자 황씨 살림 형편보다 하나도 나은 것도 없고 그렇다고 동네사람들에게 인심 얻고 사는 일도 없다.

  오히려 원래 그런 사람이려니 치부하고 무슨 일을 시키든가 작은 거래라도 할 때는 의심부터 하고 본다. 그러니 자기도 아주 바보가 아닌 담에야 그 눈치를 모르지도 않을 것이니 그런 짓거릴 고칠 만도 한데 나이 오십이 다 됐어도 여전 그 모양이다.

  동네 건물 기초공사가 끝나고 고사 드린다고 자꾸 오라기에 주춤주춤 나가봤다. 판넬 몇장 깔아 만든 임시 상판 위에 돼지고기며 막걸리며 잔뜩 차려놓고 공사장 인부들과 동네 사람들이 한참들 맛있게 먹고 있었다. 여지없이 박씨는 나서서 설치고 틈틈히 돼지고기를 챙겨 비닐봉지에 담는 등 약은짓을 해댄다.

  황씨는 말없이 저쪽에서 불을 피우고 있다. 날씨가 제법 쌀쌀하니 먹는 사람들 춥지라도 않게 해줘야겠다고 속심깊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그 모양을 바라보던 현장소장이 어이 황형! 한잔 하구 하셔! 한다. 소장이 황씨에게 마음 쓰는 걸 눈치챈 박씨가 쪼르르 달려가 지가 불을 손볼테니 어서 가서 한잔 하라고 큰 인심쓰듯 떠들어댄다.

  황씨가 초라한 형색으로 다가와 소장이 따라 주는 막걸리 한잔을 받았다. 한잔을 마시고는 소장에게 건네야 될지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주춤거리고 있는데 소장이 내게도 한잔 주시요! 하며 잔을 내밀었다. 황씨는 쩔쩔매며 술을 따른다.


  그러는 중에 원 건물주인인 김사장이 도착했다. 이 근처에선 알부자에 노랭이로 소문난 김사장은 자기 차에서 내려 어슬렁 어슬렁 사람들 있는 쪽으로 오더니 동네 사람들이 협조를 잘해줘서 어쩌구 저쩌구 상투적인 인삿말을 늘어놓다가 불 속에 큰 나무를 집어넣고 있는 박씨를 노려본다.

  “여보! 여보!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박씨가 뭔 영문인지를 몰라 사장님에 회장님을 멀건히 바라보고 있다.

  “손님들이 추울까봐 불을 피우고 있는데요.”

  “근데 당신 지금 집어넣은 그 나무말야‧‧‧ 그런 걸 그렇게 막 집어넣고 때도 되는 거야? 요즘 나무값이 을마나 비싼 줄이나 알구 있어?”

  그러더니 부리나케 그쪽으로 간다. 소장도 따라가고 십장들도 따라가고 비상들이 걸렸다. 과연 소문대로 노랭이에 알짜답다. 박씨가 불 속에 넣은 것은 하필 투파이브 여섯자짜리 나무였는데 그게 일이 안될려고 아주 새것처럼 멀쩡해 보였다. 김사장이 소리소리 지른다.

  “우리나라 공사판은 일본놈덜헌테 비하면 아직 멀었다 이거여! 일본놈덜은 모래 한삽 자갈 하나 재목 하나락두 허투루 내버리질 않구 철저히 알뜰살뜰 쓰는데 우리나라 공사판엔 그저 내거 아니라구 막 버리구 파악두 안하구 개판으루 어질러 놓구‧‧‧ 이러니 은제 일본을 따라 잡겠냐 이거여! 우리나라 현장에 굴러 댕기는 물자들만 제대루 간수해두 집 수천채는 거뜬히 짓구두 남는다는 통계두 있는디‧‧‧ 당신이 때는 이 나무 한개가 월만지 알구 있어? 이게 새루 살려면 삼천원 사천원 줘야 된다 이거여! 열개면 삼만원이구 백개믄 삼십만원 천개믄 삼백만원‧‧‧ 그러면 전국적으루 이거 하나씩 막 버린대믄 그 돈 나가는 게 월만지나 아쇼?”

  그러니 느닷없이 날벼락 맞은 박씨만 곧 죽을 맛이다. 사색이 된 박씨가 어찌 할지를 몰라 쩔쩔매고 있는데 김사장 김회장님이 획 돌아선다.

  “여보 유소장!”

  현장소장을 불러 세웠다.

  “안되겠어 세계화 국제화루 뻗어나갈려는 우리 회사가 이런 식으루 물자관리를 해서는 안된다 이거여! 무신 말인지 알아듣겄는가?”

  “예!”

  “그러니 당장 우리회사가 벌리는 공사현장의 분위기를 일신할 것인즉‧‧‧ 우선 여기부터 당장 꼼꼼하구 정직한 사람을 반장으루 한명 추천하시요! 누가 좋겄소?”

  그러니 사장님한테 대박 터진 박씨를 추천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소장은 황씨를 돌아다 본다. 김사장이 황씨를 보더니

  “음! 사람이 착하구 진실허겠구만‧‧‧ 이리 와 보시요!”

  황씨가 다가가니 사장님에 회장님이 동네 사람 다 들으라는 듯 더 큰소리로 묻는다.

  “성씨가 뭐요?”

  “황씬데요”

  “그럼 이제부터 황반장이라구 부를테니 여기 정리를 깨끗이 하구 물자관리며 파악두 틀림읎이 해놓구‧‧‧”

  “저어‧‧‧ 무슨 반장인데요?”

  “으음! 글씨‧‧‧ 좋소! 경비반장이요! 정식 회사직원으루 근무해 주시요!”


  일이 안될려면 별 게 다 속을 썩이고 재수가 옴 붙을라면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 것이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하필 고때 황가놈 손대던 불을 왜 내가 손을 댔으며 왜 하필 고때 사장놈이 왔으며 왜 하필 고때 경비반장 얘기가 나오느냐 말이다.

  경비반장이라면 황가놈보다 생긴 거루 보나 빠릿빠릿한 걸루 보나 길가는 사람 다 막어놓구 물어봐두 모조리 내가 제격이라구 헐 것은 뻔할 뻔자인디‧‧‧ 워쩌자구 이런 재수가 옴 붙구 지랄허라. 염병 앓을 이런 귓구멍 콧구멍이 생겼느냐 말이다.

  절망에 한숨 쉬며 돌아선 박씨가 꼬불쳐둔 돼지고기나 들고 가자며 그걸 들고 너덧걸음이나 갔는데 그날 먹거리 도맡아 책임지고 장만하던 아줌씨가 하필 또 그걸 어떻게 보고는 냉큼, 이봐요! 그건 왜 가져가요? 별 사람 다 보겄네‧‧‧ 여기서 먹을 것두 모자라는데!

  박씨는 성질난 김에 나무조각을 걷어찬다는 게 콘크리트 위로 삐죽히 솟아난 철근 끝을 차버렸다. 그러니‧‧‧ 젠장‧‧‧ 얼마나 아프실까.

 

[민들레별곡 / 강진호]

 

* 원제는 "박씨와 황씨"입니다. 그런데 "민들레별곡" 책을 살펴보니 " 뺀질이와 곰퉁이"로 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책에 수록된 제목으로 수정합니다.

(2007. 3. 15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