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민들레별곡

임진강 민들레

천 지 인 2007. 1. 19. 09:57
 

 임진강 민들레


  새벽 4시, 좀 늦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니 칠흑의 어둠이다. 하늘엔 별들이 빛나고 있다.

  4시 30분에서 단 일분도 기다려주지 않고 강을 건너기 때문에 급히 서둘러야 한다. 집에서 강변까지는 보통걸음으로 40분이 걸린다. 30분에 도착하려면 어둠을 뚫고 달려가야 한다. 어깨에 걸머진 군용배낭속의 지남철과 도토리밥 도시락이 거추장스럽다. 잰걸음으로 달리다, 걷다 해가면서 강가까지 도착하니 사람들은 이미 다들 모였다. 열네살의 나만 빼고는 모두 아저씨 아주머니들이지만 강을 건너고 파편조각들을 모아 되돌아올 때까지는 당연한 ‘동료’로 대우해주는 것이 고맙기 짝이 없다.

  대장이 물로 들어 선다.

  그러자 남자 여자, 남자 여자‧‧‧ 그렇게 엇바꿔가며 강물에 들어서면서 손에 손을 맞잡는다. 이렇게 인간띠를 잇지 않으면 세찬 강물에 휩쓸려 실종될 수도 있고 캄캄한 어둠속에서 방향을 잘못 잡아 위수지구 쪽으로 건너갈 수도 있다. 그러면 끝장이다.  

  난 뒤에서 세번째다. 허벅지 위까지 바지를 걷어부치고 군용 작업화끈을 단단히 조여맸다.

  “오늘은 디게 춥구마”

  앞의 아줌마가 중얼거린다.

  “쉬 ‧‧‧ 조용!”

  후미를 책임지고 있는 부대장(그 당시는 그저 반장이라고 불렀다)이 주의를 준다. 아무리 캄캄하고 답답해도 손전등을 켜거나 기침소리 하나 낼 수도 없다. OP의 미군들이나 산아래 한국군 수색대에게 발각되면 간첩으로 몰려 사살될 수도 있고 토호치카(벙커)의 동초병들이 자칫 비상상황이라고 보고라도 하면 조명탄과 써치라이트에 노출돼 줄줄이 연행당할 수도 있다.

  매달 얼마씩 떼어낸 ‘회비’로 대장이 수색대 장교들에게 로비를 해대기 때문에 한국군들에게 고의로 피해를 당할 염려는 적지만 미군은 치외법권에 속수무책 상대라 손 쓸 도리가 없다. 적색분자 비슷한 놈들이 야음을 틈타 도강하는 것을 발견하고 갈겨버렸다고 우기면 그걸로 상황종결이다.


  11월 말의 임진강은 차다.

  여느곳은 늦가을이지만 이곳은 이미 초겨울이다. 벌써 살얼음이 얼고 하얗게 서리가 내린다.

  쏴아‧‧‧! 쏴아‧‧‧!

  세찬 바람이 평원을 내달아와 선잇골 산절벽에 부딪치고 그것이 부숴지면서 강물소리와 섞여 소름끼치는 소리를 낸다.

  앞의 아주머니가 다시 서너발 떼놓는다. 수-욱‧‧‧ 허리까지 빠진다. 나도 곧 허리까지 빠진다. 헉! 그 매섭게 차가운 기운으로 심장이 멎어버리는 것 같다.

  임진강은(중상류) 강폭은 넓어도 수심은 얕은 편이다. 깊은 곳이 내 목 중간쯤 된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다. 깊은 곳은 사람키 두어길 넘는 곳도 많다. 세군데쯤 되는 도강로는 그정도 밖에 안되고 대장은 정확히 그 길을 찍어내 사람들을 인솔하는 책임을 가진다. 그래 대장은 마피아 두목처럼 대단한 권위와 이권을 갖는다.

  강을 다 건너면 이내 뿔뿔이 흩어진다. 포탄이 날아와 떨어져 터지는 사격장의 넓이는 대강 150만평(?)쯤이다. 여의도의 두배 넓이다. 집중적으로 떨어지는 면적이 그쯤이고 황량한 채로 버려져 있는 주변넓이는 아마 그 몇 배정도 될 것이다.

  강을 건너는 시간이 사오십분쯤 걸리니 강을 다 건너면 대강 다섯시반, 실날같이 어슴프레 동이 튼다. 그 비옥하고 너른 들판은 (아마) 휴전 이후 그때까지 쏟아 부은 포탄사격으로 만신창이다. 사방팔방에 포탄이 떨어져 움푹움푹 패인 웅덩이들이 강변의 조약돌만큼이나 수두룩하고 장마 때 범람한 임진강물이 웅덩이에 고여 연못을 만들고 있다.

  그 웅덩이 사이 사이를 잘도 빠져 나가 언덕 위로 올라서야 물들이 없는 마른 웅덩이들이 널려 있다. 포탄이 폭발하면서 불길을 일으키는 바람에 산등성이의 나무들, 들판의 갈대숲이 불에 타 시커멓게 그을려 있는 그곳에 배낭을 끌러 지남철(자석)을 꺼낸다. 그것을 허리에 묶고 끌고 다니면 포탄의 파편조각들이 달라 붙고 그걸 재빨리 떼어내 배낭에 담는다.

  

  9시면 강 저쪽 OP에서 붉은 깃발이 오른다. 그것이 사격시작 신호다. 그 전에 한 배낭 채우고 강을 건너야 한다. 재수가 좋아 포탄이 집중적으로 떨어진 곳을 훑으면 한배낭 금방 채울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 남들이 한번 훑고 지나간 곳에 어정거리다 보면 반 배낭도 못채우고 돌아가야 한다.

