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민들레별곡

못난이와 재롱이

천 지 인 2007. 2. 6. 13:42
 

  못난이와 재롱이


  못난이와 재롱이는 우리 가족과 함께 사는 개이름이다.

  요크사리종의 털이 길고‧‧‧ 눈 코 입까지 온통 털로 덮여있다. 아주 못생긴 개가 못난이고 족보도 종자도 알 수 없는 흰색의 작은 개가 재롱이다.

  중국음식점을 하는 우리동네 통장 박씨가 몇달 전에 큰길 한가운데 자동차들이 내달리는 와중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찔찔매고 있는 못난이를 붙들었다. 주인을 찾는다고 몇번 광고를 냈어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자 덜컥 우리에게 안겨버렸다.

  그런 종자의 개는 몇십만원 나간다니 우리동네 식구는 아닐 것 같고 필경 저쪽 고층아파트에서 어떻게 잘못하다 잃어버렸을 수도 있으니‧‧‧ 기껏 기르다가 주인이 찾아와서 내노라고 하면 마음만 그럴테니 싫다고 해도 막무가네로 맡기고 가버렸다.

  이 못난이가 얼마나 못생겼는가 하면 눈은 항상 조는 듯 아래로 척 처져있고, 코는 내 엄지손톱만밖에 안하고(개코도 아니라니 정말 개코도 아니다), 입은 멍청허니 헤 벌리고 거기다 요새 아파트에서 개 키우는 사람들이 흔히 해대는 성대수술(짖지 못하게)도 받았고 꼬리까지 짤려 그야말로 맹구와 멍구를 합쳐논 꼴이다.

  그런 못난이가 - 박통장하고 나하고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 또 얼마나 웃기냐 하면 이건 처음 우리집에 잡혀왔는데도(주인도 아닌데) 꼬리를 흔들어대고(그것도 꼬리라고) 볼을 비벼대고 신발이고 옷이고 아무데나 오줌을 싸대고 그것도 모자라 벗어논 신발이나 비누곽이나 칫솔이나 닥치는대로 물어다 똥개울 뚝에 내다 버리고‧‧‧ 그런데도 그 요상하게 못난 모양에 밉지않게 말썽 피는 멍청스런 재롱으로 우리 식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래 실컷 네 하고픈 대로 하려므나 ‧‧‧ 우리는 묶어두지도 않고 가두지도 않고 그냥 내버려 뒀드니 이건 아주 제 세상이요 살판난 개팔자 만났다고 하루종일 껑충껑충 뛰며 온동네를 싸질러 다니다가 배나 고파야 찾아 들어와선 밥달라고 으르렁거린다. 그 못난 주제에 남자구실은 도맡아 하겠다고 동네를 휘젓고 다니면서 바람이란 바람은 아마도 몽땅 피는 듯 이집 저집 이 골목 저 골목 저게 누구네 개냐, 우리동네 개 씨를 전부 털복숭이 종자로 만들거냐‧‧‧ 장안의 화제를 몰고 다니기도 했다.

  재롱이는 앞집 송과부 아줌씨가 너덧달쯤 키우다간 개 키우는 게 귀찮고 번잡스럽다고 역시 우리에게 강제로 안겨버린 하얀 강아지였다. 개나 사람이나 좀 수긋하고 약아빠지지 않아야 사랑도 받는 것인데 이놈은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지 사람이 근처에만 가도 아주 곧 죽을 듯 깨갱거리며 발작을 일으키고‧‧‧ 얼마나 겁이 많고 방정을 떠는지 밥 한번 주는데도 온식구들이 숨을 죽이고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거기다 입은 얼마나 짧은지 생선이 들어갔다거나 찌꺼기 밥을 줬다거나 김치찌개 같은 매운 것이 들어갔으면 아예 입도 안 대고 그저 사람들 먹는 고 식으로만 먹겠다고 앙탈을 부리고 그래 우유나 초코파이 정도라도 던져줘야 깔짝거리며 먹는 시늉을 해대니‧‧‧ 아무리 개 또한 귀한 생명이라 생각하고 사랑을 하려고 해도 우리집 형편에 매 끼니마다 어떻게 그렇게 대접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 영 마음이 가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 두 놈 ‧‧‧ 못난이와 재롱이가 이번 가을에 기어이 일을 저질렀다. 날이면 날마다 집밖으로 쏘다니던 못난이가 며칠동안 집안에서만 맴돌기에 뭔 일인가 했더니 글쎄 재롱이가 발정을 시작했고 그거 눈치챈 못난이놈이 민망스럽게도 아침이고 점심이고 시도 때도 없이 누가 보거나 말거나 재롱이에게 올라타서 그 짓을 해대는 게 아닌가. 그리곤 아마도 일주일 이상을 꿈쩍도 안하고 새색씨 옆에 붙어 서서는 남편노릇을 톡톡히 해대는 것이었다.

