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대한 그리움
주선(酒仙)이라는 이백도 독작을 하며 기약합니다.("月下獨酌"에서)
달빛 아래 이백 혼자 마시는 술....
비록 혼자였으나 마시다보니 달과 그림자, 이렇게 셋이서 대작을 합니다.
이백이 노래하면 달이 서성이고, 이백이 춤을 추면 그림자 움직입니다.
아무리 호기롭게 천년의 한을 탓하며 내리 백병의 술을 마시는 이백이지만,
그 외로움이 사무쳐 달과 그림자에게
"우정 길이 맺어 다음에 은하수 저쪽에서 다시 만나자"라고 소원합니다.
그런데 목월은 남도 삼백리길에 나그네의 초연함을 보입니다.
"술 익는 마을 마다 / 타는 저녁놀"
그리고 나그네 인생에서 그는 이백처럼 회한도 기약도 없이
그저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일 뿐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싯구절만 떠올리면 코 끝이 벌렁거립니다.
진짜 술익는 냄새를 맡아 보셨나요? 저는 자주 맡았습니다.
다니던 고등학교와 자취방 사이에 막걸리 공장이 있었습니다.
방과 후 친구들과 지나다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는 어린 나이에도 침을 꼴딱꼴딱 삼켰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 생신과 집안의 잔치 등 몇몇의 계기가 있을 때를 즈음하여
일년이면 서너번 가양주를 빚으셨습니다.
어렸을 때 그 맛을 알리가 없지요.
하지만 심부름하다 중간중간 집에 들러서 목마름에 한사발씩 들이켰습니다.
그 이상한 맛 - 달지도 않고, 시지도 않고, 맹물도 아닌 것이 마시면 다리의 힘을 풀어 놓더군요.
한번은 친구집에서 가양주를 마셨습니다.
20대 한참 때이니 그깟 술 두려울게 없었지요.
둘이서 않은 자리에 네주전자를 비웠습니다.
화장실을 가려 일어 서는데 다리가 풀리기에 너무 오래 앉았나 했지요.
시골 뒷간이라는 것이 대변은 칸막이가 되어 있지만,
소변은 잿간에 그냥 볼일 보는 구조입니다.
볼일 본다고 아랫도리를 대명천지에 드러냈는데, 갑자기 앞이 깜깜하더군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왜 갑잦기 깜깜한 건지.....
친구가 저를 일으켜 세우더군요.
아랫도리를 꺼내는 순간 잿더미 속으로 꼬꾸라진 겁니다.
그러니 당연히 세상은 껌껌하고,
기다려도 오지 않기에 나와보니 이녀석은 잿속에 묻혀 있더라는군요.
가양주는 색과 맛으로 1차 품평을 합니다.
샛노랗게 빚어진 술은 그 색이 일품입니다.
그 맛은 달지도, 쓰지도, 시지도 않은 그런 맛입니다.
시골에서 가양주를 빚는 집은 여럿 있습니다.
어느 집은 색은 이쁘지만 맛이 시금털털하고,
어느 집은 오묘한 맛은 있지만 색이 탁하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모친의 가양주는 색과 맛으로 인근에서 정평이 났습니다.
이제는 어머니께서 연로하시어 그 맛을 본지 벌써 몇 해가 지났습니다.
좋은 술이란
첫째 그 색깔이 이뻐서 눈이 취해야 합니다.
둘째 독특한 향으로 코를 자극하여야 합니다.
셋째 그 오묘한 맛으로 혀를 즐겁게 해야 합니다.
넷째 마셔도 은근히 취기가 올라 본인이 정도를 진단하기 힘들어야 합니다.
다섯째 아무리 많이 마셨어도 다음날 머리가 아프거나 후유증이 없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술인생 40년에 제가 얻은 결론입니다.
이제 나이가 40을 넘어 세월이 흘러가니 화학주가 싫어집니다.
어머니의 그 맛을 재현하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지인들께 위의 다섯가지 조건은 아닐지라도
화학주를 뛰어 넘는 술을 빚어서 대접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