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거리즘 - 낭만과 불륜
패거리즘 - 낭만과 불륜
1.
주변에서 정치력 또는 외교적 수완이 좋다는 사람을 종종 본다.
대개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현실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나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과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남들이 어려워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수완을 보인다.
이런 사람들이 위아래의 질서에 철저하면 그는 ‘싸가지 있는 사람’ 내지는 ‘예의 바른 사람’이 된다. 게다가 각종 연고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여 ‘자기 사람 챙기기’를 잘하면 그는 그야말로 보스기질이 있다는 평을 듣게 된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의 또 다른 측면을 살펴보자.
그들의 뛰어난 정치력은 대개 공개적인 협상과 토론의 자리에서보다는 그들만의 밀실에서 발휘된다. 하기에 밀실에서 어떠한 거래가 있었는지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그리고 위아래를 제대로 챙기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비자금이 필요한지도 우리는 모른다.
그래서 떡값이니 비자금이니 게이트니 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을 과신하면서 작은 일에도 목에 힘이 많이 들어 간다.
2.
우리는 주변에서 외골수 또는 고집불통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종종 본다.
이런 사람들은 여러 사람에게 입에 발린 소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오히려 입바른 소리만 골라서 한다. 게다가 가부(可否)에 대한 의사표명이 분명하여 냉정한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다.
이런 사람들은 위아래의 질서나 연고보다는 생각의 같음과 다름에 따라서 행동한다. 친구니 후배니 하면서 따지는 질서를 초월하여 생각이 같은 사람들과 격 없이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고집불통 이외에 질서를 헤치는 이단자로 취급당하기 일쑤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준이 분명하기에 누군가가 밀실로 끌고 가려하면 거부한다. 비판도 공개적이지만 옳고 그름에 대한 승복 또한 빠르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남들 경조사에 티내지 않고 부조를 한다. 그래서 때로는 다녀 간지도 모르기 일쑤다. 하지만 그들은 남들의 이목이나 입방아에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에 거리낌이 없으며, 그냥 그렇게 살아갈 뿐이다.
3.
물론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극단의 양면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동무 이제마 선생은 사람의 체질을 음과 양으로 나누고 다시 태와 소로 분류하여 태양, 소양, 태음, 소음의 네가지로 분류하였다.
각 체질별 특징으로 열거되는 사항들이 한사람에게서 하나의 체질적 특징만 나타나지 않는다. 여러 체질의 특징과 현상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중 주도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을 그 사람의 대표 체질로 분류할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분류된 체질도 영구불변한 것은 아니다. 성격과 섭생, 직업, 습관 등에 따라서 후천적으로 조금씩 변화를 일으키면서 체질 또한 변하게 된다.
장황해졌다. 요는 체질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이제마의 사상의학론에 입각해서 성격 또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전형화한 두가지 경향의 성격을 다시 태와 소로 재분하여 4가지 성격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렇게 4분한 성격은 사람마다 각기 선택적으로 한가지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여러 경향의 성격이 한사람에게 혼재되어 나타나며, 혼재된 성격을 사람들은 첫인상 또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전형화 할 뿐이다.
전형화하여 사람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게 칼질을 한다. 아무개는 싸가지가 있고, 개똥이는 성격 더럽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싸가지가 있으며, 많은 사람들의 성격은 좋다.
4.
어느 한사람의 성격을 극단적으로 전형화 하여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극단적인 전형화를 강요한다. 이렇게 강요되는 극단적인 전형화는 우리들에게서 이성적인 추론과 상호토론, 그리고 이에 입각한 합리적 판단을 배제한다.
합리적인 판단이 배제된 전형화는 ‘믿느냐 못믿느냐’라는 단순논리로 판명한다. 이때부터 그들은 패거리가 된다. 뒷골목 깡패를 조폭이라 칭하건 건달 내지는 양아치라 칭하건 그 속성이 변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다. 합리적인 판단이 배제된 채 상하질서와 의리를 강조하는 순간 그들을 조직이라 칭하건 정파라 칭하건 그 속성은 패밀리에 기반한 패거리일 뿐이다.
우리 사회의 뒷골목에서는 “즈그들끼리”만의 의리로 뭉쳐서 자기 패거리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해서는 아니 될 일을 일삼는 양아치가 존재한다. 앞골목에서는 밀실에서 짜고 치는 고돌이에 익숙한 패거리들이 모여서 무엇이 연고주의이고 무엇이 야합인지도 판단하지 못하는 패밀리즘이 활개친다.
앞골목과 뒷골목의 정서는 동일하다. 이름하여 ‘패거리즘’이다. 그들의 원리는 동일하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명확한 판단기준이다. 조직원의 잘못은 실수이기에 타박해선 안되며, 타인의 잘못은 따질 필요 없이 척결해야 한다.
이들에겐 예의와 절도가 생명이다. 밥그룻을 한그릇이라도 더 비운 놈이 형님이며, 가방끈이 1센티라도 긴 놈이 유식이다. 이러한 기준을 칼같이 지키며, 말끝마다 성님타령 하는 놈이 제대로 된 싸가지다.
5.
이제는 이런 ‘패거리즘’이 20대를 넘어서 초등학생까지 전파되었다. 뒷골목 양아치 문화에 대한 미화작업이 각종 매체 및 영화 등을 통하여 전방위로 이루어지더니 급기야 연령불문으로 확산된 된 것이다. 순간의 착각을 넘어서 양아치를 의리집단으로 혼동하는 착시현상 마저 일반화되었다.
이러한 착시현상은 결국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기준이 이원화됨을 뜻한다. 우리 사회의 앞골목과 뒷골목에서 인륜(人倫)이 아닌 불륜(不倫)을 일삼는 무리들을 보면서 로맨스라 착각하지 말자. 불륜은 불륜일 뿐이며, 양아치는 양아치일 뿐이다.
칼같은 상하질서와 주변관계 형성에 탁월한 싸가지 있는 성격이라 하더라도 양아치 조직질서에 부합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생각과 가치에 충실한 고집불통 외골수라 하더라도 가끔은 조직적인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이성적인 추론과 상호토론, 그리고 이에 입각한 합리적 판단이 이루어져야 한다. ‘믿느냐 못믿느냐’라는 단순논리와 이에 입각한 패거리즘이 조직의 근간이 되어서는 안된다. 모 대기업에서는 ‘불륜, 도박, 골프, 주식'으로 인해 구설수에 오를 경우 승진을 포기해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부적절한 관계에서 처신의 부적절함이 발생하며, 처신의 부적절함은 궁극적으로 조직 내외를 흔들 수 있다는 평가기준은 냉정하지만 명확하다. 과연 이러한 냉정한 기준이 우리 사회 각종 조직들 중에서 얼마만큼 통용되는지 사뭇 의심스럽다.
그러나 어떠한 조직이건 나와 남을 가르는 단세포적인 이원론이 아니라 확고한 가치기준이 정립되어야 한다. 누가 했느냐 보다는 무엇을 했느냐에 따라서 “로맨스는 로맨스이게 하고, 불륜은 불륜”이라 해야 한다.
[천 지 인]
啐啄同詩(酉陽染俎犢集·寺塔記上)
닭이 알을 깰 때 알 속의 병아리가 껍질 안에서 소리내는 것을 줄.
어미 닭이 이를 도와 밖에서 쪼는 것을 탁.
이 두 가지가 동시에 행하여 짐. [신영복 선생 서화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