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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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 빨리 와봐!”
조씨가 다급히 불러대기에 오늘은 또 뭔 일인가 나가봤더니 똥개울 입구에서 노점 채소장사를 하는 곽씨를 둘러싸고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다.
곽씨는 얼굴이고 옷이고 온통 피투성이다. 사람 좋은 곽씨는 그저 아무것도 아니라고 입을 열지 않는다. 옆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는 정순이 엄마가 생생히 봤다고 거품을 물고 떠들기 시작한다.
“아, 심술첨지 놀부 영감탱이말여, 그 영감탱이가 요기 자기 밭에 박스 하나 떨어뜨렸다고 저래놨당께... 박스가 바람이 불어 날아간 거지 누가 일부러 버린 것두 아니고... 아 밭에서 뭘 솎다가 올라와선 느닷읎이 머리로 들이박았대니께!”
놀부 영감탱이라고 욕먹는 심첨지는 우리 동네 사람이 아니다. 우리 똥개울 건너편 아파트 단지 중에서도 제일 좋은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다.
똥개울은 바닥 전체가 물이 흐르는 개울이 아니다. 바닥에서 한 30~40센티미터쯤 높게 양옆으로 뚝이 있다. 폭은 그저 3~4미터쯤 되고 그게 꽤 길게 이어져 있다. 그리고 그 뚝위로 한 2미터쯤 올라와 원 도로가 있다. 길 아래 뚝은 평소에 동네사람들이 배추며 시금치며 파나 콩 등 온갖 밭작물을 심어 자기들도 먹고 남에게 팔기도 한다.
봄에 그곳에 채소를 심어 기르다 장마지면 영락없이 물로 뒤덮히고 그 더럽고 오염된 물이 일년에도 두어차례 범람하고 그게 십몇년을 뒤덮었으니 조금만 상식이 있어도 먹을 채소 가꿀 곳이 아니다.
내가 몇번이고 거기 뭘 심어 먹다간 중금속에 심각하게 오염된 것이니 큰일난다고 일러줘도 우리 동네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건너편 아파트촌 사람들도 들은 척도 안하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못먹어 병난다고 오히려 틱틱거리고 그걸 이웃간에 팔기까지 하니 노상 속이 상하는 판이었다.
우리 동네서 뚝방밭이라고 부르는 그 개울뚝 위의 그 밭은 먼저 맡은 게 임자라고 이 동네 먼저 들어와 자리잡은 그 심첨지가 욕심사납게 우리 동네 뚝방밭은 거의 삼분의 일쯤 도맡아 농사를 짓고 있다.
첨지가 얼마나 이악스럽고 극성맞고 치사한지 하여튼 밤낮 그 뚝방밭에 붙어 살면서 당신 할마씨와 채소를 가꾸는데 이건 사람들이 뭘 좀 어쩌기만 해도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싸우자 하고, 아이들이 공을 갖고 놀다가 좀 잘못해 밭으로 떨어지면 꼭 놀부마냥 똥개울 가운데로 팽개쳐 버린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히는 것은(동네 다 아는 소문이니) 그 뚝방밭에 심은 채소를 남들(대개 부평시장)에겐 팔아먹으면서 자기는 절대로 안 먹는단다.
그 심첨지 아들이 뭐하는 사람인가 하면... 서울인가 어디 모모 판사란다. 판사인지 검사인지 변호사인지는 확실히 몰라도 여하튼 자기 아들 믿고 유세를 얼마나 부리는지... 그게 더럽고 아니꼬와도 특히 우리 동네 사람들은 찍소리 못하고 첨지에게 굽실대며 지냈었다.
한참들 오락가락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젊은 경관하고 심첨지가 다가와 식식거리며 곽씨를 손가락질 한다.
“이놈이야, 이놈! 이놈이 나를 이렇게 해놨어.”
그러면서 자기 입을 벌려 보여주는데 이빨이 한대 부러져 피가 나오고 있었다.
이거 일이 고약하게 되가누만... 걱정이 되어 곽씨에게 어찌된 거냐고 물었다.
곽씨는 너무 기가 막혀 말도 잘 못했다.
“아니 강씨, 내가 이 할아버지께 손가락 하나 까딱했으믄 천벌을 받을 거유. 아 여그 정순어매도 생생하게 봤으니까루...”
누가 뭐래도 곽씨는 거짓말할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우선 안심이 된다. 그런데도 영감은 길길이 날뛴다.
“이눔 봐라? 이 후레자식이 늙은이를 때려 이 지경 맨길어 놓구두 발뺌을 혀? 내 아들헌테 말해서라두 혼쭐을 내줄테다.”
그러니 젊은 경찰은 영감 아들 신분도 대강은 알 것이고 그 위세에 질려 곽씨에게 파출소까지 가자 한다. 곽씨가 머뭇거리며 안 가려고 하자 진단서까지 첨부해서 고소를 했으니 일단 가야 된단다. 곽씨에게 아무말 말고 가라고 이르고선 몇명을 불러 모았다.