  허기진 배는 힘을 쓸 수 없어 50~80킬로 무게를 지고 강을 건너기는 무리다. 그래 옥수수밥, 도토리밥(도토리 녹말을 내서 팥을 섞고 사카린을 넣어 만든다)이라도 배를 불려야 되니 삼십분 정도는 밥먹을 시간으로 남겨놔야 한다. 그러니 작업시간은 딱 세시간, 세시간 안에 한 배낭 가득 채운다는 건 여간 힘들지 않다. 입 꽉 다물고 한눈 절대 팔지 않고 암내 난 수달처럼 쉬지 않고 돌아다녀야 간신히 한 배낭 채울 수 있다.

  포탄은 특수강으로 만드니(살상용이니까) 단단하고 무겁다. 그래 부피는 작아도 무게는 다른 쇠보다 몇배 더 나간다. 한 배낭 넘치도록 가득 채우면 80킬로, 느슨하게 7홉정도 채우면 60킬로쯤 된다. 그걸 흐르지 않게 끈을 단단히 조여매고 등에 짊어지고 일어서면 두 다리가 파르르 떨린다. 그리고 한걸음 옮기면 온몸이 휘청하며 숨이 턱에 찬다.

  혹 예고없이 사격을 해댈 때도 있기에 포탄이 날아와도 안전할 성 싶은 산등성이 언덕 아래에 배낭을 내려놓고 밥을 꺼내 급히 먹는다. 푸실푸실 바람에 날아갈 거 같은 시원찮은 도토리밥에 소금끼 절은 짠지 몇쪽, 그것도 식사라고 허겁지겁 먹어치우고는 다시 배낭을 짊어지고 뛰기 시작한다.

  8시 40분, 여기저기‧‧‧ 이 언덕 저 언덕에서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나타나 같이 뛴다. 한마디 말들도 없이 숨소릴 거칠게 내면서 발앞부리만 보면서 강쪽으로 달려 간다. 그리고 강에 닿으면‧‧‧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살 사이로 고지 위 붉은 깃발이 가물가물 보인다.


  우리는 올 때와는 달리 갈 때는 둘 아니면 셋씩 손들을 잡고 한걸음 한걸음‧‧‧ 살얼음판을 밟듯 온몸으로 긴장을 풀지 않고 강을 건너기 시작한다. 강을 삼분의 일쯤 왔나 싶을 때 소리가 들린다.

  쐐-에-액‧‧‧ 부르르‧‧‧

  곧이어 귀를 찢는 듯한 폭음. 쾅! 쿠왕! 가끔 강둑 가까이 떨어진 포탄의 파편이 날아와 강을 건너는 우리들 바로 곁에 촥! 물소릴 가르면서 곤두박힌다. 우리는 그 비수같이 날카로운 파편들이 목덜미 뒤에 떨어지는 것 같은 공포에 몸소리를 치며 강을 건넜다.

  임진강 물아래는 머리통만한 자갈돌들이 반틈없이 들어 차 있다. 그것이 몇십년 물에 깎이고 닳고 이끼가(물때) 끼어 굉장이 미끄럽다. 쌀 한가마 무게의 짐을 지고 건너다 미끄러져 물속에 처박히면 그걸로 ‘목숨 끝!’이 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그 일을 하는 중에 아주머니 두분이 그렇게 죽었다.

  이윽고 강을 다 건너면 수색대 군인들이 보지 못할 작은 언덕까지 내쳐 올라가‧‧‧ 거기서야 배낭을 내려 놓고 한숨 돌리게 된다. 아저씨들은 담배를 피워 물고‧‧‧ 아주머니들은 젖은 옷들을 갈대숲에 들어가 벗어서 짜고‧‧‧ 다시 입고‧‧‧ 쉬야도 하고‧‧‧ 그제서야 팽팽했던 긴장들을 풀고 농담들도 하고 신소리들도 해댄다.

  팔베개를 하고 반듯이 누워 하늘을 본다. 11월의 하늘은 코발트색이다. 아침 나절인데도 흰구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너무 힘들어!

  가슴이 터질 것같이 팽팽한 긴장감, 죽음의 공포‧‧‧ 군인들의 총부리, 물살을 가르며 처박히는 파편조각, 미끄러운 조약돌, 유리처럼 날카로운 살얼음에 허벅지가 단박에 베어지는 아픔‧‧‧ 그 한치의 여유도 허락치 않는 극도의 긴장이 풀릴 때의‧‧‧ 이 지겨운 허탈‧‧‧ 열네살짜리 사내놈은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난 그렇게 줏어 모은 포탄껍질을 팔아 중학교에 들어갔다.


  4월에도 봄방학 기간동안 나는 임진강을 건넜다. 여전히 고철 한 배낭을 짊어지고 되돌아 달려올 때는 숨이 턱에 차고 다리도 여전히 후둘거린다. 비오듯 땀이 흐르고 눈앞이 가물거린다. 포사격이 시작된다. 굉음을 울리며 포탄이 터지면 봄가뭄에 메마른 사격장은 뽀얗게 먼지가 인다. 그런 와중에 발부리 앞에 노오랗게 피어있던 한송이 민들레 꽃, 포연속에 임진강 거센 바람 속에, 우리들의 발길질 속에도 그 한송이 민들레는 떨면서도 눈부시게 꽃피어 있었다.

   그 처절하고 살벌한 상황 속에서도 그 작은 꽃은 어쩌면 그토록 고울 수가 있었을까?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질기고 질기게 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거칠고 거친 땅에서, 척박하고 고난스런 삶 속에서도 꺽이지 않고 결코 사라지지 않는 민들레의 그 소박하고 다정한 꽃들이 온누리에 가득가득 피어 행복한 세상이 되기를 기도해 본다.

 

[민들레별곡 / 강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