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민들레별곡

또 하나의 에이자부페

천 지 인 2007. 2. 8. 10:26
 


또 하나의 에이자부페


한씨 영감님을 보면 에이자부페 생각이 난다. [에이자부페 - 페허로 변한 산에 묵묵히 나무를 심어 초록의 낙원을 이룬 프랑스의 양치기 노인] 환경운동가들이 바이블(경전)처럼 여기는, ‘나무를 심은 사람’의 주인공.

영감님은 삽살개처럼 생긴, 털이 많이 난 잡종개 한마리와 동네 끝 낡은 집 문간방에 혼자 살고 있다. 문간방 옆으로 똥개울 따라 좁은 시멘트길이 나 있는데 길이 좁아 차는 다닐 수 없고 사람만 혹간 오간다. 그래 그쪽은 늘 한산하다.

그 길 아래 개울뚝에서부터 시작하여 백마교 아래까지 오르내리면서 그분이 하는 일이란 똥개울가의 온갖 쓰레기를 줍는 일이다. 꾸부정하게 허리를 숙이고 회색의 낡은 작업복에 색이 다 바랜 검정색 중절모를 쓴 영감님 뒤를 역시 주인을 닮아 당차보이지 않는 삽살개가 쭐래쭐래 따라 다니고 그이는 오직 쓰레기만 묵묵히 줏어 담는다.

라면봉지, 과자봉지, 담배곽, 아이들 장난감, 각종 폐비닐, 박스, 신문지, 신발 종류, 폐건축재, 병과 깡통, 옷가지 나부랭이... 정부미 부대를 한손에 들고 또 한손엔 집게 하나를 들고 아침해가 뜨면 꿈지럭 꿈지럭 움직이기 시작해서 저녁 해거름까지 그저 말 한마디 없이, 남의 눈치 볼 거 없이 한부대가 가득차면 당신집 아래 뚝에 쌓아 놓고 또 한부대 되면 뚝에 쌓아 놓고 그리고 이튿날이 되면 그 쌓아논 부대들을 헐어 돈 될만한 것과 쓸만한 것, 버릴 것을 따로따로 정리한다. 그리고 또 이튿날이 되면 개울가를 오르내리며 쓰레기를 줍는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동네 통장과 어른들 몇몇이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고 노상 잔소리를 해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누구하나 그 잔소리를 귓잔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그걸 뭘 그렇게 신경 써? 아예 쓰레기통처럼 되버렸는데....”

그래도 안된다고 하면

“나 하나 안버린다구 되여? 딴 놈덜이 계속 버리는디!”

그래도 안된다고 하면

“쓸디 없다니께! 낡은 집도 웬만허야 고치기두 허는 거지. 아주 가망 없을 지경이면 확 허물어 버리든가, 싹 불질러 버리구 새로 짓는 벱이여. 웬만해야 청소를 허든가 치우든가 허지, 이건....”

그래가면서 꾸역꾸역 내다 버린다. 아저씨들은 냉장고도 내다 태우고 씽크대도 날라다 불지르고 그러면서 그 불길 주위에 모여 서서 낄낄대며 농담들을 해대고 아줌씨들은 라면봉지, 과자봉지, 헌옷가지들을 툭툭 내버리고는 태연스레 돌아서 간다. 아이놈들은 공놀이하다 그거 빠지면 그걸로 그만, 깡통이나 술병들을 가지고 개울 한가운데에 목표물을 정해 맞추기 시합을 하면서 수십개를 던져 놓고도 그만이다.

주위의 크고 작은 공장에서는 기름찌꺼기건 폐수건 그저 보는 이 없고 단속 없으면 쏟아붓듯 마구 버려댄다. 생각없이 가정에서 함부로 버리는 생활 오폐수, 비 한번 올 때마다 넘쳐흘러 개울로 쏟아지는 거리의 온통 더러운 물, 거기에 요즘은 산성비까지 보태져 개천은 썩고 또 썩어 시커먼 몰골을 드러내고 말기의 암환자처럼 죽음의 신음을 토하며 널브러져 있다. 맨발로 개울에 잠시 들어갔다 나와도 피부엔 금방 붉은 반점이 생기고 역한 냄새는 코끝에만 스쳐도 구토를 일으킨다. 그리고 개울 주변에 뚝방이고 텃밭이고 지천으로 버려진 쓰레기로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환경문제니 자연파괴니 몇자 줏어들은 소리로 어줍잖게 몇마디 떠들다가 포기하고 만 것도 사실은 난마처럼 얽히고 이미 때를 놓쳐버린 굴포개울의 문제는 절망적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동네 사람들 말마따나 집도 웬만큼 망가져야 수리를 할 수 있는 것처럼 굴포개울 문제도 웬만해야 손도 써보고 운동도 할 수 있는 거지 이미 죽음의 지경에 이르른 상태인데 무슨 수를 쓸 수 있겠는가 말이다. 비단 우리동네 사람들이나 나뿐만이 아니고 개울 건너 고층아파트의 배운 사람들도 같은 체념으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형편이었다.

한씨 영감님이 부대를 들고 개울가를 돌던 초입 때만 하더라도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다. 자식이 있는지 없는지 재산이 있는지 없는지, 뭘 얼마만큼 배웠는지, 전에는 뭘 했는지 도무지 요령부득인 늙은이 하나가 어느날 꿈지럭거리며 개울을 도니, 다들 갈 데 없는 늙은이 하나가 주변머리 없이 쓰레기나 줏어 뭔 돈이 되느냐 줄줄이 한마디씩 했고, 그 후론 그저 관심들도 없었다. 그리고 하루 지나고 이틀 지나가 서너달이 다 되간다.


“어머! 저 사람이 바로 하느님 아냐?”

에이자부페에게 작가 박완서씨가 그렇게 외쳤다지만 그 절망적 폐허의 땅에서 누구 한사람 보아주지 않고, 누구 한사람 도와주지 않는 나무심기를 수십년 묵묵히 쉬지 않고 해나갔던 에이자부페는 정말 하느님의 현현인지도 모른다. 절대절망의 현실에선 그 절망을 제 것으로 하고 철저한 희생을 감수하려는 작은 존재로부터 기적은 일어나니까 말이다.

다른 사람은 아직 모르겠다.

한씨 노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씨 영감님은 오늘도 허리를 꾸부정하게 구부리고 개울을 오르내린다. 그 뒤로는 여전히 삽살개가 뒤따라 간다. 또 여전히 부대의 쓰레기들을 풀어헤치고 흙을 털어내고 망치로 부수고, 걸레로 닦아 쓸만한 것과 돈이 될 만한 것은 따로따로 정리한다.

그분이 지나간 개울가는 환하게 깨끗하다가 이튿날이 되면 쓰레기더미로 변한다. 또 그 다음날은 빗자루로 쓴 것처럼 깨끗해지고 그 반복되는 날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은 말들이 점점 없어진다. 그리고 한사람 두사람 뚝방 위에 서서 노인의 그런 모습을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쳐다본다. 우리 모두 그 근심의 의미를 알고 있다.


[민들레별곡 / 강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