역시 조씨가 나선다.
“정순엄마는 가서 본대루 사실대루 말해야 쓰겄소! 헐 수 있겠소?”
정순엄마는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됐시다! 그럼 딴 사람들은 내를 따라 오시시요!”
우리 열두어명은 우르르 파출소로 몰려갔다.
파출소니 경찰서니 검찰이니 그게 처음 출입이 찜찜하고 겁도 나고 그러는 것이지 두서너번 들락거리다 보면 그것도 이력이 붙는 것이고 또 우리 동네 아저씨들 말마따나 한번이라도 이기고 나오면 그 다음부터는 만만히 보이기까지 하는 모양이다. 이런저런 일로 파출소 경찰서를 몇번씩 출입해야 했던 우리 동네 아저씨 아줌씨들은... 그러니 당당히 허리에 두팔을 척 걸치기까지 하면서 파출소 안에 버티고 섰다.
“영감님 이사람은 안 때렸다구 하는데 영감님은 자꾸 때렸다구 허시니 그럼 그때 본 증인이 있어요?”
묻는 경관 앞에서 심첨지가 잠시 머뭇거리니 곽씨가 냉큼
“조기 저 아주매가 아주 똑똑히 보구 있었구만요. 영 그라시믄 조그 아주매를 증인으루 내세우자구여.”
그러니 곤란한 건 젊은 경관이다. 눈치가 아마 영감이 뭔 실수를 하긴 한 거 같은데 그렇다고 섣불리 다그칠 신분도 아니고... 그러는 판에 조씨가 썩 나선다.
“순경님 지가 급한 전화 하나만 쓰면 안되겠소? 지 사적인 전화가 아니라 여그 영감님 사건 땜시 그러니까루...”
젊은 경찰이 달갑지 않은 얼굴로 끄덕이자 조씨는 수화기를 들고 114를 걸어 느닷없이 모모 법원 전화번호를 묻는다. 잠시후 전화번호를 받아 적더니 다시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여보시요! 그기 성이 아무개라고 허시는 양반 기십니까? .... 아따 이름은 몰르겠구 그 양반 아부지 성함이... 에또.... 아무개씬디 지금 집안에 급한 일루 그라니까 빨랑빨랑 좀 찾아서 바꿔주시시요!”
그러자 영감이 기겁을 해서 소리친다.
“이놈들... 이거... 지금 뭐허는 짓들이여?”
그러거나 말거나 조씨는 끄떡도 안하고 수화기만 꽉 붙들고 있다. 저쪽에선 연신 뭐라 하는 모양이지만 듣지 못하는 우리들은 그 되가는 꼴들만 보고 있을 수밖에. 심첨지가 다시 소리소리 지른다.
“아니! 도대체 뭐하자는 수작들이여? 거긴 왜 찾구들 그러는 거여?”
조씨가 길길이 날뛰는 영감은 쳐다보지도 않고 눈을 지긋이 감고 뇌까린다.
“높은 놈덜은 높은 놈덜만 무서워허니께... 우리 동네 사람들 도장 몽땅 찍어서 청와대에 억울하다고 진정을 넣야 쓰겠서야... 청와대루 진정한 건 어찌됐던 일단은 조사를 해야 된다니까루... 다 늙은 영감허구 맨날 싸워봤자 우리만 나쁜 사람될 것이구... 지 아들 믿구 맨날 유세만 해대니 동네사람덜이 억울혀서 워떻게 살겄는감! 나라에 법이 엄연히 있으니까루 아무리 판사님이구 검사님이구 장관님이라 허드라도 일단 잘못을 했다믄 대통령각하께서 엄허게 책임을 물으셔야겄지. 국민덜의 억울한 진정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말이 안되시지...”
그러니 바로 뒤켠에 있는 동씨가 한수 거둔다.
“아따 우선 여그 이십팔 명 도장 찍어온 진정서를 가져왔당께... 이거라두 우선 청와대에 부치구... 지금 김씨허구 집집마다 찾아댕기믄서 도장덜을 받구 있으니까루... 고건 또 이따 부치구...”
없는 진정서 있는 체를 하려고 잠바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뺐다 해댄다.
나도 가만 있을 수 없지.
“청와대에만 보내면 안돼요. 우선 그 양반 속한 데가 법원이니까 대법원장한테도 보내야 할 거구... 중금속에 오염된 채소를 다른 사람들한테 파는 건 그거 먹고 죽으라는 일종의 간접살인 행위인데 그건 보사부하고 농수산부 그리고 인천시청에 강력히 항의하고 고발해서 사법처리 하도록 조처를 해야 합니다.”
정순엄마도 나선다.
