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타령
고 향 타 령
해거름 끝난 저녁나절에 공장 허문 빈 공터에 나앉아 있으면 이런 저런 사람들이 모여 든다.
하루 종일 목수 노가다 끝나고 돌아오는 정씨성님, 박씨성님, 막 퇴근차에서 내려 껄렁껄렁 걸어오는 조씨, 데마찌(일 펑크나 쉬는 것) 나서 무료하게 지내다가 반가워서 어슬렁 어슬렁 걸어오는 김씨... 가게집 정반장 아줌씨도 손자놈 들쳐업고 다가와 한몫끼고 주태백이 홍가도 여전히 술에 취해 비칠거리며 참견해대고...
그래 이 공터에 판넬 너댓장 깔아 얼기설기 만들어 놓은 사랑방은 금새 만원사례다.
만물박사 조씨가 아는 체는 다 해가며 말문을 트면 지기 싫어하는 정씨성님이 괜히 성질까지 부려가며 우겨대고 전후사정 헤아리지도 않으면서 참어! 참어! 무작정 그 말만 되뇌이는 김씨 땜에 오히려 쌈을 부추기는 꼴이 되간다. 그렇게 쓸데없이 떠들고 우기고 싸우다가도 누구라 할거없이 막걸리 한잔 받아오면 또 금방 화기애애하고 뒷끝없이 한없이 진솔해지기도 한다.
얼마 전 휴가랍시고(일용노동자가 정해논 휴가가 어디있다고) 지리산엘 다녀온 김씨가 한바탕 지리산 산자락에 살아가는 사람들 얘기를 늘어놓으니 모두들 그리움이 가득한 눈들로 김씨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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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랴서 그기 냇가물이 내 허리 이만치 밖에 안되는데 거기 들어가서 반도(족대, 그물)를 대고 꽉꽉 몰아대니까.... 피래미 송사리 은어가 그짓말 안하고 한 양재기는 잡히드라고......
햐아... 그거 풋고추 넣고 고치장 풀어 매운탕 끓이면 끝내 주는디. - 박씨
아 매운탕도 매운탕이지만 고거 초장에 딱 찍어 쏘주한잔 짝! 횟감으로두 최고여. - 조씨
물도 꽤 차지? - 정씨
암믄요 십분만 들어가 있어두 온몸뚱이가 꽝꽝 어는 것 같아서 뛰쳐나와야 한다니께요. - 김씨
에이! 십분은 그짓말이겠고. - 헤롱대며 홍씨
이 새낀 가보지두 않았으면서 드럽게 아는척 헌대니께.... 너 겉은 놈은 십분도 못 있을 거여 - 김씨
에이 아무리 그래두 십분두 못 있을 정도로 차가울까? 십일분이래믄 몰라두.... - 홍씨, 여전히 헤롱대며
씨벌눔아 십분밖에 못 있는대니께. - 김씨, 얼굴이 달아오르며
에이, 십일분은 있을 수 있을 거여. - 홍씨
십분이구 십일분이구 그기 대수여? 그려구? 산나물두 지천이래믄서?...- 정씨
아이구 말두 말라구여. 고사리 원추기는 똥개울 쓰레기보담 더 지천이구 드릅이구 죽순이구 취나물이구 쌔구 쌨다니께요! - 김씨
하! 고...취나물에 된장 탁 얹어서 보리밥 쌈 몇개 먹으믄 죽여 주는디. - 정씨
더덕두 많겄네? - 조씨
하믄! 산에 갔다 하면 한 소쿠리는 캐온다니께. - 김씨
에이! 요즘 무슨 더덕을 한 소쿠리씩이나 캘 수 있어? 읎써! 읎다구, 아무리 지리산이라해두 자연산 더덕은 다 캐가구 읎다구, 아마 길른 거겠지 - 홍씨
이새낀 좆도 모르면서 드럽게 아는척 해대긴. 진짜 산에서 캔 자연산 더덕이라구. 내가 직접 고추장 발라서 구워 먹었다니께. - 김씨
요즘 무신 더덕 나올 철인가? 에이 그건 김형이 공갈치는 거구....- 홍씨. 아주 태연자약하게
야, 이 호로새끼야 내가 구워 먹었다는디... - 김씨
그럼 그기 빈집두 많겄네? - 정씨
많습디다....맨 빈집이라구여 - 김씨
그거 읃을 수 있남?
다들 궁금해서 김씨만 쳐다보는데... 김씨는 막걸리 한잔 들이키드니 풋고추 하날 고추장에 찍어 와삭와삭 먹어댄다.
....그기... 그냥 막 들어와서 살라고는 안합디다....땅(대지)은 말구 집이라두 사야지... 그냥 공짜루는 이상허게 잘 안준다고 합디다.
그럽 집값만 을마랴? - 박씨
아따... 기중에서 젤 좋은기 200에서 300만원 달라구 합디다.