 

  날이 가고 달이 바뀌고‧‧‧ 개 키우는 일은 나보다 몇 수 위인 아내가 새끼 낳을 집을 마련해줘야 한다기에 쓰다 버린 싱크대를 뚝닥거려 개집이랍시고 만들어 스치로폼을 깔고 두툼한 방석 한 자리도 펴놨다. 워낙 자지러지기 잘하고 방정을 떠는 재롱이가 뭔 새끼나 제대로 낳을 것이고, 또 낳는다고 해도 그렇게 채신없고 저 하나만 아는 주제에 어떻게 새끼를 거두고 키울 것인가 ‧‧‧ 솔직히 미더움이 없었다.

  더 큰 문제는 날은 추워오고 그러는데 사람이 옆에만 얼씬거려도 죽는 시늉을 하는 재롱이가 번잡스럽게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우리 부엌 안에서 과연 새끼를 낳겠다고 들어오겠나‧‧‧ 그것부터가 걱정이었다. 시험삼아 새로 만든 개집에 몇번 강제로 집어놔 봤더니 역시 죽는다고 깨갱거리며 뛰쳐 나오고 그 자리엔 엉뚱하게 못난이놈이 들어앉아 고개를 쳐들고는 멍청하니 우리를 쳐다보는 그런 지경이었다.

  그래도 아내가 오늘인가 내일인가 손가락을 꼽고 있던 어느날 밤... 한 열한시쯤이나 됐을까, 부엌쪽에서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리기에 혹시 재롱이가 새끼를 낳은 것이 아닐까 그래 조심스럽게 개집 안을 들여다 보았다. 그러니 이것 보게! 새끼를 낳은 재롱이가 개집 안에서 자기 새끼들을 폭 감싸고 혀로 연신 핥아주고 있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보니 참 신비스럽고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주착스럽고 푼수 없는 못난이가 뭣도 모르고 새끼들 있는 집안에 들락거리면 신경이 예민한 재롱이가 혹시라도 지 새끼들을 어떻게 하지나 않을까 여간 걱정되는 게 아니었는데 재롱이는 자기 새끼들을 꿈쩍도 안하고 감싸고 있으면서 못난이가 근처에만 와도 으르렁거리니 못난이는 그 으르렁거리는 이유도 알지 못하면서 이상한 일 다 보겠다는 듯 갸우뚱거리면서도 얼씬도 안한다. 두 주일동안 새끼만 꼬박 지키던 재롱이가 보름쯤 지나니 쉬야도 하러가고 바람도 쐬러 잠깐 잠깐 자리를 뜨길래 그 틈에 새끼를 꺼내보니 지 애비 못난이를 꼭 빼닮은 못난이 2세들이 다섯마리나 된다.

  어린애가 어린애를 키운다는 말도 있지만 정말 강아지 때 못벗은 철도 없고 미더움도 없었던 재롱이가 새끼들이 오줌을 싸면 혀로 열심히 닦아주고 똥을 싸면 그걸 몽땅 먹어치우고 그러면서 열심히 젖을 빨려 제 새끼 키우는 것을 보니 얼마나 대견하고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

  그래 참치통조림을 사나르고 우유를 새로 배달시키고 닭발들을 시장에서 사오고 그러면서 어린 엄마 뒤수발을 열심히 해줬다. 재롱이가 그렇게 훌륭한 엄마 노릇을 다한 덕분에 한달쯤 지나니 새끼들이 눈귀를 뜨고 뒤뚱거리며 밖으로 기어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정말 기적이 일어났다. 성대수술을 받아 생전 짖지 못할 줄 알았던 못난이가 제 새끼들이 우르르 기어나오는 것을 보더니 물끄러미 그 모양을 지켜보다가는 처음에는 컹!하고 외마디로 짖다가 곧 컹컹컹! 으르렁거리면서 신바람나게 짖어대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보고 우리 식구들 모두는 너무 신기하고 감격스러워 손들을 잡고 기뻐했다.

  털빛까지 빼닮은 못난이 2세들은 지금 아주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막내딸 아이가 춥겠다며 방안에 들여놓으니 아무데고 똥오줌 싸대고 꼴같지 않게 벌써들 으르르 거리며 싸워대고 밤이면 발가락이고 손등이고 닥치는 대로 핥아대고 기어오르니 그 번접스럽고 못말리는 장난질은 영락없이 지 애비를 능가할 정도다. 이제 그 여섯마리가 떼거지로 몰려다니며 말썽 피울 일이 걱정될 뿐이다.


[민들레별곡 / 강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