“내두요... 이 내눈으루 똑똑히 봤으니까... 원제든지 워디든지 끝까지 따라 댕기믄서... 그 뭐다냐?”
옆에서 조씨가 증인! 하고 일러주자
“그 증인인가 뭔가 허겠다니깐요, 나 말구 두 명 더 봤는디 그 사람덜헌티두 고... 뭐라고?”
이번엔 동씨가
“아적두 몰러? 증인!”
“이! 증인을 서달라구 헐티니까...”
영감의 얼굴이 하얗게 되더니 전화통 잡고 있는 조씨의 팔뚝을 부여잡는다.
“이 사람들아... 이거 왜 이러나? 내가 무슨... 같은 동네 살믄서 이게 뭔... 노인헌테 이래야 되겄는가? 자자, 내가 다 양보허겠으니 그 진정인가 뭔가 그런게 다 같은 동네 사람끼리 남 창피하게 그게 무슨 짓인가. 다른 동네 사람덜이 을마나 욕을 하고 우리를 우습게 볼 것이며...”
조씨가 여전히 눈을 착 내리깔고 쌀쌀맞게 대꾸한다.
“아따 우리가 은제 영감님헌티 동네 사람허자구 했습디까? 영감님이 우리를 보기를 어물전 홍어좆맨큼도 안 봐주고 흑싸리 껍질보다 더 안쳐주는디...”
“아... 이 사람아 무슨 그런 써운하구 몹쓸 소리를 하는가? 사실은 내가 엉겁결에... 여기 곽씨 저렇게 맨들어 놓구 겁두 나구 창피허기두 허구 그랴서 집으로 뛰어가 화장실에 들어가 뻰찌루 씨게 때려갖고 이래논 건데... 늙은이가 뻰찌루 이러기도 쉽지 않는 것이고... 그게 자네들은 몰라서 그렇지 을마나 아픈 건데...”
조씨가 수화기를 탕 내려놨다.
“이 영감님이 지금 뭐 장난허구 있는 거야 뭐야? 그래 놓구 죄없는 사람 경찰서 오라가라 해놓구 말야! 당신 땜에 여그 곽씨 하루종일 장사 못해서 손해난 거 알으요, 몰르요?”
“아 그거야 내가 다 보상해줄테니...”
“그럼 곽씨 이빨 부러진 건 워쩔래요?”
“아 고것두 내가...”
영감은 그러면서도 아까워 바들바들거리며 빠져나갈 구멍만 찾고 있었다. 사람 좋은 곽씨는 조씨가 영감을 몰아가니 도무지 불편해서 그만하라며 조씨를 막으려 하지만 조씨는 눈을 꿈뻑거리면서 곽씨에게 입도 벙긋 못하게 한다.
“그라구 우리덜 동네 사람덜이 이 일 때문에 하든 일들 다 쉬고 여그 매달린 건 워쩔래요?”
“... 아... 그거야 낼보구 어떻게 하라는 건가?”
“에이! 그럼 여그 수많은 증인들이 영감님 자백두 들었구 허니까루 상해에, 무고에, 식품위생법에... 다 걸어서 고소... ”
“아 이 사람아 알았네 알았다구! 내가 막걸리 두 말에 돼기고기 서너근 냄세!”
“그리구 여그 우리 경찰선생님이 시민의 안녕과 질서를 지키기 위하야 그렇잖아두 바쁘신 몸인데... 쓸디읎구 개겉은 일루 오라가라 심들게 모시구 다니셨으니...”
영감과 헤어져 우리는 배꼽이 빠져라 허리가 부러져라... 너무 웃어 눈물까지 흘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노점장사는 원칙적으루 불법이니 그거 불법이라구 진정이나 고발해대면 먹고 살 요량없이 큰일이구... 저 심첨지 너무 몰아 세웠으니 혹시 심첨지가 억하심정으로 해꼬지나 않을까 여전히 걱정해대는 곽씨에게 조씨가 큰소리친다.
“아따 걱정을 허지덜 말어! 진정이니 고발이니 다 있는 놈덜 배운놈덜이나 해대는 지랄이구 고런 놈덜이 우릴 걸어 고딴짓거리 허겄다믄 우리넨 더 높은 데루 아주 떼거지루 같이 일 벌리는 거여! 우리네야 털면 찬바람에 흙먼지뿐이니까루... 고런 식으로 싸우자 하면 우리네가 백번 이겨뿐진다니께...!”
백번 맞는 말이다!
곽씨는 지금까지 노점장사 잘하고 있고... 물론 피해보상도 잘 받았고, 그 심첨지는 가을부터 뚝방농사 그만뒀다. 들리는 말로는 그 옘병헐 뚝방농사 땜에 자기 개망신 당하고 귀하신 아드님 모가지 날아갈 뻔한 거 생각하면 다시는 뚝방 쪽은 쳐다보기도 싫어서란다.
[민들레별곡 / 강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