증말이여? - 조씨
아....시골에 가보면 맨 빈집투성이여, 사람사는 집 옆에 빈집 있으믄 귀신 나온다구. 아예 헐어버려구 허는 집이 을마나 많다구. - 박씨
허긴 그려. 이번에 강원도 홍천 쪽에 가보니께 한집 건너 빈집이드라구... 빈집이 그래 많으니께 뒤숭숭하구 무섭다구 아무나 들어와서 살었으믄 좋겠다구 허든데 - 정씨
그려두 지리산 쪽엔 요새 관광객이 차츰 늘어나니께. 거저 와서 살라구는 안하구... - 김씨
김형 이번 추석에 거기나 한번 댄겨옵시다. 아 우리 팔자에 시골집이라두 한채 있으믄... 좀 더 있다가 마누라허구 내려가 거기서 살지 뭐. - 조씨
더 있으믄 다 늙어빠져갖구 뭔 재미루 가서 사남? 갈랴믄 지금 당장 내려 가자구. - 정씨
지금은 좀 빨르요. 몇년 더 쎄빠지게 일해야 않겠소. - 조씨
“증말... 내려가긴 내려가야 쓰겠습디다, 이잔 공장 기술자 노릇두 못해먹겄소, 공장에 오래 댄겼다구 어른 대접 해주지도 않구. 젊은 놈덜이 퍽퍽 밀구 올라는 오지, 기계는 하루가 다르게 새 기계로 바꾸지... 그라니 옛날 기술루 큰소리 칠 수두 읎구.” - 김씨
“그놈의 새기계 들어오면 우리겉은 놈덜은 낯짝두 못 내민대니께. 이건 사용법이라구 써놨다 하면 영어고 일본말이니 우리겉이 무식헌 놈덜이 그걸 당최 알 수가 있어야제. 그러니 새파랗게 젊은 놈들이라도 그거 아는 놈이 제일루 대접받는 다니께.” - 조씨
“한글루 된 것두 매찬가지여. 그것두 뭔 말인제 도대체가 알 수가 읎대니께. 하다못해 고등핵교락두 나와야 뭔 소린지 알겄는디... 그라니 이잔 점점 밀리는 걸 확실히 알 수 있다니께.” - 정씨
“우리도 매찬가지여. 기계톱에 기계대패... 몽땅 기계루 바뀌는 판인디 고걸 제대로 쓸라믄 그거 요리를 제대로 알아야 혀는 건디... 맨날 배워도 몰르겄습디다.” - 박씨
“그라니 결국은 우릴 내쫓지는 못허겄구... 종당엔 허드렛일이나 잡부 노릇할 일만 남아부렸지.”
술이 취해 노상 흐느적거려서 그렇지 머리에 든 것은 많은 홍씨가
“옛날에는 다 기계식이었다구. 요새는 다 전자식기계라 거 뭐다냐 전자식 원리를 몰르믄 꼼짝두 못한다구... 작은 공장에 왜 컴퓨터 기계 들여 놓구두 놀리구 있냐면 그거 움직일 사람 읎스니까 그런 거여. 김씨 말마따나 이젠 공부 읎으면 시골 내려가 농사나 질 수밖에 읎다구.”
“그러니 홍가야 농사는 아니헐 말루 아무나 짓냐?”
“우리네야 아새끼덜 다 키워놨으니 아들 공부시키는 건 둘째라 치구 그놈의 땅값은 조선팔도 어딜 댄겨봐두 천정부지루 불렀다 하믄 한 평에 몇만원이니 농사질 땅은 워떻게 장만한다냐?”
“고런 건 증말 정부에서 뭔 수를 써야 되는 긴디... 맨 묵힌 땅에 길길이 잡초만 성해 있는기 질펀헌디 우리네 송곳 한개 꽂을 땅은 읎으니... 그렇게 묵히는 땅은 정부에서 우리 겉은 인생덜헌티 이삼십년으루 분양해주믄 쓰겄구만...”
“허기야 시골 내려가믄 돈벌이는 요그 도시만은 못할기라.”
“아 못하면 워뗘? 당최 이놈으데서 이 드런 공기 마시구 썩은 물 마시구 농약 아주 범벅으루 된 채소 먹구... 그것뿐이여? 버스 한번 타구 갈려면 이것 몇시간씩 걸리구... 아이구! 내는 내려갈 수만 있다믄 당장이락두 내려가겄다.”
“아따 성님 고게 고렇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니께. 좋은 공기 마시고 좋은 물 마시고 농약 안친 채소나 먹겄다고 시골 내려가는 건 돈 있는 놈덜이나 꿈꾸는 일이구 우리 겉은 인생덜은 당장 입에 풀칠하는 일이 우선이라 이거여! 솔직히 얘기혀서 성님이 순전히 농사만 져갖고 먹구살 요량이 있다요?”
그러니 정씨성님은 아무말도 못한다.
유난히 무더웠던 이번 여름엔 이래저래 고향얘기, 농촌얘들이 많았다. 가뭄 때문에 걱정이 되서 그랬고, 너무 더우니까 계곡물 철철 흐르는 고향에 내려가 지긋지긋한 더위와 더러운 공기, 물, 온통 오염되고 망가진 도시를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
도시의 한복판에 살면서 노상 변두리를 전전하는 저이들은 정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혹은 이악스럽지 못한 성격으로나 도시체질은 아니고 천상 농촌이 적격인지도 모르겠다.
모두들 몰려 집으로 돌아가고 나니
공터는 휑하니 적막스럽고
하늘엔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민들레별곡 / 강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