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그녀 - 한비야
아름다운 그녀 - 한비야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1996년 7월 29일 초판 5쇄가 이 책의 호적이다. 무슨 사연인지 12년의 세월이 흐른 뒤 개인 서가가 아니라 헌책방에 꽂혀 있다. 그렇게 수줍은 듯 다소곳이 꽂혀 있는 책 속의 그녀를 나는 선택했다.
한비야, 그녀의 이름은 흔치않다. 그러나 베스트셀러 목록에 자주 오르내리는 관계로 독특한 이름이지만 오히려 익숙하고 친근하다. 하지만 그녀와는 직접적인 인연이 없었다. 그녀와 인연이 없었다기보다는 기행문 자체와 거리가 멀었다는 편이 옳다. 한정된 구매여건에서 기행문 구입은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것이다. 그런데 배다리에서 기막히게 우리는 이렇게 만났다.
기행문은 편안하다. 읽는 자세를 시시각각 내 맘대로 변화시키는 자유로움이 있다. 문자를 읽어 가는 눈이나 이를 해석하는 머리도 모두 부담스럽지 않다. 이것이 기행문의 장점이다. 머리 굴려가며 애써 해석할 만큼 복잡하지 않다. 단지 가슴으로 이해하려는 열린 자세만 있으면 된다.
그녀에겐 뜨거운 열정이 있다. 그러나 그녀의 열정은 자기중심적인 일방성이 아니다. 그녀의 열정 한가운데에는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있다. 그녀의 웃음과 눈물에는 사람에 대한 진정성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슴으로 느끼려 하기 보다는 머리로 이해하려 한다. 현지인의 문화를 존중하기보다는 자신의 주관적 기준으로 비교 · 평가하려 한다. 환경과 조건의 다원성 속에서 상대성을 인정하기보다는 절대적 잣대로 판단하려 한다. 주관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에서 바라보는 기행은 편협하고 비루하다.
그러나 그녀는 가는 곳마다 관찰자로 머물기보다는 짧은 시간이나마 현지인에 동화되려한다. 짧은 기간의 머무름이지만 그녀는 관찰자가 아니라 현지인으로서 생활한다. 고정관념과 선입견보다는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느끼려하는 것이다.
사람들에겐 누구나 개인적인 바램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천하지는 않는다. 한비야는 이렇게 말한다. “목표는 자신의 능력에 약간 버겁다 싶을 정도로 높게 잡고, 계획은 치밀하게, 실천은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또한 그녀는 말한다. “세상이라는 바다를 헤쳐 나가는 내 인생이라는 배의 선장은 바로 나라는 것.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대신하게 해서도 안 된다는 것. 바다가 고요할 때나 폭풍우가 몰아칠 때나 나는 내 배의 키를 굳게 잡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지금과 같은 깊은 행복감을 내내 맛보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마침내 깨닫게 되었다”고.
굳이 그녀의 책을 요약하거나 평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직접 보고 들은 체험기를 축소해서 줄거리로 서술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녀처럼 지구 곳곳을 직접 활보하며 체험하지는 못하더라도 책속에서 그녀의 얘기를 통해 간접체험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책을 읽으면서 내내 나를 사로잡은 것은 미지에 대한 동경이나 낮선 세계에 대한 환상이 아니다. 오히려 그간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꿈을 잃고 살아왔던 시간에 대한 반성, 책장을 넘길수록 무엇을 잊었었는지 나 자신의 잊혀진 기억이 오버랩 되면서 꿈을 재생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책장을 덮을 무렵에는 새롭게 자신의 꿈을 설계하게 된다. 이것이 한비야가 여행을 매개로 우리에게 던져주는 '희망의 꿈‘일 것이다.
- 천 지 인 -